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일 만에 00 작가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드립니다^^" 브런치 글 발행을 멈춘 지 270여 일이 훌쩍 지난 뒤다. 개월 수로 따져보니 9개월이다. 실제로는 지난 20년 7월 이후 글을 거의 안 올렸으니 1년 반만이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지난 12월 29일. 그 이후로 25일 정도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다시 글쓰기 습관을 회복했다. 주간 글쓰기 목표도 잘 채우고 있다. 2000-3000자 내외의 1꼭지 글을 주 4회 이상 쓰고 브런치에 최소 2-3회는 발행하는 것이다. 평생 60권의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습작량인 셈이다. 이 정도로 쓰면 1년에 40꼭지 내외 책 3-4권 분량은 된다. 그중 2권을 기획 출판이든 자가로든 발행한다 치면 앞으로 남은 30년 동안 60권의 책을 낼 수 있다. 20여 일이 지났으니 이 습관은 어느 정도 꿰도에 오른 셈이다. 새 습관 정착여부를 가늠하는 21일, 40일, 66일 중 첫 관문을 넘긴 것이다. 경험상 새로운 시도는 21일 열정적 변화기를 넘어 40일이 되면 루틴이 생기고, 66일이면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때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새 습관을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다. 이런 글쓰기 속도를 다시 내기까지 브런치의 역할이 컸다. 거의 다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전 침체기에도 글은 계속 써왔지만,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발행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브런치의 어떤 점이 글 쓰는데 이렇게 도움이 됐을까.
한때 브런치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 지난 19년 12월 그런 글 올린 뒤 이듬해 6월까지 간간히 글을 쓰다 완전히 멈췄다. 초기 발행한 글들의 반응이 열렬했던 것에 비해 한두 달 후 반응이 너무 뜸했기 때문이다. 떠난다는 글을 올린 이후는 더 반응이 없었다. 혹시 괘씸죄에라도 걸렸나 싶었다.
떠나야겠다, 아니 브런치에 쓰는 관심을 줄여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대략 3가지였다. 먼저, 편집자, 독자 반응에 너무 마음이 붕 떴다 가라앉았다 했다. 그러다 보니 괜히 인기 있는 글에 기웃거리고 슬쩍 따라 해볼까 싶기도 했다. 또 브런치 글 발행하고 라이킷이나 클릭수 뒤져보는 게 일이 됐다. 길 가다가도, 지하철 안에서, 일하면서도 중독적으로 봤다. 그리고 글 쓰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긴다는 것이다. 퇴사 후 새로 하는 개인 일에 쏟는 관심은 자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하기 어려운 다른 일 대신 쉬운 글쓰기를 도피처로 삼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이런 이유로 브런치를 떠났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악수가 됐다. 글 쓰는 일에 긴장감이 떨어졌고, 가뜩이나 혼자 하는 일에 고립감은 더 커졌다. 글쓰기 작업 대신 남는 시간도 다른 일에 쓰는 대신 방탕하게 보내기 일쑤였다. 그때그때 생기는 일 처리하기에 급급해 글쓰기 목표의식도 현저히 떨어졌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온 계기는 엉뚱한 데서 생겼다. 어쩌다 이전 직장 동료들을 다시 만났을 때였다. 그때 전 동료가 새로 온 후배 직원들한테 나를 소개해줬다. 회사를 나와 자기 일을 하면서 글도 쓰고 하는 작가라고 했다. 그 순간 옆에 같이 있던 전 직속 후임자가 피식하고 묘한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의미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내내 신경이 쓰였다. "회사를 나가면 책도 쓰고 성공한 기업가로 독립하겠다."라고 직장 다닐 때 얼마나 다짐을 했었나.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날 새벽부터 다시 일어나 글을 썼다. 브런치의 좋은 점은 글을 완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 글도 써보곤 하지만 브런치 글은 쓰고 나면 뿌듯함을 느낀다. "이 글들을 차곡차곡 모아나가면 언제가 책 한 권은 거뜬히 내고도 남으리라."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좋다. 하얀 백지장에 글을 채워 나가다 보면 자신의 온 세계를 담아내기라도 할 것 같다. 주위 것은 잊고 글쓰기에 몰입하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도 줄어든다. 잘 조준된 글 발행으로 얻은 작은 성취감은 다른 일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글과 일이 서로 선순환하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문득문득 쓸 글감들이 떠오르는 영감을 받기도 한다.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면 좀 중독성이 있으면 어떤가. 다시 브런치 글을 쓰면서 하루 시간을 정해 몇 번씩만 독자 반응을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거의 실시간으로 꼭꼭 반응을 눌러보고 있다. 이게 은근히 중독적이다. 글 클릭수가 떨어지면 어느새 다시 의자에 앉는다. 자동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치 당 떨어진 사람이 초콜릿이라도 찾는 것 같다. 그럼 어떤가. "노니 장독 깬다."라는 말도 있는데, 지금에야 이 말이 조금 이해된다. 왜 쓸데없이 잘 있는 장독을 깰까. 아무짝에 쓸모없는 짓이라도 뭔가를 계속하다 보면 의욕이 생기다. 일하는 습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짜 제대로 잘할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자의적 해석이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도 큰 힘이 된다. 비록 1개의 라이킷이라도 같은 글을 쓰고 기대하는 동료, 독자들이 있어 든든하다. 외롭지 않고 글에 대한 책임감도 키울 수 있다.
브런치 글을 다시 발행해 나가자 새로 반응도 왔다. 2-3일을 달려 조회수 1만이 넘는 글이 생긴 것.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올린 99개 글 중 9만 클릭 짜리를 제외하면 개인 랭킹 2번째의 글이다. 그 동안 꾸준히 검색 조회수를 올렸던 기존 2위 글을 단 며칠 만에 가뿐히 제쳤다. 바로 이어 쓴 또 다른 글도 7천 조회수를 넘기며 4위 자리에 올랐다. 모두 퇴사 3년 차를 맞은 소회를 쓴 글이었다. 이전 최고 조회수 글인 게스트하우스 운영과는 좀 다른 분야였다. 시간이 지나 최적화 과정(?)이나 초기 글 주제 세팅 관련 메커니즘이 재작동한 건 아닌가 싶다. 아니면, 미운털이 빠진 것일까. 아무튼 널뛰는 클릭수에서 다시 치솟는 아드레날린 분비도 경험하게 됐다. 조금 바뀐 건 있다. 더 이상 편집자와 독자의 반응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편집자는 편집자, 독자는 독자, 작가는 작가의 일을 하면 된다. 작가의 일이란 무엇인가. 작가 저마다의 글 쓰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단순한 재미나 명성, 관심, 돈 등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그것에 충실하면 된다. 물론 그러다 다른 것도 같이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 글을 쓰면서 분명한 방향을 잡았다. 바로 직업을 짓는 작가로 업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어떤 주제의 글도 결국 책을 내면 완성된다. 몇 권의 책이면 그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고 비즈니스의 밑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 바라고 쓰다 보면 지치기 십상이다. 모든 글이 다 책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내용과 형식, 추구하는 방향 그 자체가 업이 되는 글, 쓰는 하나하나의 글 모두가 바로 직업개발과 연결되는 새로운 글쓰기 체계다. 이것은 자신만의 분명한 비전에 따라 흔들림 없는 글쓰기를 이끌 도구가 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 지금하는 공부, 앞으로 할 과업을 하나의 새 직업으로 이어줄 수 있다. 그토록 바랬던 1인 지식기업으로 가는 첩경이 되어줄, 그건 바로 창직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