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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Aug 07. 2017

<택시운전사> by 장훈

불편한 이야기가 있다. 그곳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 광주, 5.18 묘역 기념관에는 그 날의 끔찍함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해당 사진을 보러 들어가는 입구에는 심신미약자는 조심하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강풍 작가의 <26년>은 복수극이라는 형태로 그려내었다. <모래시계>에서, <화려한 휴가>에서 계속 이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이다. 한 영화평론가의 한줄평처럼, 이 감독, 이 배우, 그리고 이 소재의 조합에 거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아쉬움도 컸다. 어색한 부분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직 이 이야기는, 무겁다,라고.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순천 장면에서 송강호 배우의 연기는 정말 멋졌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한계 지점이기도 하다. 한 명의 주연 배우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주연 배우에게만 갇혀 있다. 그런 영화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가 크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영화라면 차라리 내레이션 형태 등으로 배경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민 군, 혹은 시위대의 순수함을 강조하지도, 평범함을 보여 주지도 못했다. 이 부분이 우리가 이 사건을 보다 더 깊게 다루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시위대와 진압군을 단순한 선악구도로만 보여주는 형태의 영화여야만 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서울 시민인 송강호 배우의 눈이 아닌 토마스 크레취먼이 분한 한스 힌츠페터 기자의 눈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진압군, 공수부대의 잔혹함도 충분히 강조되지 못했다. 그들의 평범함이 조금 더 강조되는 여러 장면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엄태구 배우의 연기가 빛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래서 아쉬웠다. 배우의 연기력을 더 빛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 이제 돌아갈래'를 외치던 <박하사탕>의 장면이 떠오른다. 단순한 선악구도로만 치닫지 않게 한 점은 좋았지만, 그 부분이 너무 늦었달까.

사복조 조장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캐릭터 자체가 붕 떠있다. 마지막 차량 추격전 장면은 그런 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애매하기 짝이 없다. 검문소를, 광주 택시 기사들은 어떻게 돌파한 것인가? 불필요한 장면이었다. 또한 명확한 악역을 만들어내면서 영화의 이미지, 이야기가 진부해진 지점도 있다고 본다. 이 사복조 조장은 또한 말이 너무 많다.

시위대의 순수성은 류준열 배우의 이미지와, 광장에서 주먹밥을 나눠주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광주 택시계의 큰 형님이라고 할 수 있을 유해진의 캐릭터로도.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무엇이 이런 사람들이 뛰쳐나가게 만들었는지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감독은 이 배경 이야기를 모두가 다 받아들이고 들어왔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부연설명이라고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후자라고 하면 영화의 시선은 택시 운전사가 아닌 기자 힌츠페터에게 맞춰져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송강호의 태세 전환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그 계기가 분명하지 않다. 주먹밥. 주먹밥 소녀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 그런 부분들이 잘 편집된 이미지로 제시되지만, 홀아비 캐릭터와의 내적 갈등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여러모로, 이야기가 애매한 영화였다. 배우도, 연출도 좋았지만 이야기 자체가 뭔가 맥 빠지는 느낌을 들게 했다.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전달하기 위해선 조금 다른 접근도 필요했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적극적인 신파였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접근이었다면.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다른 리뷰에서 읽은 내용. 택시운전사는 광주에 손님을 두고 왔다. 때문에 광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다시 5.18로 돌아가는 것과 유사하다는 내용. 왜냐? 그것이 직업윤리이기 때문이다. 택시 운전사에 대한 내용이 영화 중간중간에 나온다. 마치 이영도 <눈물의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표현들 같았다. 택시운전사는 택시를 준비한다. 여정을 준비한다. 여정의 목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병원으로 향해 줄 뿐, 병원에 가는 목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안된다. 그 목적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관심을 가진다. 아니 가지지 않는 척 노력하지만 가지게 된다. 영화의 시선은 그렇다. 산통을 겪는 임산부를 태웠을 때에도, 힌츠페터를 태웠을 때에도.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 - 손님이 두고 간 9급 공무원 수험서를 보여주면서 길을 걷는 이를 도와주는 택시운전사가, 그 목적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가란 무서운 일이다. 사복조의 조장은 잘못된 국가관, 이념론으로 빨갱이라고 송강호를 매도한다. 광주의 택시운전사는 제대로 된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를 기자라고 할 수 있냐고 평가하며 탑승 거부를 한다. 송강호는 말한다. 아니, 어쨌든 택시운전사는 돈을 받았으면 손님을 날라야지. 광주의 택시운전사들도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힌츠페터는 집으로 도망치려는 송강호에게 돈을 맡긴다. 광주의 택시기사들은 자신의 생계유지 수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러 간다. 서울애 서 백미러 값을 5천 원에서 3천 원으로 깎던 송강호는. 힌츠페터를 내버려두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엄태구는 평가를 내리고, 문을 열었다. 사복 조장은 끝까지 송강호를 쫓는다. 영화 마지막. 실화. 일등석 손님에게는 많은 것을 묻지 않는다. 돈을 많이 가지고 가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현실적이다. 그러나 송강호는 만원 밖에 없는 손님에게 만원만 받는다.

평가는 끔찍한 일이지만 평가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고 상호 간의 발전을 꾀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굳이 1980년의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다시 평가를 한다. 그 평가를 내린 영화를 다시 평가한다.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을 다시 보면서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일이다. 합법적인 폭력수단의 독점을 통해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국가가, 심지어는 그중에서도 군인이 시민을 향해 발포를 행했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 행동의 목적을 바로 보고 평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광주라는 손님을 맞으러 다시 1980년대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왜 시민군들은 저항했는가, 저항할 수 있었는가. 앞으로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회가 해체되면 끝인 것일까? 평가받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의 평가 만으로 살아가는 독단을 저지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불필요해 보이는 오지랖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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