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기다림과 만족을 넘어서
작가, 이영도. 한국에서 장르 문학을 읽는 이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교과서에 실린 문장을 가진 장르 문학 작가. 한국,일본, 대만에서 300만부 이상을 팔아치운 작가. 최근의 장르문학들을 읽으면서, '이영도 키즈' 라고 칭할 만한 작가들을 몇 보았다. 숨길 수 없는 오마주들. 10년간 작품을 내놓지 않았지만, 그 동안에도 한국 장르 문학은 분명 작가 이영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영도의 첫 작품인 <드래곤 라자>를 읽던 어린 나를 기억해본다. 10년만의 장편, <그림자 자국> 을 보초를 서며 읽던 신병때를 기억해본다. 작가는 아니지만, 나는 '이영도' 에게 큰 영향을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 부터 직장인까지, 그의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사고 또, 틈틈이 읽으려고 같은 책을 이북으로도 샀다. 그런 내게 <오버 더 초이스>(이하 책) 의 출간 소식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는 멍해졌고, 이내 다시 재독을 시작했다. 다시 맞이하는 첫 장. '서니 포인도트' 의 죽음에서 느낀 감정. 어린 카닛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충격적이고, 작가가 장편을 내놓지 않은 10년간 한국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여러가지를 담고 있지만, 책은 이 사건이 핵심이다.
물론, 더 큰 이야기가 책 속에는 있다. 수십만년 지속될 화산. 화산을 막기 위한 식물왕의 출현. 식물왕을 막기 위한 백금기사단. 인류를 초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후와 피피' 의 약속. 이쯤 가다보면 '서니 포인도트' 의 죽음은 사소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인류의 멸망, 동물계와 식물계의 갈등들.
하지만 그럼에도 '서니 포인도트' 는 이 책의 핵심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사그라든 어린 목숨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티르 스트라이크는 마지막에 가서, 조금 더 자주 '서니 포인도트' 를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 죽음을 기억하고, 넘어서겠다고 말한다. 덴워드 이카드 처럼 '관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