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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Jun 06. 2024

마지막 여행(1) - 도망치고 싶어

"여행을 가야겠어."

M씨는 사뭇 진지하게 여행을 제안했어.

그리고 나도 바로 동의했단다.     


사실 여행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야.

너도 알다시피 봄에 우리는 이미 강원도 여행을 갔잖아.

미로, 미남, M씨, 나 넷이 가는 첫 여행이라 나는 큰마음 먹고, 가장 좋은 펜션을 예약했어.

그런데 너는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토하고 아프기 시작했어.

다시 200km를 달려 서울로 돌아가기엔 운전을 오래 한 M씨도 피곤해 보였고,

너도 힘들 거 같아서 우선 펜션에서 안정을 취했어.

여행 내내 너는 계속 잠만 잤어.

넷이 함께 강원도가 다 보이는 곤돌라를 타고,

아바타에 나올 법한 숲도 갔지만

너는 내내 눈을 감고 내 팔에 안겨 잤어.

마치 혼자 먼 꿈 여행을 떠난 것처럼…     


다음 날 새벽, 우리는 바로 서울로 돌아왔고 다행히 너도 금세 몸이 나았어.

나는 그날 이후, 다시는 무리한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그런데 얼마 전 병원에 갔을 때, 수의사가 말했어.

"미남이에게 시간이 많지 않은 거 같아요.

앞으로 추억 많이 만드세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수의사의 말과 더는 측정이 안 되는 네 간 수치를 보고,

처음에는 그저 울기만 했단다.     

그리고 다음 날은 다시 정신을 차려서 네 치료스케쥴을 다시 상의하고, 너와 함께할 일을 고민했어.

아직 컨디션이 좋은 너를 보고, M씨는 다시 한번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어.

그래. 조금이라도 네가 괜찮은 지금, 나와 M씨, 그리고 너와 미로, 우리 넷만의 여행을 다시 떠나기로 했단다.          

1박 2일 여행이지만 나는 가장 큰 캐리어를 꺼냈어.

간약, 심장약, 쿠싱 약, 췌장염약을 따로 표시해서 지퍼백에 담았어.

그리고 여분의 약, 안약, 피하 수액 세트, 산소호흡기까지 챙겼단다.

가장 중요한 응급용 가방 완료. 그다음은 생활용품.

휴대용 식기, 기저귀, 방수 이불 등 기본적인 네 짐만 챙겼는데 이미 캐리어는 가득 찼단다.    


중요한 물품을 다 챙겼다면 이번에는 패션용품이지.

이번 여행을 위해 분홍색 유모차와 분홍 모자를 샀어.

미남이 너는 분홍색이 제일 잘 어울리니까.


매번 치료비 핑계로 네게 못 사준 예쁜 것들을 이번에 제대로 질렀어.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너와의 여행에,

널 네 이름처럼, 가장 예쁘게 데려가고 싶어.     

화물용 캐리어, 백팩, 개모차까지 모두 실었더니 우리 넷이 타기도 비좁을 만큼 차는 포화상태였어.


넷이 아주 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어….

어릴 적 만화에서 본 악당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가는 모험처럼 말이야.     

그래, 사실 나는 네게 다가오는 "죽음"에서 멀리 도망치고 싶단다.

절대, 절대 네게 가까이 못 오도록 도망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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