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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May 09. 2024

나는 지치고 너는 안쓰럽고

오늘 아침 나는 네게 등을 돌렸어.

평소처럼 너랑 볼을 비비며 뽀뽀하지도 않았고, 산책하러 가자고 속삭이지도 않았어.

우리 집은 아침마다 공기가 따듯한데, 오늘은 좀 차가웠어.     

너는 노을이 질 때까지 코를 골며 자고, 나는 너와 반대로 누워서 한숨을 쉬었어.

'이렇게 잘 잘 거면서 어젯밤은 왜….'  

   

넌 어제 밤새 짖고, 칭얼거렸잖아.

네가 아픈 지 6개월이 지났고, 나는 그 후 5시간 이상 통잠을 잔 적이 없어.

특히 어제는 품에 안아도, 밤 산책을 해도 짜증만 냈잖아.

혹시 네가 아픈가 하고 걱정했지만, 불과 3일 전 검사에서 네 수치가 괜찮다고 했는걸….     


어제 너는 내게 답 없는 질문을 낸 것 같아.

밥도 정답이 아니고, 대소변도 틀렸고, 통증 때문인가 진통제를 먹였는데 그것도 아니래.

넌 큰 소리로 짖거나, 베개를 물면서 짜증을 냈어.

눈에 핏줄까지 빨갛게 선 너를 보면서 혹시 짜증을 내다 아플까 안절부절.

옆집 이웃한테 피해가 갈까 안절부절.     

너랑 실랑이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창문이 벌써 밝아지더라.     


당직이 끝난 M씨에게 네 만행을 일러바쳤어.

"얘, 밤새 잠도 안 자고 짖고 눈 충혈된 거 보이지? 짜증 짜증 개짜증."     

"어디 아픈가? 왜 그랬지?"     

크...푸우우... 커어...푸우...     

뭐야…? 이렇게 갑자기? 갑자기 잠든다고?   

  

M씨가 냉감패드 위에 미남이를 눕혔어.     

"더웠나 봐. 네가 잘못했네."     

네 다리를 쭉 펴고, 코까지 고는 너를 보니 웃음이 나더라.     

거실에는 밤새 너랑 실랑이한 흔적들이 널려있어.

짜증을 내다 오줌 지린 이불부터, 간식, 피하 수액 바구니까지….     


6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네 마음을 다 몰라서 미안해.

해 뜬 아침에 

나는 지치고 너는 안쓰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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