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타일 May 30. 2024

어떤 준비

네가 유독 오래 잠에서 깨지 않을 때,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거리는 배가 잘 안 느껴질 때
나는 어떤 준비를 떠올려봐.

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야.

어떤 우울한 날은 아무 생각도 못할 만큼 눈물만 나지만 나는 네 엄마니까 다가오는 네 죽음을 인정하고,
차분하게 준비를 해야 해.

네가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가면 너를 어떻게 보내줘야 할까?

네 공간, 네 물건,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될 너.



우선 너는 어디에 있으면 좋아할까?

너는 언제나 안겨있기 좋아하는 껌딱지니까 나와 먼 곳에 묻을 수는 없어.

그리고 분골함에 두면 네가 답답할 거 같아.

내가 너를 자주 볼 수 있고, 네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널 보내주고 싶어.


그리고 네 물건은 어떻게 하지?

너도 알다시피 네 물건은

M 씨가 가장 좋은 것만 샀잖아.
버리긴 너무 아까워.


그래. 유기견 센터에 문의해서 보내주자.

제2의 미남이, 제3의 미남이에게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네 고급 물건도 보내주고, 센터 아가들 까까 사 먹게 용돈도 주자.

(용돈은 혹시 좋은 일하면 네가 천국 갈 수도 있잖아.)


네 물건까지 잘 정리하고 나면 그다음에 뭘 해야 하지?



아냐, 사실 그전에 나는 네게 쓰는 편지를 마무리해야 해.
지금 쓰는 이 편지 말이야.

네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내 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 너에게 줄 거야.

너와 함께 편지를 보내기 위해 나는 생각만 해도 울음이 나는 날도,

가슴이 철렁였던 네 검사 날도 부지런하게  편지를 쓰고 있어.


그래. 널 보내고, 네 물건도 정리하고,

이 편지를 네게 전한 다음에,
그때 나는 그동안 참은 눈물을 흘릴 거야.

네가 놀랄까 봐, M 씨가 무너질까 봐,

참아온 눈물을 소리 내서 울 거야.

그리고 온종일, 혹은 몇 달을,

널 그리워하며 슬퍼할 거야.

이전 23화 워낙 노견이라서 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