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중2의 시절이 내겐 길었었다. 그때 내게 남겨진 여러 가지 펀치라인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당시 즐겨 듣던 마스터플랜 크루의 노래 <Change the game>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상에 불평을 하기보다는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해라. 그런 중2에 걸린 나는, 당시에 나는 연봉 1억을 꿈꾸며 공부하는 동창생을 비웃었었다. 왜 거기서 멈추지? 왜 더 멀리 생각하지 못하지?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나 지금은 연봉 1억을 주면 꿈을 팔아 버릴 것 같은 사람이 되어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밤이 여러 날인 서른 살이 되었다.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불러올 것인가.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스무몇 살 때에 나는 그 길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창업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문제는 이걸 창업을 하고 나서 깨달았다는 것이다. 창업을 처음 할 때에는 그저 작은 기회가 보였고, 나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작을 했었다. 그리고 냉혹한 시장에 던져진 채로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고민을 하며, 그럼에도 스타트업은 길이다라는 결론과, 과연 내가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얻을 수 있었다.
너희만은 힘들지 말고 편하게 살라는 외조부님의 덕담을 들은 어느 해, 나는 창업 바닥을 뛰쳐나와 취업전선에 합류했다. 당시에 들은 피드백처럼, 나는 분명히 사업을 하면서 발전해 있었고, 취업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 조직 안에서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발전을 멈춘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도 느려 보였고, 규모는 작아 보였다. 내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변화의 대상(Coverage)과 변화의 크기(Impact)의 2축으로 그려 보면, 나는 두 축에서 모두 낮은 업무를 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예컨대 볼륨 버튼 하나만 디자인한다고 해도 애플 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수억 명을 대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난 그 수준의 일을 하면서 고작 수십만을 대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사 초기에는 옛 중2병이 다시 발동했었다. 또한, 외조부님의 말씀을 듣고, 또 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물러났지만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에 여전히 꽂혀 있었을 때였다. 그러고 나서 일을 하고 다른 활동을 하면서 나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일'을 찾게 되면 다시 창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체화되기 전에는 사이먼 시넥이 말한 것처럼 나의 변화를 시작할 왜(Why)를 찾으면 이 조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는 생각의 흐름들 속에서 나는 이 책 <오리지널스>(이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Originals: How Non-Conformists Move the World> 즉,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 가에 관한 부제를 달고 있다. 책에서는 와비 파커의 이야기, 세그웨이 이야기, 노벨상 이야기, 미국 정보기관에서 위키피디아와 같은 협업 기반 지식 공유 체계 등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그러면서 '창의성'에 대해 넓은 관점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창의적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러기 위해 더 노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소화할 때쯤이 되면, 나는 '오리지널스'의 한 명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새 컴퓨터를 받으면 나는 컴퓨터를 나만의 방식으로 설정하는데 반나절 이상 보낸다. 프로그래머도, 디자이너도 아닌 직군이지만, 이 작업이 없이는 나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크롬을 깐다. 그러면 이미 크롬 서버에 동기화된 여러 크롬 익스텐션들이 설치된다. 트렐로를 보조하는 도구 같은 것들 말이다. 일정 관리 및 할 일 관리도 트렐로를 활용하고 있으니 이 역시 설정해야 한다. 또한 빠른 프로그램 실행을 위해 Launchy(Open source key stroke launcher)를 설치한다. Evernote 나 Q-Dir 같은 프로그램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런 것만 보면 나도 꽤 나만의 일하는 방식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Product Hunt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아 써보고, 좋은 것은 적용하고 주변에 전파하기도 하니까.
한편으로는 와비 파커 사례와는 다르게 - 그리고 나의 본성과는 다르게 Risk를 감수할 때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하지 않고 뛰어드는 성격이다. 극단적으로, 회피하거나 아니면 온전히 수용하는 전략을 취하며, 헷징 같은 것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책의 주장대로라면 이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기에는 확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사업을 할 때 그 부분은 확실히 느꼈었다. 캐시카우가 있는 회사가 퀘스쳔 마크의 사업에 뛰어들어 스타 사업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인 것 같다. 다만 스타트업의 경우 캐시카우가 존재할 수 없으니, 피터 틸이나 다른 이들이 역설하는 것처럼 당장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거나, <해커와 화가>에서 처럼, Airbnb의 사례처럼 라면 수익(Ramen Profitable)을 만들어내거나, 그만큼의 내 최소 생활의 지수만큼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창업을 하거나.
내가 아직도 미시감(vujade)을 느끼는 사람 일까는 의문이다. 디자신 사고(Design Thinking) 혹은 서비스디자인(Service Design)을 공부하면서, 초심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특정 산업, 특정 직군에 머무를수록 그것이 안 되는 이유, 소위 말하는 일이 된다 안된다는 '와꾸' '사이즈' 가 그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관련 도서를 읽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인사이트를 얻는 훈련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편견'들은 일이 되게 만드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짜 '오리지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리지널 한 아이디어만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0-1 도 중요하지만 9-10 도 중요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이디어의 양을 늘리는 것은 필요하다, 당연히. 나는 타율 4할의 엄청난 타자는 무슨, 2할도 넘기지 못하는 벤치 신세니까. 최근 오랜만에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하면서 아직 이건 녹슬지 않았단 생각을 했다. 또, 독서모임 트레바리를 하며 새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지속하고 있고.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지는 아이디어들을 남에게 확인을 받도록 내세우는 것은 2가지 관점에서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먼저 이 아이디어를 멋있게 포장해서 파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건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아이디어가 난도질당하는 것은 너무도 속상하다.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끌기 위해 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최근에 깨달은 중요한 원칙이다. 회사 안에서 회사,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꾀하건, 외부에서 꾀하건 일은 사람과 돈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키 위해서는 나 자신이 가진 '신뢰자본'이 커져야 한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 저 사람은 해낸다라는 인식을 퍼뜨려야만 한다. 최근 이런 경험을 조직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느꼈는데, 이건 왕관과 같이 견뎌내야 하는 무게가 꽤나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다시, 분명히 내가 하고자 하는 것(Why)이 없다면,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날 따르건, 내가 그 사람들 따르게 하건 그건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럼에도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며, 내 우군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변화이다. 하지만 아직은 세상 사람 대다수와 다른 나만의 진실을 찾지 못해서 그 우군에게 무언가를 주지 못하고 있을 뿐. 결국은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꼭 독창적이어야 하는가. 세상을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그 길은 어려워 보이니까. 지금도 팍팍한 삶을, 더 퍽퍽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끝에 어떤 과실이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숲을 옮기려 씨앗을 모으는 행동을 하는 건. 비관주의자들이 말이 대체로 옳지만 지금의 세상은 보통은 낙관주의자들의 상상 속에서 디자인되었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 어느 때보다 불평등한 것 같지만, 우리는 5년 전 보다, 10년 전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한 바퀴라도 더 굴러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받은 무언가를 돌려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 내가 사업을 다시 시작하지 못할지라도 새로운 것, 독창적인 것을 찾을 것 같다.
책에서는 독창성은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누구라도 독창적일 수 있다. 누구라도 세상에 불순응 하며, 새로움을 찾아 떠날 수 있다. 그러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뉴스룸>에 나오는 대사이다. "우리는 방금 엄청난 뉴스를 하나 끝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알아? 우리가 그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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