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화, '소유' 에서 '공유재' 로

365 Proejct (341/365)

by Jamin

다시 쓰기 008: 플랫폼 시대를 다시 쓴 플랫폼과 에이전트

다시 쓰기 009: 진통제와 비타민을 다시 쓴 진통제를 팔 것인가 비타민을 팔 것인가

다시 쓰기 010: 신화에서 콘텐츠로 를 다시 씀


2013년,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신화가 민족주의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동북공정', 재야사학계의 '환단고기'. 이런 현상들은 신화를 자국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소유물로 만들었다. "누구의 것인가?"를 따지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당시 우리는 해법으로 '오픈소스 텍스트'를 제안했다. 신화 연구가 국가 재정에서 독립해야 한다. 콘텐츠화를 통해 스스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렇게 민족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년이 지났다. 이 아이디어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사실상의 공유재, 시장이 만든 답


우리는 오픈소스를 학술적 데이터베이스로 상상했다. 시장은 다른 답을 내놓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2025)가 그 사례다.


한국계 캐나다인 창작자가 일본계 자본을 받았다. 미국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문화 요소를 활용한 이야기를 전 세계에 유통했다. K-Pop, 갓, 도깨비 같은 요소들이 자유롭게 섞였다.


아무도 "이것은 오픈소스입니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그런데 글로벌 자본과 플랫폼이 결합하는 순간, 문화 리소스는 사실상 공유재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질문이 바뀌었다. "이것이 어느 나라 것인가?"에서 "이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 원천인가?"로.


이것은 제로섬 게임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창작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자본과 플랫폼은 이익을 얻는다. 한국은 소프트 파워를 확장한다. 세계 시청자는 새로운 즐거움을 얻는다. 모두가 이기는 구조다

.

남아있는 난관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2013년에 지적했던 근본 문제는 여전하다.


첫째, 자본의 논리다. 거대 자본이 "이것보다 저것이 더 돈이 된다"고 결정하면,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신화는 변질된다. 원형은 왜곡된다. 상업적 논리가 창작자의 자율성을 압도한다.


둘째, 민족주의적 저항이다. 'K-Pop: Demon Hunters'의 성공 뒤에 중국에서 "갓은 원래 우리 것이다"라는 소유권 논쟁이 불거졌다. 낡은 민족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 신화를 공유 자산이 아닌 쟁탈의 대상으로 되돌리려 한다.

공유재로서의 신화는 이 두 장벽과 마주한다.

전통을 지키는 세 가지 방법

전통 문화를 지키는 방법은 여럿이다.

첫 번째 방법은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소유권을 강화한다.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만든다. 타국의 사용을 제한한다. 우리 것을 우리가 독점적으로 관리한다.

두 번째 방법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시장에 맡긴다. 누가 어떻게 쓰든 개입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확산을 기대한다.

세 번째 방법이 있다. 공유재로 만들되, 테이블을 우리가 차리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이 더 낫다. 이유는 명확하다.

첫 번째 방법은 확장성이 없다. 울타리 안에 갇힌 문화는 죽는다. 새로운 해석도, 창조적 변용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박제된 유물로 전락한다.

두 번째 방법은 통제가 없다. 시장은 효율적이지만 공정하지 않다. 자본이 큰 쪽이 이긴다. 원본에 대한 존중도, 기여에 대한 인정도 보장되지 않는다.

세 번째 방법은 확장과 통제를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가치가 커진다. 동시에 참여의 규칙이 있다. 기여한 만큼 인정받는다. 함께 만든 결과를 함께 누린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든다.

공유재가 작동하는 조건

공유재는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 매력적인 테이블이 필요하다. 그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접근성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적, 자본, 배경과 무관하게 자신의 해석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진입 장벽이 낮아야 한다.

둘째, 공정성이다. 기여한 만큼 인정받아야 한다.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투명하게 보여야 한다. 작은 기여도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셋째, 분배다. 함께 만든 결과를 함께 누려야 한다.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다. 명성도, 영향력도, 즐거움도 분배되어야 한다.

넷째, 신뢰다. 원본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명백한 왜곡과 창조적 변용은 다르다.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 네 가지 조건이 갖춰질 때, 공유재는 단순한 방임이 아닌 생산적인 협업 공간이 된다.

테이블을 차린다는 것

테이블을 차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플랫폼과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플랫폼은 물리적, 디지털 공간이다. 누구나 자신의 해석을 가져와 선보일 수 있는 무대다. 기술적 인프라다. 데이터베이스일 수도, 콘텐츠 허브일 수도, 협업 도구일 수도 있다.

생태계는 그 안의 규칙과 관계다. 누가 어떻게 참여하는가? 어떤 기여를 가치있게 보는가? 가치는 어떻게 순환하고 분배되는가? 갈등은 어떻게 조정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생태계를 만든다.

테이블을 차리는 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이 핵심이다. 테이블을 차리는 자가 게임의 주도권을 갖는다.

'K-Pop: Demon Hunters'는 누군가 차린 테이블의 첫 음식이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할리우드라는 생태계가 그 테이블이었다. 한국은 손님이었다. 매력적인 식재료를 제공했지만, 테이블의 주인은 아니었다.

우리의 과제는 더 큰 테이블을 차리는 것이다. 우리가 규칙을 제안하고, 우리가 플랫폼을 만들고, 우리가 첫 번째 음식을 차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다.

태도의 문제: 자신감과 관대함

테이블을 차리려면 특정한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감이다. 우리 문화 리소스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확신이다. 타국이 우리 이야기에 투자하는 것을 문화 종속이 아닌 확장의 기회로 본다. "왜 우리 갓을 멋대로 쓰느냐"고 분노하는 대신, "갓이 저렇게 멋지게 등장했다"고 즐긴다.

둘째는 관대함이다. 타인의 해석을 약탈이나 왜곡으로 보지 않는다. 다른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나은 해석을 우리가 만들면 된다. "누가 원조인가"를 따지는 대신, "누가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가"를 경쟁한다.

이 태도가 테이블을 차리는 전제조건이다. 소유권에 집착하는 자는 테이블을 차릴 수 없다. 방어적인 자는 초대장을 쓸 수 없다.

새로운 신화의 탄생

'K-Pop: Demon Hunters'의 성공은 단순히 과거 신화를 잘 활용해서가 아니다. 현대의 신화와 전통의 신화를 성공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K-Pop 아이돌은 이미 현대의 신화다. 글로벌 팬덤에게 이들은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이다. 이 현대의 영웅이 전통의 요소인 데몬 헌터와 결합했다. "노래로 세상을 치유한다"는 새로운 가치를 담았다.

신화는 이렇게 살아난다. 박제된 원형이 아니라 현재와 결합하는 이야기로. 배타적 민족주의에 봉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긍정적 가치로.

우리가 테이블에 올릴 이야기는 무엇인가? 한국 서사의 특징 중 하나는 '한(恨)'과 그 극복에 있다. 이번 작품이 보여준 것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 이야기는 훨씬 다양하다. 테이블 위에는 더 많은 음식이 올라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세련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그것이 테이블의 톤을 결정한다.

초대장을 보내는 방식

2013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즐기는 동아시아"를 꿈꿨다. 그 꿈을 이루려면 소유권 주장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물론 명백한 역사 왜곡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된 전략은 방어가 아닌 창조여야 한다.

우리의 대응은 "그것은 우리 것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 세상에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유산이다. 이제 함께 만들자. 너희의 유산도 가져와라."

이 초대야말로 낡은 민족주의 논쟁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신화를 진정한 공유재로 기능하게 하는 21세기 방식이다.

신화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감 있게 해석하고 당당하게 공유하며, 모두의 이야기로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그리고 그 자산이 가장 풍성하게 자라는 곳은, 가장 매력적인 테이블을 차린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 테이블을 차리기 시작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통제'를 팔 것인가, '비타민'을 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