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사람은 윤리적인가?
책을 읽으면서 사람은 무엇인가? 노예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노예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인권이 박탈된 존재라고 하자. 그럼 인권은 무엇인가? 인간으로 누려야 할 권리들. 바로 인간다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발견된 개념인 거, 발명한 개념인가. 너무 개념적인 접근이었다. 철학이나 인문학이나 뭐나 조예가 하나도 없는 내가 파헤쳐나갈수록 머리만 아팠다. 동물적인 구분을 떠나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고하는 동물' 호모 사피엔스가 그 답일까?
그런데 우리는 그 아래에서도 서로를 구분 짓는다. ~빠, ~까, 인종주의, 여성 혐오 등... 우리는 서로를 타자화 한달까? 우리는 서로를 구분 짓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나누고 나누다 보면 남는 하나는 그럼, 그것이 인간성일까? 사람답지 않은 것은 평균을 벗어나는 것에 흔히 붙이기도 했다.
살인마는 사람인가? 혹은 너무나도 외양이 훌륭한 사람에게 붙이는 ~신 표현도 그런 것은 아닌가. 너와 나는 다르다. 왜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말을 계속해야 하는가? 무엇인가 같기 때문일까. 책에서 배아 / 치매 / 뇌사를 보며 우리는 사람의 '뇌'의 활동을 기반으로 다른 해답을 내릴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 적어도 인간다움이라는 것을 위하여 '사고능력'과 그에 관련한 뇌의 성장, 활동 등으로 규정했을 때, 다른 생명과 구분되는 '사고하는 존재'로의 인간은 규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사유하는 동물인 거다. 근데, 그게 우리의 '자유의지'일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다른 동물들의 본능과 우리의 '사고'는 구분 지어질 수 있을까? 성욕, 수면욕, 식욕... 욕구와 욕망들과 우리의 생각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일까. 지능과 윤리는 학습되고 계발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는 우리 뇌는 언어를 개발하고, 사회를 발전, 유지시키면서 다른 동물과 우리를 구분 짓는가?
어쨌든 '뇌' 가 화두이다. (책의 제목도 그렇잖은가?) 뇌는 무엇인가. 뇌가 무엇이길래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도록 하는 것일까. 이미 낸 매몰비용이 아깝다고 느끼는 비합리성? 매력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 그 모든 게 뇌 안에 '정답' 이 있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렇다. '뇌'가 중요한 변수이다. 그래, 이 뇌는 무엇인가? 뇌는 우리를 통제한다. 그 정도는 어떨까? 변화의 가능성은 있는가? 뇌는 OS 인가 Application 인가? 혹은 하드웨어인가? 뇌 안의 생화학적인 작용이 우리의 생각을 겨정한다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은 실존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방어 논리의 일환은 아닐까. 나는 자유롭다고 세뇌당한 것은 아닐까. 의문만 늘어났다. 사실 책은 꽤나 정확하게 이건 이거다 라고 말하는 편이라고 느꼈지만, 받아들이는 내 뇌는 과부하를 일으키며 물음표만 남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내 지성의 한계에 대해서 매우 부끄러워했었다. 난 결국 여기까지인가. 책에서는 어느 정도 그건 이미 내가 태어나며 결정된 부분도 있다고 말해준다. 윤리, 지능의 한계점이 뇌에 미리 적혀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그냥 있는 그대로 살면 될까. 하지만 책에 따르면 그러나 우리에겐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여전히 납득되는 부분은 아니다. 이해하지만, 공감되지 않는 부분.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필부이기에 나타난 현상일까. 사실, 한계라고 책은 서술하진 않는다.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말해준다. 하지만, 이미 타고난 사람이 있다는 말은(잘 알고 있었음에도) 뭔가 허탈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갤럽에서 만든 Strength finder라는 것이 떠올랐다. 잘하는 것 위주로 계발해라. 그게 답일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어정쩡한 재능에 대한 글이 페이스북을 휘저었던 적이 있다. (웹툰이었던 것 같다) 그 생각도 계속 들었다. 어차피 우리가 타고난 케파가 다르다면 계급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이런 절망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런 열패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되어 있지만 확정되지 않았다. 벗어날 구멍은 아직까지는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열어둔 구멍들을 보아도 그렇고, 내 주위를 보아도 그렇다. 어떤 뇌를 타고 태어나는가와 주어진 환경이 만들어내는 확률적인 운명론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하지 않을 자유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비록 이세돌이 되진 못해도 바둑을 더 잘 두기 위해서 다른 욕구를 통제하는 것도(물론 그 능력도 뇌의 일부분이겠지만) 가능하다. 욕구에 대해서 다른 욕구로 전환시키는 것은, 그 조차 뇌의 한계이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있지만, 강제되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에게도 그렇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인 등의 윤리관에 대해서 우리와 다르게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법을 집행하는 데에 있어서 행위의 의도와 결과를 구분한다고 하면,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일단 잘못. 그럼 의도. 이 사람의 뇌는 대체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넘어갈 것인가, 그럼에도 다른 길이 있지 않았냐고 그 의도를 만들어내고 평가할 것인가는 다분히 사회적인 논의가 될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그는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을 가르치지 못한 사회의 책임도 무시할 순 없지만 우리는 살인이 잘못되었다고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재학습 하고 있는데, 그 능력이 결여되었기에 그가 '의도'에 있어서 면책이 될 필요성은 있을까? 글쎄, 그건 조금 더 생각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굉장히 감정적으로 주어진 길에 대한 본질적인 반발은 느껴진다. 너무 감상적인가?
우리는, 사람은 개체로 진화, 아니 발전할 수 있는가? 이미 정해진 뇌나 신체를 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스테로이드 같은 뇌를 증진시키는 약물은 어떨까 라고 책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윤리적인가? 생각해보면 총명탕이라는 약품도 있었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지만... 일생일대의 순간에 저자가 말한 약을 먹고 지적 능력을 테스트한다고 해서 그것을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약을 먹고 운동하는 것에는 거부하고 있다. 무슨 차이일까) 적어도, 학습할 때 약을 먹거나... 이게 무슨 말이냐면. 사람을 뛰어넘는 약물에 대해서 올림픽이나 국제 대회에서는 거부하고 있다는 것 같다. 전신 수영복을 금지하는 것도 그렇다. 인간 자체를 두고 인간은 여기까지니까, 인간 사이의 경기에서 이 이상은 반칙, 이라는 것. 하지만 그것이 올바를까?
그래서 인간의 확장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기계와 인간의 합체. 사이보그 같은 개념들. 증강 인간(augmented humanity) 같은 것.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내 기억력은 선라이즈 캘린더와 에버노트가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다. 안경을 쓴 사람은 시력적으로 기계의 도움을 이미 받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기계를 잘 다루는 것도 권력이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약도, 기계도 인간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뇌를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변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아닌 무언가를 수용해야 하는 단계는 아닐까. 인간의 다음은 인간이 아닌 상태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지금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인문학적 논의'를 떠나 의학적이거나 이런 뇌과학 기반의 논의가 더욱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파고를 보면서 지속적으로 인간은 '진화' 가 필요한 순간을 겪고 있다고 느꼈다.(감상적이라 그렇다) 그 방향은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다. 생물학적 진화는 개체를 도태시킬 것이며, genocide를 야기할지도 모르고... 또한 속도가 너무 느리다. 우리는 단일 개체로 다음 단계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 보완계획... 같은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HCI라는 분야는 결국, 사람과 인간 사이의 상호관계가 사라지는 지점까지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구매: 2016.03.16
초독: 2016. 03.16 ~ 2016.03.19
작성: 2016.03.20
탈고: 2017.01.21, 2017.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