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너와 산책하는 길, 한 건물 앞에서 나는 고개를 휙 돌렸어.
산책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지나는 동물병원 알지?
그래. 이사 오고 일주일 만에 네가 아파서 갔던 24시 병원 말이야.
나는 이곳을 볼 때마다 자꾸 화가 나.
몇 달 전, 우리는 전에 살던 지역에서 좀 먼 곳으로 이사를 왔어.
이사 오면서 가장 걱정한 건 네 병원이야.
사실 네가 건강하면 이사한 곳 근처 동물병원으로 알아보면 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어.
잘 유지 중인 네 병이 갑자기 나빠질까봐 걱정되거든.
그래서 나와 M씨는 이사한 뒤에도 1시간 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에 계속 다니기로 했단다.
그런데 이사 온 뒤, 일주일 만에 갑자기 네가 아팠어.
무슨 이유인지 설사를 하고, 먹돌이인 네가 밥을 안 먹었어.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데 하필 M씨는 야간 당직 날이었고,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다 되었어.
그 날따라 펫택시도 예약이 되지 않아서 나는 너를 안고 울며 발만 동동 굴렀단다.
급한 마음에 근처 24시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어.
병원은 이미 많은 보호자와 동물들이 있었어.
나는 마음이 한시름 놓였어.
'근처에 24시 동물병원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사 오길 잘했어.'
오랜 대기시간이 지난 뒤, 만난 수의사는 많이 지쳐 보였어.
나는 수의사에게 너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말했지.
현재 먹는 약 종류와 가진 질병, 만성 췌장염에 잘 걸린다는 정보까지 모두 말했어.
수의사는 청진도 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응시하며 나와 대화했어.
"아시다시피 나이가 많아서 치료 도중에 사망 가능성도 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수액을 자주 맞아서 혈관이 약하고 잘 터집니다.
되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네. 노력은 하겠지만 워낙 노견이잖아요. 피 뽑으면서 혈관 터질 수 있어요. 워낙 나이가 많으니까요."
수의사는 진료 중에도, 약을 처방할 때도, 끊임없이 "워낙 노견"이라는 말을 덧붙였어.
마치 내게 잘못돼도 자기 탓하지 말라, 자기 책임이 없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어.
워.낙. 노.견.이.니.까.
맞아. 너는 나이가 많아.
그리고 질병도 많으니, 수의사가 진료하기 쉬운 아이는 아니야.
그래도… 그래도….
그런데 수의사는 자꾸 네가 노견이라는 말만 반복했어.
마음 같아선 수의사에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고, 나오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어.
혹시라도 나 때문에 네 주사를 아프게 놓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
나는 너에 관한 일은 늘 갑과 을 중의 을이니까….
나는 네 생명에 애틋함이 없는 수의사에게 널 맡기고 싶지 않았어.
당장 필요한 비상약만 달라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어.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에 M씨가 퇴근하자마자 다니던 병원으로 달려갔어.
다행히 너는 전날 많이 먹은 간식 때문에 소화불량이었어.
3일 치 소화제를 받은 뒤, 집에 오는데 눈물이 났어.
네가 심각한 병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어젯밤, 겪은 서러움이 밀려왔거든.
매일 지나는 산책길, 24시 동물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어.
그리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단다.
흥, 누가 노견 아니랬나…. 워낙 노견이라서 그래서 뭐!
잘만 지낸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