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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몸속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총소리나 시위의 함성 같은 건 없다. 대신 아주 미세하게, 약물이 혈관을 따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오래된 믿음 하나가 무너지고 있다.
“시급과 PT 비용을 합친 것보다 다이어트 약이 싸다.”
처음엔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말 속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압축한 문장이 숨어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방식, 그리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은 오랫동안 ‘노력의 결과물’로 여겨졌다. 땀을 흘리고, 식욕을 참으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이 곧 미덕이었다. 헬스장은 그 신념의 성지였고, ‘꾸준함’은 신앙처럼 찬양받았다.
하지만 GLP-1 계열의 약물이 등장하면서 그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사 한 방으로, 과거 수개월간의 운동과 식단 조절의 결과를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질문은 단순히 “운동을 대신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건강을 얻기 위해, 누가 어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로 옮겨갔다. 노력의 문제에서 돈의 문제로, 의지의 영역에서 지불 능력의 영역으로 건강의 주소가 옮겨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 헬스 산업은 사실 ‘결핍의 시대’가 아니라 ‘풍요의 시대’에 만들어졌다. 인류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운동이 필요 없었다. 생존 자체가 곧 운동이었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우리는 너무 빠르게 풍요를 얻었다. 몸은 여전히 수렵 시대의 ‘결핍 모드’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환경은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되는 ‘과잉 모드’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생긴 버그가 바로 비만이다. 그리고 헬스 산업은 그 버그를 고치기 위한 인류의 첫 번째 패치였다. 우리는 헬스장이라는 인공의 공간에서, 사냥 대신 런닝머신을 뛰며, 의식적으로 땀을 흘리는 ‘자발적 강제노동’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땀은 신성한 상징이 되었고, 열심히 운동하는 몸은 도덕적 우위의 증거처럼 여겨졌다. “운동하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시장 전체를 지탱했다.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지름길을 제시한다. GLP-1은 마차 시대의 자동차와 같다. 단순히 빠른 수단이 아니라, 마차를 끌던 말과 마부, 그리고 역참이라는 전체 생태계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이 약은 단지 살을 빼는 약이 아니다. 건강을 얻기 위한 ‘노동과 시간’이라는 비용을 ‘화폐 자본’으로 대체하는 혁신이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에게 돈은 새로운 근육이 되고, 주사는 새로운 의지가 된다.
그러나 이 변화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이제 사회는 ‘바이오 계급(Bio-Class)’으로 나뉜다.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바이오 엘리트’가 된다. 그들은 유전자 데이터와 신약을 통해 몸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산처럼 ‘설계’한다. 건강은 그들에게 성취가 아니라 구독 서비스이며, 선택 가능한 럭셔리다.
반면 돈은 없지만 여전히 의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은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며 옛 미덕을 지킨다. 그리고 시간도 돈도 없는 사람들은 아예 건강의 사다리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제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의 자산 규모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헬스 산업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진화한다.
첫 번째 변화는 ‘운동의 목적’이다. 체중 감량이라는 목표가 사라지자, 운동은 다시 ‘유희(Play)’로 돌아온다. 누군가는 암벽을 타며 몰입을 느끼고, 누군가는 달리며 동료와의 유대를 즐긴다. ‘얼마나 뺐느냐’보다 ‘얼마나 즐거웠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오는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코칭의 진화’다. 이제 트레이너는 단순히 운동 자세를 교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전자, 수면, 스트레스, 식습관 데이터를 조율하며 개인의 인생을 설계하는 ‘라이프스타일 아키텍트’가 된다. 코칭은 관리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구조 설계가 된다.
오늘날 건강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헬스장 회원권, 스마트워치, 영양제, 그리고 이제 GLP-1 주사까지 — 건강은 고급 구독 서비스의 형태로 존재한다. 한 달의 건강은 카드 명세서에 찍힌 금액만큼 유지된다.
예전에는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가 건강의 조건이었다면, 이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건강이 노동에서 상품으로, 의지에서 소비로 넘어간 것이다.
GLP-1은 단순한 약이 아니다. 그것은 ‘노력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기술이 건강을 대신 관리해주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건강이 더 이상 모두의 권리가 아니라, 일부의 사치품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의 건강은, 그리고 당신의 몸은 얼마짜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