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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으로 일하기

365 Proejct (311/365)

by Jamin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25: 신뢰의 딜레마에 이어서 신뢰의 창과 회의의 방패에 이어서

내 글에 이어서 생각하기 026: 일을 공유하고 관리하기 에 이어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 015: 관계기록법

어떻게 일할 것인가 001-0: 흐름으로 일하기


우리가 일을 공유하고 기록해야 하는 진짜 이유


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는가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습니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각기 다른 악보를 보며 연주하지만, 결국 하나의 조화로운 교향곡을 완성해야 합니다. 만약 바이올린 연주자가 자기 파트만 보고 전력 질주하거나 지휘자가 전체 흐름을 놓친다면,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여도 그 결과는 소음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일이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완료'는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됩니다. 이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중복된 일을 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애쓰며, 서로를 기다리다 지쳐갑니다. 우리가 일을 공유하고 기록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관리'를 넘어, 함께 일하는 시스템의 '흐름(Flow)'을 만들고, 관찰하며, 끊임없이 개선하기 위함입니다.


1. 흐름의 시작: 멈춤의 미학, WIP 제한


시작보다 완료에 집중하는 문화: WIP(Work In Progress) 제한


여러 일을 동시에 벌이는 것은 분주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잦은 '문맥 전환(Context Switching)'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리는 행위입니다. 이는 출퇴근길의 교통 체증과 같습니다. 모든 차선이 꽉 막혀 있다면, 결국 아무도 제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끌어오기(Pull)' 방식은 이 정체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등입니다. 하나의 일을 '완료'해야만 다음 일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진행 중인 일(WIP)의 수를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팀의 집중력을 보호하고, **'시작한 일은 끝낸다'는 건강한 책임감의 문화를 만듭니다.


Action Item: 6명 규모의 팀이라면, '진행 중' 상태의 업무를 3~4개로, '리뷰 대기'를 2개로 제한해 보세요. 한도를 초과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대신, 막힌 일을 함께 뚫어주거나 동료의 리뷰를 돕는 것이 팀 전체의 속도를 높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큰 그림을 현실로: 가설을 검증 가능한 조각으로 나누기


"고객 이탈률 개선" 같은 거대한 목표는 그 자체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몇 달 뒤에도 여전히 제자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큰 바위를 누구나 들 수 있는 조약돌로 쪼개야 합니다.



Epic (수개월): 측정 가능한 비즈니스 가설.

예: '간편 결제 도입으로 신규 고객의 첫 구매 전환율을 5% 향상시킨다.'


Story (수주): 사용자가 경험하는 가치의 단위.

예: '신규 사용자는 카드 등록 없이 소셜 로그인을 통해 즉시 결제할 수 있다.'


Task (1-3일):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실행 단위.

예: '카카오페이 결제 API 연동'


이렇게 잘게 나누는 이유는 단 하나, 빠른 학습입니다. 작은 단위의 '가설-실행-검증' 주기를 빠르게 반복하며, 우리는 잘못된 길에서 더 빨리 유턴할 수 있습니다. 만약 3일 이상 걸리는 Task가 있다면 자문해 보세요. "이 결과물을 독립적으로 테스트하고 배울 수 있는가?"


2. 흐름의 명료함: 누구나 이해하는 언어로 말하기


제목: 목표가 아닌 '행동'을 담기


업무의 제목은 그 자체로 명확한 '요구사항'이 되어야 합니다. "CI 개선"이라는 제목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써보세요.


"CI 빌드 시간을 5분 미만으로 단축하기 위한 캐싱 전략 조사"



좋은 제목은 [무엇을] [왜] 하는지 명확한 [동사]로 시작합니다.

행동은 시작과 끝이 있고, 측정 가능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설명: 맥락(Why)이 전부다


복잡한 템플릿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읽는 동료가 어떤 정보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입니다. 특히 '왜(Why)'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맥락은 길 잃은 배의 등대와 같습니다. 아래 형식은 명확한 맥락을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사용자 스토리 (As-I-So)

"As a 처음 방문한 사용자, I want 별도 가입 없이 소셜 계정으로 로그인 so that 빠르게 서비스를 탐색할 수 있다."


수용 조건 (Given-When-Then)

"Given 사용자가 '카카오로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고, When 카카오 인증을 완료하면, Then 별도 정보 입력 없이 즉시 회원 프로필이 생성된다."



3. 흐름의 통제: 무자비한 우선순위


NOW, NEXT, LATER: 단순함의 힘


모든 일은 중요해 보이지만, 모든 일을 '지금' 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자비한 단순함(Ruthless Simplicity)'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적습니다.


NOW: 이번에 세상이 무너져도 반드시 끝내야 할 일.

NEXT: NOW가 끝나면 바로 시작할 준비가 된 일.

LATER: 좋은 아이디어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모든 것.


백로그는 보물창고가 아니라 신선식품 코너입니다. 상위 10~20개만 신선하게 유지하고, 나머지는 아이디어 목록으로 가볍게 관리하세요.


역산 스케줄링: 마감일로부터 거슬러 생각하기


금요일 배포가 목표라면, 목요일엔 QA가, 수요일엔 코드 리뷰가, 화요일까지는 개발이 끝나야 합니다. 이처럼 마감일로부터 거꾸로 계획을 세우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때 예상 시간의 20%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위한 버퍼로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4. 흐름의 가속: 협업으로 병목 깨부수기


리뷰: 24시간의 약속


흐름에서 가장 큰 병목은 '대기 시간'이며, 특히 리뷰 대기는 동료의 의욕을 꺾고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킵니다. 완벽한 리뷰보다 빠른 피드백이 100배 더 중요합니다. '24시간 내 응답'을 팀의 기본 원칙으로 삼으세요. 리뷰 대기(PR, 디자인 시안 등)가 WIP 한도를 초과하면, 새로운 개발보다 리뷰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팀 전체의 처리량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좀비 이슈: 살아있는 시체들을 정리하기


30일 이상 아무런 진척이 없는 일, 즉 '좀비 이슈'는 시스템의 건강을 해치는 독입니다. 우리의 집중력과 자원을 조용히 갉아먹는 이들을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7일 이상 업데이트가 없으면 자동 알림을 보냅니다.

14일 이상 정체되면, 이 일이 여전히 유효한지 재평가합니다.

필요 없다면 과감히 닫으세요. 애매하게 남겨두는 것이 최악입니다.



5. 흐름의 진화: 측정하고 꾸준히 개선하기


숫자로 말하기: 우리 팀의 건강 상태 진단하기


감으로만 일하는 것은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데이터는 우리가 어디에 막혀있는지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사이클 타임 (Cycle Time): 일이 '진행 중' 상태로 들어와 '완료'될 때까지 걸린 시간. (팀의 집중력과 효율성)


리드 타임 (Lead Time): 아이디어가 처음 제안된 순간부터 사용자에게 전달되기까지 걸린 시간. (고객이 가치를 경험하는 속도.


누적 흐름 다이어그램 (CFD): 각 상태에 일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보여주는 시각 자료. (병목의 위치)



단,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속도만큼 중요한 것은 품질입니다. 재작업(Rework) 비율이 높다면, 우리가 무언가 잘못된 것을 '빨리' 만들고 있다는 위험 신호입니다.


회고: 추상이 아닌 '실행'을 만들기


개선은 이벤트가 아니라 문화입니다. "소통을 잘하자" 같은 모호한 다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회고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만드는 자리여야 합니다.


주간 회고 (30분): CFD를 함께 보며 "이번 주엔 리뷰 대기가 왜 길어졌을까?"를 논의합니다.

월간 회고 (1시간): "반복되는 버그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처럼 더 깊은 문제를 파고듭니다.



Bad: "앞으로 더 꼼꼼히 리뷰합시다."
Good: "다음 주부터 모든 PR 설명에 기대하는 결과 스크린샷을 반드시 첨부한다."



결론: 우리 손에 맞는 연장을 쥐는 것


JIRA, Notion, Asana… 도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입니다. 투명하게 공유하고, 명확하게 정의하며, 작게 쪼개 빠르게 배우고, 끊임없이 회고하며 개선하는 것.


완벽한 프로세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팀에 맞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여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프로세스가 우리를 돕는다면 지키고, 방해한다면 과감히 바꾸세요. 기억하세요. 우리는 도구의 주인이 되어야지,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더 나은 가치를 더 즐겁게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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