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분석하기 #03
작년에 쓴 미디어/콘텐츠 분석에서 이어진 생각입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증가 추이가 꺾였습니다. 우와, 무슨 일이지? 이제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일까요? 디즈니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하여 시장을 뒤집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넷플릭스에서 <프렌즈>를 다시 보지 <기묘한 이야기>를 보지 않고 있습니다. <왕자의 게임>의 완결을 미루다가, 보지 않았습니다. <알라딘> 실사판을 보면서 고전적인 이야기는 살아 있고, 그만큼 동떨어졌구나란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한편으로 스트리머들은 매달 한 번씩은 구설수에 오릅니다. 유튜브 인기 코너에는 사과문이 매달 올라왔습니다. 인터넷에서 시작하여 MBC까지 갔던 '감스트'는 자신의 왕관을 모두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와썹맨>은 계속 성장했고, '스튜디오 룰루랄라'는 <워크맨>으로 다음번 히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tvnD 오리지널로 <괴릴라 데이트> 같은 것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상파 3사의 진공이 더 무섭습니다. 10년, 20년이 더 된 콘텐츠를 잘라 올리고 있습니다. 개인 유튜버가 하던 영역이었는데, '저작권자'들이 직접 판에 뛰어들었습니다.
김태호 PD의 복귀는 '유튜브'를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놀면 뭐하지>의 우상단 채널 로고가 인상 깊습니다. 수십억이, 아니 그 이상이 투자되었을 수도 있는 브랜드 로고가 아니라 손글씨로 대충 쓴 듯한 표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방증 같아 보였습니다. 나영석 PD는 여전히 자신의 솜씨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스페인 하숙>과 같은 시도는 스타 PD가 만들어낸 스타일의 정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캠핑 클럽> 이 나왔습니다. 그 전에는 <효리네 민박> 이 있었죠. 나영석 PD가 '느림'을 소비하는 시대를 정의한 시점에서 가장 거기에 적합하다고 느낀 콘텐츠. 바로 그 PD가 이번에는 <캠핑클럽> 을 가지고 왔습니다. 데뷔 시점으로부터 21년이 지난 후, 이제는 기혼자가 반을 넘는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전의 예능에 등장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전복하며, 시대가 바뀌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극단적으로 '거치 캠' 외에 카메라맨이 보이지 않습니다. 출연자의 '쌩' 이야기를 듣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한 편으로는 그럴 수 있는 기술적인 진보와 방송 자본의 거대화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백종원 씰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유튜브 구독자 10만, 100만에게 증정해주는 실버 버튼과 골드 버튼을 한 날 한시에 수령한 시장의 파괴자. 유튜브 시작 며칠 만에 200만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한 그는 현대 한국 콘텐츠를 대변하는 캐릭터입니다. 먹을 것, 인터넷 문화, 솔직한 표현 그리고 더 대단한 부분은 이 모든 것이 '사업'화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캐릭터가 브랜드이고, 또한 콘텐츠입니다. 기존의 방송에 등장해서도 그는 이를 잘 지켜냈었습니다. '마리텔' 은 그에게 축복이었을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업의 재무제표를 보진 않았었도, 그의 브랜드는 계속해서 커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요. 콘텐츠를 가진 tvn이나 다른 방송사들도 그의 얼굴을 계속해서 재활용합니다. 콘텐츠가 왕인 시대? 여기서 의문이 사-알짝 듭니다. 새 시대의 콘텐츠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하나의 축은 확실합니다. 수많은 시청 데이터, 막대한 자본. 넷플릭스와 디즈니로 대변됩니다. 그들은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그것을 최대한 빠르게 - 그러나 다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알라딘>의 이야기에 페미니즘을 섞진 않을 수 있었을까요? <주먹왕 랄프 2>가 떠오릅니다. 디즈니 공주 총출동 장면에서 자신의 모기업의 기백년의 역사를 부정해도, 장사가 된다는 것을 그들이 몰랐을까? 수십조의 가치를 지닌 대기업은 그래서 시장의 요구를, 어쩌면 시장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던 욕구를 채워주면서 돈을 쓸어 담습니다. 소셜미디어와, OTT 등을 통한 쌍방향 셋톱에서 수집되는 정보들이 갖춰지면서 이제는 독립제작자들의 영역은 좁아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장이 캐치하지 못하는 영역에서의 독창성을, 시장이 선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어라? 그런데 이상한 지점들도 떠오릅니다. 넷플릭스의 굳검함의 최소 3등 공신은 될 <하우스 오브 카드>. 작품 기획에서부터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이 대작의 대미는 주인공인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문으로 인하여 작품을 다 뒤집어야만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기획이었고, 실제로도 성공적이었으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급소를 찔렸지요. 디즈니는 어떨까, 글쎄요. 그것의 올바름의 여부를 떠나,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에서의 MJ역할, 새로이 제작되는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캐스팅 등에서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팬들에게 대차게 까인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 도 떠오르네요. 질 수 없는 카드를 쥐고서 자꾸 실수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콘텐츠는 어쨌든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구나. 세상은 복잡하구나, 뭐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죠.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잠시 보았습니다. 나영석 PD의 문법 같은 느낌. 그리고 '뷰티'라는 방식. '해외'에서 '한국'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떠올랐습니다. 확실한 것은 저에게는 맞지 않다는 것이었죠. 성공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캠핑클럽> 과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는데, 저는 <캠핑클럽> 에 한 표를 주고 싶네요. (경쟁 시간대는 아닌 걸로 알지만) 어차피 지금은 이슈를 얼마만큼 만들 수 있냐의 시대니 까요. TNMS는 기존 시청률에 VOD를 더한 지표를 만들었고, KBS와 닐슨은 여러 가지 소셜 변수들을 포함하여 지표를 개발하고 있죠. 아직 정제되진 않았지만, 오래된 미디어에서도 이젠 '편성된 시간'에 보는 것 자체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어야 할 겁니다. 경연 방식의 <나는 가수다>부터, 지금의 <쇼미 더 머니> <프로듀스 시리즈> 등, 그리고 최근 대박을 친 <미스 트로트>는 그 시도의 일반적인 결과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방송' 이 중요할 수 있는 콘텐츠, 경쟁 구도와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 그리고 팬덤을 만들어내는 서사. 메이저 방송사들이 잘만 기획하고, 엄청 잘 마케팅하면 중박은 치기 쉬운 구조입니다. 또한 음악은 나라가 허용하는 유일한 마약 아니겠습니다. <두니아>에서 박진경 PD가 선보인 시청자 투표를 통한 스토리 전개 시스템은 신선했지만 아직 자리 잡진 못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서바이벌, 경연은 여전히 버리기 어려운 패인 것 같습니다. <미스 트롯> 이 다시 증명했고, <쇼미 더 머니 8> 이 다시 아직 우리 죽지 않았다고 보여주겠지요.
<쇼미 더 머니> 이야기가 나왔으니, <미스 트롯>과 함께 또 고민하게 됩니다. <쇼미 더 머니> 1 시즌이 대박이었던가,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존버는 승리한 걸까요. 지금은 트렌드와 이슈를 만드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힙합'은 <쇼미 더 머니> 1 시즌에서는 메이저 대중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젊은 분들에게는 메이저였을 수 있겠죠. 이제 그 사람들이 나이가 들었고, 래퍼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소비 시장의 주류는 저것도 노래냐라는 욕을 듣던 사람들이 되기도 했죠. 시청률도 2030이 중요하다잖습니까? TV가 트렌드를 선도한 것일지, 그저 트렌드가 시대에 맞춰 변화한 것인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확! <미스 트롯> 이 나왔습니다. 성인가요라고 불린 '트로트'를 맞춰 기획, 제작을 한 TV조선의 결단이 놀랍다가도, 다시 넷플릭스와 디즈니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우리 채널의 주 시청자는? 누구지? 네, 그들은 지극히 합리적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신의 '문법'을 빌렸을 뿐인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다시 있을까 의심스러운 종편 예능 10% 이상의 시청률이지요. 이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3~40%의 싸움이 아니지 않을까, 10%. 열 명중 한 명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정도라면 이제 꼭 방송국이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미손이, 영 앤 리치(슈퍼비)가 쇼미 더 머니를 패러디한 듯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진짜 좋아한 것이 '생생한 현장감' '거대한 무대' 일까, 아니면 그 경연에 나왔던 한 명 한 명의 스토리인가. 하는 생각이. 백종원 씨가 다시 떠오르고, 사라져 갈 것 같은 스트리머들, 캐빈 스페이시가 떠오릅니다. 왜 유튜브에서 백여 명이 모여서 스트리머에게 도네(도네이션)를 하는가. 하꼬방(판잣집을 속되게 이르는 방, 소수의 시청자가 있는 실시간 방송방을 뜻하는 인터넷 은어) 은 왜 존재할 수 있는가.
콘텐츠가 왕이라고 합니다. (Contents is the king) 하지만 콘텐츠의 주인공은 황제쯤 되지 않을까요? 어떤 서사나 극이나, 어떤 장르라도 - 특히 상업적인 콘텐츠에는 '얼굴' 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그 캐릭터를 음미합니다. <무한도전>의 성공 비결은 무수히 많은 문법을 시도하지만 '캐릭터'가 확고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종원 씨는 어느 방송을 나와도 '백종원'이라는 캐릭터입니다. <와썹맨>은 '박준형'이라는 캐릭터의 비방용(비 방송용) 캐릭터입니다. 나영석 PD의 느린 문법에서는 캐릭터는 더욱 주목받습니다. <캠핑클럽> 은? 그 흔한 미니게임 하나 없습니다. '캐릭터'와 '이야기'만 남았습니다. 어쩌면 보다 고전적인 의미의 극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야기는 우리를 몰입하게 하지만, 우리가 이 콘텐츠를 사랑하느냐 마느냐의 시작은 결국 얼굴,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졌네요, 네. 저는 '콘텐츠' 에는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페르소나'로 말할 수도 있겠네요.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정말로 디즈니와 넷플릭스 같은 공룡들이 싸우는 시대에 '저작권'이,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하면, 이 전장이 그 무기들이 판치는 곳이라면 '캐릭터'가 '팻맨'이고 '리틀보이'(2차 대전 당시 사용된 원폭 명칭)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즈니에게 현재까지 판정승을 주고 싶은 상황이고요. 캐빈 스페이시는, 프랭크 언더우드는 사라져도 미키 마우스는 새 영화도 없이 레고로 1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완판이 됩니다. 일본의 총리는 '마리오' 캐릭터로 올림픽을 알립니다.
이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