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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비, 변화 - 그리고 아직도 남은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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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내 글을 이어 쓰기 001 : 콘텐츠, 소비, 변화 (2019) 를 이어 써봄


2019년 여름에 쓴 글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넷플릭스와 게임이 경쟁하고, 캐릭터가 중요해질 거라고 썼더군요. 6년이 지난 지금, 그 예측은 대체로 맞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1. 리얼에서 오센틱으로, 그런데 오센틱은 어떻게 증명하나


<무한도전>이 사랑받았던 이유는 '리얼 버라이어티'였기 때문입니다. PD가 화면에 나오고, 유재석이 진짜로 당황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믿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의 리얼함은 다릅니다.


유튜브 '워크맨'을 봅니다. 연예인이 알바를 뛰는데, 촬영 중이라는 걸 숨기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보이고, 편집점이 노골적이고, 심지어 실수한 장면도 그대로 나갑니다. 반면 넷플릭스 '피지컬100'은 어떤가요. 몸은 진짜지만, 조명은 완벽하고, 음악은 극적이며, 편집은 영화 같습니다. 둘 다 '리얼'하다고 주장하지만, 전자는 투박함을, 후자는 완성도를 무기로 삼습니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이제 사람 손으로 그린 것보다 깔끔합니다. Sora나 Runway로 만든 영상은 실사와 구분이 안 갑니다. 역설적이게도, 너무 완벽해서 '가짜 같다'는 느낌을 주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픽셀의 선명함보다 '진정성(Authenticity)'을 찾습니다. 흔들리는 핸드폰 카메라, 보정하지 않은 얼굴, 계획하지 않은 실수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결함에서 진짜의 가치를 발견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 '진정성'마저 연출 가능하다는 겁니다. 일부러 흔들린 듯한 카메라 워크, 계산된 '날것'의 느낌. <캠핑 클럽>에서 카메라가 안 보인다고 했던 제 2019년의 관찰은 이제 더 교묘해졌습니다. 카메라를 숨기는 대신, 카메라가 있다는 걸 인정하되 '그래도 진짜'라고 말하는 방식으로요.


그렇다면 B2B 영역에서는? 우리가 제공하는 매장 분석 데이터, AI 추천 알고리즘의 결과물, 이것들의 '진정성'은 어떻게 증명할까요. 투명성입니다. 어떤 데이터로, 어떤 로직으로,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블랙박스가 아니라 화이트박스로 만드는 것. 콘텐츠의 오센틱과 똑같은 숙제입니다.


2. 서사는 사치재가 되었고, 효율은 필수재가 되었다


'흑백요리사'는 8부작입니다. 한 편에 1시간이 넘습니다. 유튜브 쇼츠는 1분입니다. 틱톡은 15초입니다. 누군가는 8시간을 들여 요리 경연을 보고, 누군가는 15초짜리 요약본 10개를 봅니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여유'의 문제입니다.


긴 호흡의 서사를 즐기는 건 이제 사치재입니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사람만이 3시간짜리 <오펜하이머>를 극장에서 봅니다. 나머지는 유튜브의 '10분 요약', '결말포함 리뷰'로 퉁칩니다. 정보는 얻되, 시간은 아끼는 겁니다.


2019년 글에서 저는 이런 스낵 소비가 콘텐츠를 고갈시킬 거라고 걱정했습니다. 틀렸습니다. 고갈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시장으로 쪼개졌습니다.


효율의 시장: 정보 취득이 목적입니다. 빠르게, 많이, 요점만. 쇼츠, 릴스, 10분 요약본. 여기서는 서사가 필요 없습니다. 핵심만 뽑아 전달하면 됩니다. AI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몰입의 시장: 체험 자체가 목적입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 그 세계에 빠져드는 것. 8부작 드라마, 2시간짜리 공연, 100시간짜리 RPG 게임. 여기서는 오히려 서사가 깊어지고, 세계관이 정교해지고, 캐릭터가 입체화됩니다.


문제는 중간입니다. 1시간짜리 드라마 한 편, 90분짜리 평범한 영화. 이건 몰입하기엔 너무 짧고, 효율적으로 소비하기엔 너무 깁니다. 애매한 중간 지대의 콘텐츠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3. 게임이 이긴 건 '상호작용' 때문이 아니었다


2019년에 저는 게임이 영상 콘텐츠의 경쟁자가 될 거라고 썼습니다.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잘못 짚었습니다.


<밴더스내치>를 보며 '선택지를 주는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밴더스내치는 실패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을 중단했습니다. <두니아>는 2019년에도 이미 망했고요.

게임이 이긴 이유는 '선택지'를 준다는 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내 선택이 세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 그 Agency(의지의 행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엘든 링>을 봅니다. 오픈월드지만 텅 비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그것이 내 캐릭터의 빌드를, 세계의 상태를, 스토리의 전개를 바꿉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더 직접적입니다. NPC를 죽이면 그 NPC의 퀘스트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듭니다.


반면 <밴더스내치>의 선택지는? 어차피 정해진 엔딩 중 하나로 수렴합니다. <두니아>의 '도네'는? 재미는 있지만 서사에 영향을 못 줍니다. 보여주기식 상호작용입니다.


콘텐츠든 서비스든, 사람들은 '지켜보는 것'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영향이 진짜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4. AI는 스펙터클을 민주화했다. 그래서?


MidJourney로 누구나 컨셉 아트를 뽑아냅니다. Runway로 영상을 만들고, ChatGPT로 시나리오를 씁니다. 과거에는 수억이 들던 작업을 개인이 합니다.


"이제 자본의 장벽이 무너졌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정말 그럴까요?


2019년의 저는 중소 PP와 제작사를 걱정했습니다. 자본도 없고, 유튜브에 대응할 리소스도 없는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6년이 지나 답을 찾았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AI가 제작 비용을 낮췄지만, 경쟁자의 수는 기하급수로 늘었습니다. 유튜브에는 하루에 수십만 개의 영상이 올라옵니다. AI가 만든 썸네일, AI가 쓴 제목, AI가 편집한 영상들. 눈에 띄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살아남는 건 두 부류입니다.


첫째, 플랫폼입니다.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 알고리즘을 쥔 자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알고리즘이 안 띄워주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극소수의 브랜드입니다. 봉준호, 크리스토퍼 놀란, 나영석. 이름만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창작자들. 하지만 이들도 결국 플랫폼 없이는 어렵습니다.


나머지는? 중소 PP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인 창작자는 유튜브 수익 정책 변경 하나에 휘청입니다. AI가 제작을 민주화했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유통은 여전히 소수의 플랫폼이 독점합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겁니다. AI가 만든 콘텐츠는 '충분히 좋습니다(Good Enough)'. 하지만 '최고'는 아닙니다. 대중은 '충분히 좋은' 무료 콘텐츠에 길들여지고, 정작 돈을 내야 하는 프리미엄 콘텐츠는 더 높은 퀄리티를 요구받습니다. 기준은 올라가고, 중간은 사라집니다.


5. 그래서, 뭐 해먹고 살지?


2019년 글의 마지막 문장이 이거였습니다. "어려운 문제네요. 그걸 알면 제가 이런 글을 쓰기보단 그걸로 돈을 벌고 있었겠죠."


6년이 지났습니다. 답을 찾았나요? 조금은 찾았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 플랫폼이 될 수 없다면, 플랫폼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라.


우리는 유튜브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필요로 하는 것, 예를 들어 분석 도구, 편집 도구, 음원 라이브러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넷플릭스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만들 때 필요로 하는 데이터,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둘. 캐릭터가 아니라 '세계관'을 만들어라.


2019년에 저는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2025년에는 캐릭터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팬들은 캐릭터 너머의 세계를 원합니다.


마블은 아이언맨이 아니라 MCU를 팔았습니다. <위쳐>는 게임 주인공 게롤트가 아니라 '위쳐의 세계'를 팔았습니다. BTS는 멤버 일곱 명이 아니라 'BTS 유니버스'를 팔았습니다.


세계관은 하나의 콘텐츠로 끝나지 않습니다. 확장됩니다. 게임, 드라마, 소설, 굿즈로 뻗어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팬들은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세계의 일부가 됩니다. 2차 창작을 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셋. '진정성'을 어떻게든 증명하라.


AI가 만든 완벽한 이미지보다, 투박하지만 진짜인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요?


블록체인? 글쎄요. 기술적 해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신뢰는 시간이 쌓여야 만들어집니다. 일관성, 투명성, 그리고 가끔은 실수까지도 보여주는 것.


완벽함이 아니라 인간다움. 그게 2025년의 진정(Authentic)입니다.


마치며: 여전히 모르는 것들


6년 전 글을 다시 읽으며 느낀 건, 변한 것도 많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는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허구를 좋아합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이야기, 상상의 세계, 그 속에서의 카타르시스. 그 본질은 신화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건 그것을 전달하는 그릇과 방식입니다. 책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게임으로, 게임에서 메타버스로. 그릇은 계속 바뀌지만, 담기는 것은 결국 이야기입니다.


2019년의 저는 중소 PP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하며 글을 끝냈습니다. 2025년의 저는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우리 같은 B2B SaaS 스타트업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거대 플랫폼들이 똑같은 기능을 내놓으면 어쩌지. AI가 우리가 하는 일을 대체하면?


답은 여전히 모릅니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신합니다.


기술은 계속 평준화됩니다. AI든, VR이든, 블록체인이든. 처음엔 소수가 독점하지만, 결국 모두가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때 차이를 만드는 건 기술이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가.


2019년에도 썼고, 2025년에도 씁니다. 결국 다시 인간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그 이야기를 누가 더 진정성 있게, 더 몰입감 있게, 더 의미 있게 전달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그걸 알아내는 중입니다. 여전히.



2019년 7월 어느 날 쓴 글을
2025년 1월 다시 꺼내어 이어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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