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야. 부모님 댁 근처에 24시 동물병원이 있어서.
설날 아침부터 병원이라 미안해
어제 본가에서 자고, 오늘은 집에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하루만 더 자고 가라 하셨어.
그래서 갑자기 네 약이 부족했어.
오늘도 진상 보호자인 나는 네 담당 수의사에게 연락했어.
선생님은 하루는 안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혹시 밤에 네가 아프면 어떻게 해….
오늘 가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은 나라 잃은 표정이고….
급한 데로 근처 24시 동물병원에 왔어.
대기실은 아픈 동물들과 보호자들로 가득했어.
에고. 연휴는 가족과 즐거워야지, 다들 아파서 어째…. (우리 포함.)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나는 구석에 남은 자리에 앉았어.
그러자, 내 옆에 앉은 다른 보호자가 말을 걸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어.
강이지 몇 살이냐, 서울은 어디 병원이 좋다더라, 근처에 반려동물 카페가 생겼는데, 가봤냐 등등
처음 본 사이지만 비슷한 처지라 그런가, 대화가 계속되었어.
덕분에 대기시간이 훌쩍 지나갔어.
진료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데, 마치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 들더라.
집에 오니 이미 친척들이 와있었어.
몇 년 만에 만나는 이모와 사촌 동생까지 왔어.
너는 처음 이모를 보고, 비명을 질렀어.
그리고 앞발을 허우적거리며 나를 쳐다봤어.
'어디 아픈가?!'
너는 내가 안아주니까 다시 조용해졌단다.
휴. 아픈 줄 알고 놀랐잖아.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때문에 무서웠어?
어이구…. 우리 쫄보.
너 혼자서 무지개다리는 어떻게 갈래….
얌전해진 너를 보고, 사촌 동생이 물었어.
"언니. 얘는 이름이 뭐야?"
"미남이"
"얘도 유기견이라며? 언니. 우리 집 호두는 유기묘야. 이제 12살인데 누가 우리 빌라 앞에 버리고 갔어"
"미친 사람 아냐? 어떻게 늙은 고양이를 밖에 버려?"
"내 말이. 언니 호두 사진 볼래?"
호두 사진을 시작으로, 나는 네 사진을, 사촌 동생은 호두 사진을 열심히 자랑했어.
'내가 얘랑 친했나?'
밥을 먹는 중에도, 같이 이불을 덮고 누워서도 이야기는 계속되었어.
나이 든 동물이라 슬픈 점, 생각보다 버거운 병원비. 동물과 살며 사람들과 고립되는 일 등등
마음에 묵혀둔 이야기까지….
우리가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는 동안 엄마는 못마땅해하며 말했어.
"아! 언제까지 둘 다 시집 안 가고 개만 붙잡고 살 거야!?"
평소 나라면 이 자리를 피했겠지만, 오늘은 든든한 아군이 지원 사격해 주네.
"이모.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언니한테는 미남이가, 나한테는 호두가
자식이나 다를 바 없어. 그니까 구박 그만."
잘한다! 우리 편! 말 잘한다! 아군!
엄마는 고개를 저었고, 나랑 사촌 동생은 서로 웃었고, 너는 열심히 딸기를 먹었어.
미남아, 나는 오늘 일이 다 신기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1시간 동안 대화한 동물병원부터
연락처도 모르던 사촌 동생과 같은 편이 돼서 다음 주도 만나는 베프가 된 일까지.
나는 너와 살면서 사람들과 멀어진 줄 알았는데,
사실은 네 덕분에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과 친해진 것 같아
미남아. 우리, 오늘도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