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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를 팔 것인가, '비타민'을 팔 것인가

365 Proejct (340/365)

by 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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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기 008: 플랫폼 시대를 다시 쓴 플랫폼과 에이전트

다시 쓰기 009: 진통제와 비타민을 다시 씀


사업을 기획할 때 자주 마주하는 질문이다. 마케팅 분야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가능하고 다른 변수가 동일하다면 '진통제'를 만들어라.


그 이유는 분명하다. 만약 두 제품이 모두 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비타민을 팔기 위해서는 이것이 무엇인지, 왜 좋은지 설명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다. 실제로 장기 복용하면서 효과를 몸으로 느끼기도 어렵다.


하지만 진통제는 '이게 당신의 고통을 완화시켜 줄 것입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복용 즉시 그 효과를 사용자가 확인할 수 있다.


제품으로서 두 개의 차이는 분명하고, 때문에 '비타민보다 진통제를 팔아라'는 옳다고 여겨진다.


진통제류의 제품/서비스는 '필요한' 것이다. 고객이 느끼는 부족함(Pain Point)을 직접적으로 해결한다. 결국 고객의 불편(Pain)을 없애거나 즐거움(Wow)을 느끼게 해주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대로 비타민류의 제품/서비스는 '부수적인 것'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무엇인가로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진통제'를 기획하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실전은 다르다.


표면적 Pain의 함정


'진통제를 팔아라'는 옳은 조언이다. 하지만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Pain은 이미 누군가 해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객이 명백히 아파한다면? 그들은 이미 다른 해결책을 쓰고 있을 것이다. 두통이 있으면 이미 타이레놀을 사 먹고 있고, 배가 고프면 이미 배달앱을 쓰고 있다. 표면적 Pain만 쫓는다면 결국 레드오션으로 향하게 된다.

현대의 제품/서비스 기획자들은 고객이 명확히 인지한 Pain뿐만 아니라, 아직 인지하지 못한 Pain까지 발견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 Pain을 현실화하고, 자신의 제품/서비스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비타민도 사실은 진통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비타민'이라고 부르는 제품들도 실은 진통제라는 사실이다.


비타민을 먹는 행위의 이면에는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Pain이 있다. 이것은 당장의 급성 고통은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불안과 염려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로 약국으로 달려가진 않지만, 광고에 눈이 가고, 결국 구매하게 된다.


따라서 진통제와 비타민의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더 Fancy 한 기능이 아니라, 지금 실존하는 문제를 자극하라. 당연한 말이다. 그래야 팔기 쉬우니까.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실존하는 문제'란 무엇인가?


인지하지 못한 Pain의 발견


카카오톡을 생각해 보자. 표면적으로 카카오톡은 '문자 비용 절감'이라는 명백한 Pain Point를 해결했다. 전형적인 진통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카카오톡의 진짜 Pain Point는 따로 있었다. '실시간 연결성'이라는 인지하지 못한 욕구였다. 문자는 비동기적이고, 느리고, 단절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불편하다고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카카오톡을 쓰면서 비로소 "아, 이게 내가 원했던 거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면서, 이 잠재된 Pain은 현실화되었다. 지금 카카오톡이 없는 내일을 그리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이제 우리의 명백한 진통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이미 싸이월드가 있었다. 표면적으로 페이스북은 'UI가 더 나은 SNS' 정도였다. 비타민처럼 보였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진짜 차별점은 글로벌 정체성이라는 숨겨진 Pain을 건드렸다는 점이다. 유학생, 해외 친구, 국제적 네트워크. 그리고 무엇보다 '쿨'해 보인다는 감성적 욕구. 이것들이 네트워크 효과와 결합하면서 페이스북은 필수재가 되었다.


물론 지금 페이스북은 늙어가고 있다. 제품은 실제 의약품과 달리 끊임없이 시장과 공명하며 진화해야 한다. 고정된 진통제는 없다.


또 다른 사례: 에어팟


에어팟을 보자. 표면적으로는 '선이 거추장스럽다'는 Pain을 해결한 무선 이어폰이다. 하지만 에어팟의 성공 요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에어팟은 지위재로 기능했다. 애플 생태계의 일부라는 정체성, 착용만으로 드러나는 라이프스타일. 그 와중에 아이폰과의 매끄러운 연결성이라는 Pain Point도 정확히 잡아냈다.


표면: 무선의 편의성
심층: 애플 유저라는 정체성, 끊김 없는 연결성


에어팟을 산 사람들은 단순히 선 없는 이어폰을 산 게 아니다. 그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Pain - '나는 매끄러운 경험을 원한다', '나는 이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 을 해결한 것이다.


비유는 좋은 비유다. 하지만.


'진통제 vs 비타민'은 좋은 비유다. 실존하는 문제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실전에서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드러난 진통제 시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인지하지 못한 Pain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자. "이 볼펜을 팔아봐." 정답은 "볼펜 필요하세요?"가 아니다.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다. Needs의 창출.


마케팅, 사업, 기획의 법칙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상황은, 사람은, 그리고 시대는 변한다. 때문에 이에 반응하여 기획하는 것이고, 변화를 예측하여 기획하는 것이다.


최적해(Best practice)를 따르는 것은 과거의 방법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획자는 새로운 개념을, 방법론을 배우고, 적용해 보면서 사례를 수집하고 새로이 다음 문장을 이어나가야 한다.


['비타민'보다 '진통제'를 만드는 편이 사업적으로는 더 낫다. 하지만 어떤 진통제인지 먼저 정의하라. 그리고 누군가는 당신이 만든 '새로운 진통제'에 기꺼이 큰돈을 지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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