이제 마른 여자가 좋다던 남자친구는 없다.
이미 몸도 건강해서 더 살을 뺄 이유도 없다.
그런데 왜. 왜. 왜.
나는 여전히 다이어트약을 끊지 못할까?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면 다이어트약을 먹었고, 약을 먹지 않으면 폭식했다.
폭식하면 다시 죄책감으로 화장실행….
배고픔 - 약 - 약 빨 떨어지면 폭식 - 폭식 후 구토.
악순환이다.
더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 없다.
내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의사는 내게 경고했다.
"갑자기 단약을 하면 부작용이 심할 겁니다.
조금씩 다이어트약을 줄이다가 끊으시죠.
식욕 조절도 힘들고, 요요가 분명 올 거예요. 분명 옵니다."
아예 요요 오라고 제사를 지내시죠. 선생님….
의사는 모른다.
저 콩알만 한 약이 얼마나 무서운지….
저 콩알만 한 알약은 내 머릿속에 "다이어트"만 떠오르게 만들고,
이유 없이 심장이 나대도록 괴롭혔다.
게다가 머리털도 반쯤 날려 보냈다.
저 콩알만 한 녀석 없이는 못 버티도록 나를 가스라이팅까지 했다.
'그런 놈을 조금씩 끊으라고??'
의사는 다이어트약을 안 먹어 본 사람이 틀림없다.
만약 먹어봤다면 내게 계속 약을 처방해 줄 리 없다.
처음에 한 알이던 약이 어느새 매끼 한 손 가득 약으로 채워졌다.
나는 안다. 절대 조금씩 약을 끊지 못한다.
나는 단약 부작용이 무섭지 않다.
약을 먹으며 이미 여러 번 인생 종 칠 뻔했는데,
여기서 더 망가질 수 있을까?
요요, 그까짓 거 무섭지 않다. (요즘은 조금 무섭다.)
지금 약에 미친 내가 더 무섭다.
그리고 자꾸 빠지는 머리털이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