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는 내 생일을 일주일 앞둔 날, 떠났다.
한 달 전까지 나와 미로, M씨와 함께 전라도로 여행을 가고,
불과 3주 전에도 본가에서 가족 모두와 시간을 보냈다.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듯...
그리고 마지막 인사가 끝났는지, 미남이는 갑자기 사경을 헤매며 밥을 먹지 못했다.
눈을 감고, 숨만 헐떡였다. 계속 설사를 했다.
병원에 갔다.
평소처럼 간 수액을 놔달라고 했지만 수의사는 입원보다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하는 수의사가 아니었다.
지금껏 미남이를 진료하며 어떤 때는 나보다 더 예민하고 지나치게 미남이 치료를 해왔던 수의사였다.
췌장염에 잘 걸리는 미남이의 식단을 꼼꼼하게 감시하는 수의사였는데,
이제는 미남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서 나는 울며 약만 받아 돌아왔다.
M씨는 긴 휴가를 내고, 미남이만 돌보며 지냈다.
휴가가 끝나고, M씨의 야간 당직 날이 돌아왔다.
M씨는 차마 미남이를 두고 출근할 수 없다며 근무를 앞두고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미남이가 밥을 먹었다. 며칠 만에 똑바로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은 괜찮으니 출근하라는 것처럼.
엄마가 올 때까지는 내가 버텨보겠다는 것처럼.
미남이는 정말 다음 날 M씨가 퇴근하는 아침까지, 밥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나는 미남이가 한번 더 고비를 넘겼다고 마음으로 억지를 부렸다.
M씨가 퇴근한 뒤, 우리는 자주 가던 보라매 공원에 갔다.
오늘은 미남이가 개모차에 앉아 오랜만에 눈을 뜨고 있었고, 미로는 평소처럼 줄을 당기지 않고
미남이 속도에 맞춰주었다.
나와 M씨는 그저 개모차를 끌었다.
그런데 미남이가 갑자기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우리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제발 도와달라고 빌었다.
수의사는 이미 혈관도 잡히지 않는다며 마취제로 재우는 일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진정제와 진통제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M씨는 종일 사랑한다고 미남이 귀에 속삭였다.
나는 어디에 기도해야 할지 몰라서, 창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내가 기억하는 일,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내가 다 잘못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누군지 모를 누군가에게 빌고 또 빌었다.
미남이는 발작을 하고, M씨는 미남이에게 사랑을 말하고, 나는 어딘가에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하루가 그렇게 갔다.
다음 날 아침, 미남이가 떠났다.
미남이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6년 전 처음 오던 날처럼.
미남이의 병이 악화된 뒤, 봐둔 장례식장을 예약했다.
장례식장을 가는 중간에도, 장례식장을 도착한 뒤에도 M씨는 다시 돌아가서 하루만 더 같이 있겠다고 했다.
그러다 다시 오늘 편히 보내주자고 했다. M씨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화장 전, 나는 잊지 않기 위해 미남이를 계속 바라봤다.
처음 내가 사랑하던 퉁퉁한 엉덩이는 뼈가 앙상했고, 6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던 홀쭉한 얼굴이었다.
미남이가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고른 가장 예쁜 수의를 입고 편안한 모습으로.
M씨가 무너졌다.
늘 이성적이고, 조금은 냉혈 했던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듯, 통곡을 했다.
그녀를 안 지 20년, 그녀의 오열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화장이 끝나길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는데 M씨의 발 밑에 무지개가 떴다.
비가 온 날도, 특별한 빛이 반사되는 창문도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우리 눈앞에 무지개가 보였다.
"M아, 너 그만 울라고 미남이가 보여주나 봐."
통곡하던 M씨는 무지개를 보고, 아주 살짝 웃었다.
얼마 뒤, 직원이 M씨에게 작은 흰 단지를 주었다.
M씨는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안은 것처럼 몇 번이고 단지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