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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Dec 16. 201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by 신영복

글쓰기란 무엇인가: 편지글에 관해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럴 때, 행위의 구분은 그 목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그럼 글쓰기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주장하는 논설문. 설명문. 소설과 같은 이야기글들도 보통은 주제의식이라고 하는 '말하고자 하는 바' 가 있는 편이다. 시는? 표현으로만 구성된 것 같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충만한 경우가 많다. 또한 그 '미디어', 형식 자체가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난 형태보다는 그 방향 - 읽는 이를 누가 하는지를 가장 큰 구분점으로 삼는 편이다. 이 글은 나만 읽을 것인가. 모두가 읽을 것인가. 특정 개인이 읽을 것인가. 일기글의 경우 나만 읽는 글이고, 나는 그런 글을 딱히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핑계로 일기를 써본 일이 거의 없다. 또한 마찬가지로 모두가 읽어도 되는 글이 아니라면 딱히 쓰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페이스북 업로드도 항상 전체 공개 위주로 한다. 


 그런 내게 편지란, 매우 특이한 글쓰기의 형태이다. 읽는 이가 정해져 있다. 때문에 글쓰기의 난제 중 하나가 해결이 되는 편이다. 글을 쓸 때, 읽는 이가 누구인지, 어떤 것을 알고 모르는지 판단할 수 없기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불필요하게 장황한 설명을 하거나, 필요한 설명을 빼먹는 일들. 편지글은 그런 실수를 할 가능성이 적다. 또한 편지는, 산문체이지만 '대화'를 전제로 하기에, 다른 글과의 맥락이 다른 글에 비해 중요하단 특징이 있다. '이전 편지에서 보셨듯이...' '지난 편지에서 질문하신 내용에...'.


 나도 편지를 가끔 쓴다. 나를 둘러싼 현대 사회에 관한 글을 쓴 때에, 편지글의 형식을 빌리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 대한 내용 전달과 나의 의견을 표현하고 싶었었는데, 누구에게 어느 수준의 정보를 전해 야할까를 고민하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조카를 떠올리게 되었다. 아직도 '아빠' 외에는 제대로 발음하는 말이 없는 조카. 그를 위한 글을 쓰기 위해 편지글을 택했었다. 가능한 내 조카가 중학생이 되어서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했고, 개인적으로는 만족할만한 형태로 글이 나왔었다. 


 그래서 대상자를 특정한다는 특징 때문에, 편지가 '쉬운 글쓰기'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회사에서 이메일을 쓸 때도 몇 번이고 고쳐 쓰는데. 나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이메일을 잘 못쓰는 회사원들은 정말 많다. 심지어 업무 이메일의 경우에는 정형화된 형식이 있으며, 수사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도 말이다. 


이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고민을 좀 해보았다. 문제는 '읽는 이'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독자' 가 아닌 '개인'으로 말이다. 독자의 반응보다는, 이 사람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영역에서의 의식. 물론 대중을 향해 글을 쓸 때에도 대중이 이걸 싫어할까, 좋아할까는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읽는 이가 특정되면, 그 문제가 개인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어떨 때는 다수의 비난보다는 한 개인의 비난이 더 무서우니까. 때문에 편지글에서 자기검열은 심해진다. 


 때문에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편지글이라고 했는데. 글에 거침이 없어 보였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 (아버지, 어머니 등) 와의 다양한 주제의 대화 안에서 자신의 의견이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맥락이 일부 사라진 글에서도,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내용적으로도 발췌문과 같은 형태로 진행된 '지식 전달' 도 꽤나 훌륭하게 수행하는 글들이었다.


 어쩌면, '옥중서간'이라는 특수성이 가져오는 행운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검열'이라는 특수성. 워드프로세서로 두드리는 글쓰기가 아닌, 제한된 종이와 펜으로 써야 하는 편지. 때문에 '편지'의 형식을 뛰어넘는 좋은 글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형식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신영복의 글이 가지는 힘은, 강력했다.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 쓴 글에서 나는 자유를 볼 수 있었다. 아이러니. 시대의 비극이 없었다면 옥중 서간도 없었을 것이고, 이 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우린 알 수 없다. 서울의 봄이 5 공화국을 무너뜨렸다면, 유신헌법이 없었다면 신영복 같은 인물은 풍족한 환경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글쓰기에 몰두하여 명작을 탄생시켰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비극이 만들어낸 작품을 읽고, 감탄하는 내 모습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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