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가슴 뛰는 소풍 같은 삶. 동화 같고 현실성 떨어지는 이야기일까. 그저 어떤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구호 같은 말일까. 어떻게 매일 소풍만 다니며 살 것인가. 또 그렇게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어쩌면 약간 무료하다시피 반복되는 일상이 있기에 소풍이 설레는 건 아닐까. 소풍만 다니면 공부는 언제 하고, 돈은 어떻게 버나. 가족들은 누가 돌볼까. 이 자체로는 뭔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소풍과 함께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퇴사 후 변화된 목표, 추구하는 삶의 한 단면도 바로 그것이었다. 소풍 같은 하루를 살아내는 것. 날마다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여행하듯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평생 다니던 안정적 직장을 대신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자 선물 아닐까.
그럼 이제까지 가장 설레고 가슴 뛰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금 돌이켜보니 단연 글을 쓸 때였다. 퇴사 후 열정적으로 할 일을 구상할 때도 글을 썼고, 슬슬 퇴사 생활이 무료해질 때도 글을 썼다. 브런치 작가에 지원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직장인 때 10년 목표를 잡고 퇴사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한 것도 글쓰기였다. 매일 새벽에 가장 먼저 출근해 글을 끄적였다. 이렇게 쓰다 보니 어느새 습작 노트를 가득 채웠다. 쓰는 프로그램인 원노트 10여 기가의 용량을 몇 번이나 갈아치웠다. 글쓰기 목록에는 30개가 넘는 주제가 빼곡히 들어찼고, 10여 개의 동시 책쓰기 폴더도 생겼다. 그중 책 1권이 나올만한 분량을 다 채운 원고도 나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글, 글, 글이었을까. 직장 생활이 5년, 10년 지나자 일 경험에 결실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간절한 바람을 이뤄줄 방법이 글쓰기였다. 여태껏 쌓은 자기 분야 지식과 노하우를 총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인생 후반기 진짜 원하는 삶으로 이끌어줄 길잡이로 글을 선택했다. 물론 자신의 책을 내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비록 책을 내지 못했더라도, 글쓰기에서 얻은 유익은 컸다. 삶을 일으키고 무너뜨릴 만큼 대단했다. 극한 침체기, 슬럼프를 이길 때도 관찰일지를 적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떨부기(떨어지고 붙은 기억)'라는 별도의 장을 만들어 기록했다.
글이 멈추니 삶이 멈췄다. 한때 글쓰기 시간을 줄이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퇴사 후 새로운 직업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글쓰기 목표 의식이 떨어지자, 새 일에 대한 집중력도 점차 옅어졌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위기가 찾아왔다. 간간히 내뱉은 글을 붙잡으며 삶의 목표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감힘을 썼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글쓰기 속도가 떨어지자 다른 습관도 해이해졌고, 멘탈이 무너졌다. 텅 빈 마음은 공허감으로 가득 찼다. 방탕한 생활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백약이 무효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글도 계획도 꽁꽁 언 바다처럼 한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어느 때는 글이 삶이 될 거라 믿었다. 글을 쓰다 보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희망했다. 어느 순간, 행동 없이 나오는 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말만 앞서고 아무런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글로 부끄럽지 않기를 바랐다. 말쟁이, 글쟁이가 되는 게 싫었다. 이후로 점점 쓸 말이 줄었다. "보여주고 싶은 삶을 살아내 멋진 글을 써야지." 이런 바람도 식어져 갔다. 글이 멈추는 순간 삶도 멈춘다.
글이 삶을 멈추기도 한다면, 다시 끌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발전기나 촉매처럼 식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희망을 붙드는 과정이요. 목적의식의 발로다. 절망 속에 살고 싶다는 무의식의 외침이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행동을 이끄는 자극이다. 글은 자신이 찾은, 또는 찾는 뭔가를 향해 더 깊이 나아가는 길이다. 그곳에서 만난 자기 내면의 정수를 길러내고 세상으로 퍼나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의욕이 있어야 하며, 이런 과정에서 다시 잃어버린 의욕을 찾기도 한다.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예배자처럼 생명력을 회복한다. 이런 충만한 상태는 다시 사람들과 교감하며 소통할 용기를 준다. 사회적 역할을 찾아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거친 세상 밖으로 당당히 외치며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한 개인에게 주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그 글이 사실이건 과장이건, 좋든 나쁘든 그것은 다음의 문제다. 사람이 먼저 살아야 추구하는 어떤 가치도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 삶과 일이 되기를 바라며 이전에 고안한 방법이 있다. 바로 창직 글쓰기다.
창직 글쓰기 3단계 Sii
1단계 : 탐구 (Study)
2단계 : 상상 (Imagination)
3단계 : 살아내기 (Implementation)
창직 글쓰기란 궁극적인 꿈과 목표를 이루고,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짜 원하는 삶을 위한 자신의 전문성을 쌓게 된다. 다음은 이 탐구 주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간절한 꿈은 우주가 이루게 도와준다는 것을 믿고, 직업적 성취나 꿈을 이룬 모습 등을 생생하게 쓰는 것이다. 앞으로 자신이 평생 하고 싶은 일 경험과 직업생활의 형태, 실천 포인트 등을 글에 담고 다른 사람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아내는 글쓰기는 탐구 목표를 잡고 상상한 삶을 직접 실현하는 단계를 쓰는 것이다. 창직가의 글쓰기는 자신의 꿈, 목표와 연계해 새로운 직업과 삶을 일궈가는 일체의 과정과 결과를 완결된 한 편의 글로 쓰고 엮어내는 것이다.
이런 새 글쓰기 체계는 실제로 잘 적용하기 어려웠다. 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나 과거 경험 위주로 글을 쓸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아무리 써도 뭔가 허전하곤 했다. 자신의 현실과 동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진짜 원하는 삶, 앞으로 새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들었다. 어떤 분야 글도 책을 내고 꾸준히 써나가다 보면 빛 볼 날이 있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필요했다. 퇴직자로 새로운 직업 활동을 만드는 게 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 후 글쓰기 목표도 '직업을 짓는 작가', 글과 일을 일치시켜 새로운 삶을 일구는 '글업일치' 였다. 이런 이론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새로 목표관리 체계를 만들었다. 바로 개인의 꿈과 계획을 연간 사업화하고 점검하는 '3D 목표법'과 일일 간편 업무일지인 '사행시'다. 이 도구를 활용하니 확실히 하루하루 실행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평생 비전을 바탕으로 연간 계획을 세우고, 당장 실천할 과제가 명확해졌다.
문제는 이제 글쓰기가 따로 논다는 것이었다. 복잡한 목표관리 절차와 일일 점검 항목도 매일 실천하기에 번잡했다. 힘이 넘칠 때에야 모르겠지만, 마음이 흔들리자 이런 방법들을 더 이상 지키기 어려웠다. 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목표 실행법이 필요했다. 최소한의 힘으로 글쓰기와 업무 추진을 동시에 잡아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창직 글쓰기 시즌2다. 여기선 가장 쉽고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글쓰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글을 일과 삶을 이끌 동력으로 삼아 연간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매일 쓰는 글쓰기 주제를 이전 목표법의 사업 과제와 일치시켰다. 그리고 사업 추진 요소인 해결과제, 고객접촉, 실행 및 점검 주기 등을 글쓰기와 연동시키는 것이다. 일일 점검 일지의 실행, 준비, 독서, 일정 등의 포인트도 글쓰기 작업에 녹여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결국 매주 정한 분량, 주제, 형식의 글만 써나가면 자연히 연간 추진 목표와 가까워지게 된다. 글 쓰는 시간이 많아져하는 일에 소홀할까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것저것 목표 관리한다고 복잡하게 골머리 썩지 않아도 된다. 그저 글만 쓰면 되는 것이다. 쓰는 만큼 삶은 필요를 채우고 전진한다. '글업일치'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 삶이 글과 함께 춤추고 기뻐 뛰노는 모습을 본다. 소풍 같이 환희로 가득 찬 그날이야말로 창직 글쓰기가 열어갈 인생의 최종 목적, 우리의 새로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