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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n May 06. 2017

<특별시민> by 박인제

서울특별시에 특별시민은 없고, 특별시장도 없다. 

어린이날을 맞이한 친구와의 만남에, 어중간하게 시간이 맞아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선택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와 이 영화였는데, '난 2번 봐도 괜찮다'라고 하였으나, 친구는 아무래도 제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게 하긴 싫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굿즈 - 베이비 그룻 화분 버전 - 를 2개나 사서 하나는 보관하고 하나는 감상용으로 둔 제게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말이죠. 


각설, 기대치가 낮아서인지,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지금의 박스오피스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요. 부족한 장면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조작된 도시> 나 <마스터> 이런 영화에 비해서 크게 부족함은 없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통쾌함' 이 부족한 것과, 영화 시작부터 나오는 어색한 장면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른 장면은 세부적으로 따지지 않겠지만, 처음 영화 내 변종구 시장(최민식 분)과 박경이 '청춘콘서트' 류의 토크 콘서트에서 나누는 대화는 매우 부자연스러워서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박경(심은경 분)은 이제 당신의 방식은 식상하다는 말을 던지는데,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운 대사를 치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변종구 시장이 낙하산으로 선거 캠프에 박경을 데려온다는 설정부터가, '어라?'를 내뱉게 만들었습니다. 


다이내믹 듀오의 '죽일 놈' 이 흘러나오면서 시작한 인상 깊은 인트로를 이렇게까지 망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차라리 박경의 톡톡 튀는 광고인으로의 자질을 보여주는 모습을 조금 더 임팩트 있게 보여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장면에서 박경의 당돌함은 나오지만, 박경의 재능은 전혀 보이지 않는 장면이었으니까요. 하긴 그런 뒤에 나중에 박경이 26살이라는 게 나오고 이러면 또 뭐지, 이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26살 거의 사회 초년생이 광고회사에서 한 광고주의 TVC 담당자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떠올려보면, 과한 설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성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몇몇 부분을 수정하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서사와는 별개로 말이죠. 장면 장면을 언급하기보다는 그 큰 수정점을 몇 이야기해보면, 


하나. 박경의 캐릭터. 범생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캐릭터라기에도 애매하고. 그럼에도 어느 정도 감각 있는 광고인으로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고 자꾸 어리숙한데 재능 있다는 캐릭터가 되면서 이야기와 잘 버무려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어느 정도 야망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영화 내내 잘 어울렸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 야망이 좀 순진한 것이라면 더 괜찮을 것 같고요. 반대로 아예 '프로페셔널' 하기만 한, 직업윤리에 충실한 - 광고 회사에서 부르는 호칭처럼 '프로', 젊은 전문가의 모습이었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실제 정치 선거에서 젊은 친구를 데려다 쓰기도 하겠지만, 꽤나 중책을 맡기면서도 자신들과 아직 결이 다르다는 것을 변종구와 심혁수(곽도원 분, 극 중 변종구의 선거대책본부장)가 못 알아차렸을 리도 없고. 여러모로 박경의 캐릭터 때문에 장면에 집중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작가 혹은 감독은 고결에 가까운 페르소나를 만들고 싶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변종구 시장의 상대 진영 양진주 후보(라미란 분)의 선거 컨설턴트 임민선(류혜영 분)의 속성을 좀 비틀어서 가져오면, 아니면 둘의 캐릭터를 약간 바꿨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사족 사족 사족이지만, 류혜영 배우는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잠깐 덕질을 했던 입장에서 남겨 봅니다...)


둘. 너무 과한 설정들이 있습니다. 음주운전 상태에서 탈영병을 치어 죽이고 뺑소니치는 변종구 시장의 모습은 긴장감을 올리거나, 감정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보단 그냥 '헐'이라는 단말마만 내뱉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가족과의 갈등 등은 꽤 괜찮긴 하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물론 이 사건 때문에 계속되는 일들이 발생하긴 하지만...


하긴 그로 인해 만들어진 심혁수의 죽음 씬도 너무 과합니다. 영화 중 제일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내는 심혁수의 방 - 구두 천국 - 에서 심혁수와 변종구의 심복 간의 몸싸움과 그로 인한 죽음은 꽤나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영화 전체의 서사로 봐도 심혁수는 정치적 공세로 정치적 생명이 날아가는 형태인 것이 어울립니다. 거기에다가 그것을 자살로 몰고 가는 것 까지 포함해서 '투 머치'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빨간 마티즈'  사건이 있었다고는 해도, 현실성이 꽤나 동떨어진 모습으로 보이며 <조작된 도시> 에서나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영화에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죠) 


양진주 후보의 아들의 '마약 논란' 은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왠지 그 배우를 너무 부각하여서 이야기에서 겉돌게 만들었단 생각이 듭니다. 할리우드에서 꽤 인지도를 얻어 가는 한국계 배우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엘리트 이미지를 가진 아들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도 너무 아마추어스럽다고요. 야당의 선거 전략이 아마추어적이다라고 말하기에는 영화 초기에 나오는 양진주 후보의 블라우스 단추 장면이 눈에 밟힙니다. 역시 이 아들과 임민선과의 트러블도 너무 급전개로 흘러나가서, 이해는 되지만 공감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립니다. 


셋. 어정쩡한 정의감의 결말이 있습니다. 박경의 마지막 대사는 진짜, 뭐지 싶습니다. 첫 번째로 지적한 박경의 캐릭터와도 연결됩니다. 유권자로 돌아가 당신을 심판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작위적이고, 억지로 만들어낸 정의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사건을 통해서 박경이라는 캐릭터가 변하고, 변종구의 심복이 된다고 했을 때에는 지금 영화가 받고 있는 '그저 정치 혐오감을 조성할 뿐'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긴 어렵겠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제이 기자(문소리 분)의 변종구 캠프 행도 좋은 결말이었지만, 박경이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소모하기에는... 심은경이라는 배우가 너무 아깝다고 느껴졌습니다.  '하나'의 반복이지만, 연기력 출중한 배우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 사이에서 박경이 겉도는 것은 심은경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대본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인 까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임민선의 퇴장은 꽤 멋있었지만 심혁수의 말처럼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짓는 프로라는 이미지와 멀어지면서 약간은 아직은 자기의 원칙을 지키는 멋진 젊은 전문직의 이미지와 함께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 이미지도 같이 씌워집니다. 하긴, 이건 한국 시장에서 원하는 이미지일 수도 있겠지만 류혜영 배우를 활용해서 조금 더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정제이 기자와 박경의 만남처럼 임민선과 박경의 만남과 글로 인한 무언가를 그려내었다면 더 재밌는 그림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실제로도 선거 캠프 사이에서 누군가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이 부분이 빠진 것도 약간은 아쉽습니다. 너무 정치혐오감을 가져온다고 보이는 것이 싫었을까요? 




대차게 깐 것 같지만... 정말 애정이 있기에 이렇게 길게 아쉬움을 토로한 것입니다. 영화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정치인도 사람임을 보여주기에 더 집중했음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시장도 특별시민도 없다는 지점에 포커스를 맞추면 더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이지요. 밖에서는 멋있는 말을 하지만 집에서는 구박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내가 진짜 옳은 선택을 하고 캠프에 합류했나 고뇌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요. 갈등과 감정의 극단을 보여주려 노력을 하는 것보단 말이지요.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아수라> 같은 결말이 더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적어도 '안남시민' 같은 팬덤은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두 다 욕심과 야망,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느낌 - 물론 이건 1년 전까지로 시계를 돌리면 모를까 지금 이런 식의 영화가 나왔다가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말겠지요. 


한번 더 강조하자면, 영화의 메시지가 잘못되었다거나 메신저를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정치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건 감독 혹은 제작 측의 계산 실수라고 보입니다. 지금과 같은 선거 판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달까요. 지난 대선이면 모를까. 영화의 기획 등이 2~3년 전에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그즈음에 지금의 정치 판도를 예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테니,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기도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몇 가지 칭찬을 해보겠습니다. 영화에서 정치는 소위 '정치판'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를 강조하거나 드러내지 않지만,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꽤나 담백하게, 잘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선배와 후배 사이의 문제. 직장 내에서의 정치. 인정받고 인정받지 않음. 가정에서의 명분 싸움. 권력의 무게추. 이런 것을 통해 정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그게 더러워하는 지점이 무엇 일지에 대해서, 영화의 홍보 문구에 나오는 1000만이 넘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의 무거움,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영화가 더 발전해서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많았지만, 정치를 소재로 하는 오락물을 이렇게 괜찮은 그림으로 뽑을 수 있단 것을 - 한국 시장에서 - 보여주었다는 성과를, 이 영화는 가져왔다고 봅니다. 이 영화의 지금의 성적과는 별개로, 정치라는 소재를 가지고 괜찮은 그림을 뽑을 수 있으며 조금 더 괜찮은 기획과 마케팅을 가지고 돈벌이가 되는 소재라는 생각을 영화 산업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라는 것은 멀어지면 더러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술했던, 정치가 더러워지는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치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것은 그저 냄새나는 개장수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그 개장수가 개를 잡는 것은 그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시민의 총의를 반영하는 길이지만, 사실 총의라는 것은 어느 정도 미화된 말이며, 어느 정도는 반대 의견을 짓밟는 행위를 내포한 단어가 -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것은 쉽게 생각하는 '정의' 와는 먼 단어이며, 반대로 유발 하라리가 말한 이야기와 연결 지어 보면 내가 '정의'라고 믿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그대로 믿게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내가 강아지를 늑대라고 이야기했을 때, 다수가 그렇게 믿게 만드는 일이 정치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누군가와는 사실은 이건 강아지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지요.


그게 더러운 것인가? 공동의 상상 체계를 만드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빠졌네요. 모두가 강아지를 늑대라고 믿을 때 더 나은 미래가 올 수도 있는지에 대한 부분. 어쩌면 영화는 이걸 놓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 제작자, 작가의 정치혐오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종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서울의 미래, 양진주가 만들고 싶었던 서울의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정치 혐오만 조성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정말로 제가 겪었던 모든 선거에서 모든 후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디어, 영화 적어도 상업-오락 영화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낙관주의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그걸 실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스터>가 완성도가 떨어져도 적어도 상업적인 기본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 반대로 <아수라> 가 영화적 완성도가 더 높지만 상업적인 성공에서 멀어지는 것도 - 이 낙관주의의 씨앗 때문인 것 같단 생각도 문득 들고요. 




사족. 영화의 예고편이 정말 잘 뽑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평이 안 좋지 않을까. 영화의 예고편 이상의 임팩트를 주기에 영화 서사 전반의 힘이, 장면 장면의 파워를 이기기 어려웠고, 그 장면들은 대다수가 예고편에 나오는 것들이었으니. 그런 지점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도 비슷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고편의 화려한 영상들이 오히려 초반부 전투 씬 등에서 거의 다 소진된다는 게, 조금 더 발전한 홍보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예고편보다 못하다가 요즘은 영화에서 제일 들으면 안 되는 말인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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