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Proejct (323/365)
“젊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덕담을 넘어선 시대적 강박이 되었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 '활력'을 권하는 듯하지만, 실은 '노화'를 부정하고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검열하라는 무언의 지시다. 사회는 집요하게 젊음을 상품화하고, 나이 듦을 '관리'와 '극복'의 대상으로 병리화(pathologize)한다.
한때 '영포티(Young Forty)'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40대임에도 젊은 감각과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이 용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단지 젊음을 추구했다는 이유 때문일까? 나는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문제는 '나다움'이라는 내적 기준의 부재 속에서, '젊음'이라는 기표(signifier)만을 표피적으로 추종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철학이나 가치관과 무관하게, 그저 '요즘 것'으로 보이기 위해 최신 유행을 소비하고 흉내 내는 모습. 그것이 대중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움' 혹은 '본질 없는 흉내'로 읽힌 것이다. '영포티' 현상의 일부가 남긴 교훈은, 젊음의 '추구'가 아니라 '나다움'이 결여된 '추종'의 말로다.
이제 곧 마흔을 앞두고, 이 현상은 나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 활력 넘치는 태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유연함, 즉 '젊게 사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 두려운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다. '나다움'이라는 내적 기준축 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젊음'의 형식을 강박적으로 따라가다가 결국 내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우리는 나이를 생물학적 지표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나이는 언제나 ‘나이 다운 태도’라는 사회적 기표와 함께 작동한다. "그 나이에 그런 옷은", "이제 어른답게 행동해야지" 같은 말들은 조언의 외피를 쓴 통제다. 역설적이게도 "나이 들어도 젊게 살아야지"라는 권고 역시 동일한 기제, 즉 타인이 정한 표준에 나를 맞추라는 압력에 뿌리를 둔다. 한쪽은 '나이 듦'을 근거로 억압하고, 다른 한쪽은 '젊음'을 표준으로 삼아 압박한다. 이 양극단의 틈바구니에서 개인의 고유성은 실종된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했다.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는 경지. 그러나 현대의 40대는 가장 첨예한 흔들림을 경험하는 시기다. 그렇다면 불혹은 폐기된 개념인가. 나는 진정한 불혹이란 외부 자극에 미동조차 않는 정적(static)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파동 속에서도 자신의 지향점을 잃지 않는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 상태라고 재정의한다. 세상의 압력에 휩쓸리더라도, 결국 자신의 내적 기준축으로 복귀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 이것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성숙의 본질이다.
이러한 '불혹'의 관점에서 볼 때, '젊음'은 추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 형태가 된다. 나의 기준이 명확하다면, 새로운 트렌드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내 방식대로 소화할 수 있다. 그것은 '영포티'의 맹목적 흉내가 아니라,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나다운' 방식이 된다.
나는 이제 ‘나이에 걸맞게’라는 관용적 표현과 결별하고자 한다. 나는 기준점을 '나이'가 아닌 '나' 자신에게 두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회피나 변명이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인식(self-awareness)을 가지고, 그 결과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지는 주체적 태도다.
나는 더 이상 '젊음'이라는 신기루를 추종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대신, 그 모든 경험을 자양분 삼아 현재의 나를 긍정한다. 젊음을 모방하는 표피적 노력이 아니라, 그 시절의 열정을 동력으로 삼되 지금의 통찰로 균형을 잡는다. 이렇듯 자신만의 속도로 고유하게 나이 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향하는 가장 합리적인 진화다. 나이 듦은 쇠락의 과정이 아니라, 자아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확립해가는 심화의 과정이다.
이제 나는 매일 다짐한다. 타인이 규정한 피상적인 '젊음'의 척도로 나를 재단하지 않겠다. 유행 대신 방향으로, 비교 대신 기준으로, 젊음 대신 진정성으로 살겠다. '나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라는 본질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젊게가 아니라, 나답게.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준거 틀로서 나 자신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