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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an 18. 2022

퇴사 3년이 되면 떨어지는 3가지

퇴사라는 광야 학교를 지나는 법_리제네레이팅

퇴사자 허니문은 언제까지일까? 퇴사하면 참 좋다. 특히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로워 보인다. 첫 직장을 나와 거닐던 대학 교정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을 오후 노란 나뭇잎 사이로 비치던 햇살이 그렇게도 화사했던가.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야간대를 다니던 직장인으로 항상 어둑어둑 해질 무렵과 밤에만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마지막 직장 퇴사 직후에도, 집으로 오는 거리의 한가한 낮 풍경에 세상 여유로움을 느꼈다. 직장인 때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이었다. 이 무렵 현실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기대감에 마음이 들뜬다. 이제까지 억눌렸던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이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퇴사 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지는 게 생긴다.


첫째는 돈이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퇴직금으로만 버티면 1년 정도 바짝 사용 가능하다. 그것도 10여 년 일한 직장인의 경우다. 이걸 직장인일 때 씀씀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면 2년 정도 버틸 수 있다. 대신 생활비 같은 필수 지출 외 저축, 투자성 지출 등을 모두 끊고 초긴축 모드로 살아야 한다. 평소 저축해둔 돈이 있으면 생존 기간은 더 늘어난다. 보통 재테크에서 말하는 생활비 3~6개월분의 비상금, 얼마간의 현금 예금액 등을 고려하면 1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다. 별다른 수입 없이 그저 모아둔 돈을 쓰다 보면 퇴사 3년 내 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계산이다. 물론 퇴사 후 평생 쓸만한 돈을 넉넉하게 모아둔 파이어족이나 연금 복금이라도 한 장 맞았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별외다.


둘째는 힘이다. 처음 1개월 퇴사자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구를 들어 달에 옮길 것 같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퇴사 후 살고 싶은 새로운 세상을 그린다. 2-3달쯤 지나면 직장인에서 퇴사자의 새 습관에 적응한다. 6개월이 지나면 이제 더 이상 퇴사 생활도 새롭지 않다. 퇴사의 충격으로 얻은 열정은 무뎌지고 다시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1년이 되면 슬슬 먹고살 궁리에 여유가 줄어든다. 2년째 새로 시도한 일에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점점 불안해진다. 퇴사자의 냉엄한 현실과 맞닥뜨리는 시기다. 특히 코로나 같은 예상 못한 변수라도 만나면 멘붕이다. 3년째 이런 문제가 고착되면 의욕이 꺾이고, 체력도 바닥을 친다. 몰랐던 자신의 질병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셋째는 감이다. 쉬는 기간이 늘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것도 2-3년이 되면 더 심해진다. 이전 유학시절, 통역병, 직장생활 내내 줄곳 써왔던 외국어 능력 발휘도 주저하게 된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다보면 이전에 밥 먹듯 하던 일도 점차 낯설어진다. 하나씩 새로운 시도에 문 닫고 할 수 있는 일 주변만 맴돈다. 발전은커녕 있던 능력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사람들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알고 지내던 사람은 물론 새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도 꺼리게 된다. 고립감은 성격을 민감하게 한다. 작은 일에도 분내는 일이 잦아지고, 정서적 위안을 찾아 방탕한 생활에 빠진다. 이 정도 되면 큰 일이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뭐였는지 조차 아마득해진다. 목적을 잃고 삶의 회의가 들기 시작하면 정말 끝이다. 인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이럴 때 어떡하나. 돈, 힘, 감을 어떻게 다시 찾을까.


돈은 중요하지만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돈 자체를 목표로 하면 좌절할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퇴사자의 현실은 생각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많다. 이럴 때는 오히려 자신에게 반문해보아야 한다. "평생 벌지 않고 먹고살만한 돈이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시 헌신할 수 있다. 버틸 수 있다면 이런 일로 3년 내 새 수입원을 만드는 것이 좋다. 3년은 새로운 전문성을 쌓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를 경우다. 그렇지 않다면 돈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병행하며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원하는 수입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다. 나 같은 경우, 절실한 순간 도전한 부동산 경매로 생존 경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떨어지는 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쉬면 금방 힘이 충전될 것 같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휴식이 길어지면 오히려 힘이 완전히 방전될 수 있다.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퇴사 후 운행할 일이 없어 차를 거의 주차장에 세워두곤 했다. 그러다 보니 차 배터리가 수시로 나갔다. 매번 충전하는 게 일이 되다시피 했다. 2년 반이 지난 어느 날, 같은 문제로 다시 출동서비스를 불렀다. 충전 후 시동을 켜고 운전하다 또 문제가 터졌다. 차가 중간에 퍼져버린 것이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차가 달려도 달려도 더 이상 충전되지 않았다. 길 한편에 차를 세우고 재차 출동서비스에 전화했다.

"제네레이터가 나가 더 이상 운행은 불가합니다. 즉시 견인해 제네레이터를 수리하거나 바꿔야 합니다." 출동 나온 기사가 말했다.

거의 1시간을 달려왔고, 10여 분만 더 가면 목적지였다. 이번만 어떻게 넘기면 될 것 같았다. 충전 후 조심스레 다시 시동을 걸었다. 운행을 재개했지만 차는 또 길 한 복판에 주저앉았다. 직장 출퇴근을 책임졌던 20년 된 애마는 그렇게 목적지를 몇 킬로 앞둔 채 폐차장으로 가야 했다. 차값보다 수리비가 더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발전기가 고장 난 차는 아무리 달려도 더 이상 배터리가 충전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발전기가 고장 나면 아무리 쉬거나 일해도 그저 피곤할 뿐이다.


사람에게 발전기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다. 이것이 끊임없이 일할 동력을 주고 충만한 삶을 살게 한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가슴 뛰는 비전을 만들어낸다. 한 걸음씩 이것을 향해 나아갈 때, 흐트러졌던 삶의 파편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기쁨과 평안이 어둡고 공허한 가슴 안을 빛처럼 가득 채운다. 방탕하고 나태한 삶의 습관들을 몰아낸다. 담대함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자신감을 찾고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이럴 때 돈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이렇게 잃어버린 돈, 힘, 감을 찾아갈 수 있다. 퇴사 후 3년은 절박함의 시간이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들을 붙잡고 다시 솟구쳐 오를 리제네레이팅의 시간이다. 각자의 발전기를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처음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퇴사 후 열정적으로 세웠던 계획도 좋고, 평생 가슴에 품어왔던 직업 비전도 좋다. 새로운 깨달음이나 각오, 어떤 다른 자극도 괜찮다. 이런 찐 사랑의 기억이야말로 식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유일한 처방이다. 좀비처럼 죽어버린 영혼을 깨워 생명력 있는 사람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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