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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Jul 08. 2022

경력 전환기, 갈 길이 보이지 않고 캄캄할 때

1인 기업형 인간의 멘탈관리_터널 극복

"정말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점 같은 작은 불빛 하나 보고 가는 것 같아요. 두렵기도 하고요." 청년이 말했다.


경매로 얻은 집을 임대 놓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는 1인 가구, 사회 초년생인 청년이나 세컨드 하우스를 필요로 하는 은퇴자가 많다. 소액 경매, 지방의 소형 주택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임차인도 청년이었다. 한 서른 초반 됐을까. 계약하다 들으니, 인근에 새로 생긴 식육점 직원이었다. 사장의 모든 것을 가까이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돋보였다. 정육점의 핵심인 칼 잡는 기술도 다룬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 소장이 물었다. "그럼, 돈 많이 받지 않나요? 퇴근 시간은요?"

청년이 말했다. "돈은 그렇게 많지는 않고요. 퇴근은 거의 저녁 9시가 넘어서 합니다." 자기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다 더했다. "아니면 뭐해요. 그저 TV 보거나 쓸데없는 시간 보내는 것 밖에 더 하겠어요."


그 청년은 지난해 김해에서 일하다가 최근 진주로 왔다고 했다. 새로 지점이 생기면서다. 식육점 사업이 잘 되는 듯했다. 지점에는 모두 3명이 일한다고 했다.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요즘 트렌드인지 몇 년 새 새로 생겼던 집 근처 정육식당이 떠올랐다.


계약 후 같이 가서 집을 확인한 뒤, 청년이 마지막에 물었다. "사장님은 혼자 살아본 적 있으세요?"

"있죠. 기숙사 생활도 해봤고요. 자취나 해외 생활을 한 적도 있어요. 기숙사에 있을 때는 3교대도 하고, 회사와 집 오가기 바죠. 다른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정말 그랬다. 기숙사가 회사 공장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2명이 함께 쓰던 기숙사 단칸방, 일터와는 고작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였다. 밤늦게 일이라도 마칠 새면 곧장 방으로 가 자리 펴고 눕기 일쑤였다.


이때 청년이 지금 자기는 작은 불빛 하나 보고 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아마  일을 새로 시작하기까지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 같았다. 이후 어쩌다 알게 됐지만 청년은 모 대기업 전자업체 관련 일도 한 4년 했다고 했다.

그 청년에게 말해줬다. "희미한 불빛만 보고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그 길을 가기로 한 것 자체가 대단한 것 같아요."

청년이 자기 사장의 태도 하나하나를 배우고자 했던 것처럼 그런 자세가 정말 귀하게 느껴졌다. 나이 들어 뭔가를 새로 배우고, 어떤 일에 헌신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훗날 그 길이 아니었다거나,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하지만 비록 그 결과가 어떨지언정, 땀 흘린 과정은 고스란히 남는다. 몸 깊은 곳에 각인된다. 또다시 필요한 순간 빛을 발한다. 삶의 내공으로 쌓인다. 어떤 비슷한 상황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사람에게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운동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새로 방향을 잡고 다시 뛰면 된다. 이런 경험이 바로 스스로 길을 찾고 균형을 세우는 중심추가 된다.


그렇다면 진로에 있어 쫓아갈 작은 불빛이란 무엇일까.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이다. 주위의 어떤 요청이나, 우연찮게 주어진 일, 자기 안의 갈망일 수도 있다. 당장 무엇을 할지 막막하다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회의가 든다면, 하는 일에 확신이 없다면, 그냥 이렇게 손에 잡히고 소망하는 일들을 하루하루 묵묵히 해나가면 된다. 긴 터널처럼 답답한 시간은 언젠가 끝난다. 터널 끝에 가면, 산 정상에 선 사람처럼 다른 시야가 열린다. 이제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더 하고 어디로 갈지 분명해진다.


경력 전환기는 늘 혼란스럽다. 미래와 현실,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복잡계의 세계다. 하지만 확신 가운데, 아니 불안해 죽을 것 같더라도, 그 길을 붙들고 끝까지 갈 수만 있다면, 삶이 생각지도 못 한 곳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전환기를 맞기도 한다.


 전환은 젊었을 때 사회 진출을 위한 전문성을 쌓고, 그것을 힘 빠질 때까지 최대한 우려먹고, 그 이후 남은 은퇴 생활을 준비할 때까지 계속된다. 어쩌면 일생이 경력 전환의 연속이다. 한번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다가도 곧 더 긴 터널을 만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도 3번의 경력 전환기를 거쳤다. 첫 번째는 대기업 기능직으로 일했다. 비록 고졸이었지만 국내 최고의 회사로 전망도 괜찮았다. 하지만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조금 더 전문성을 쌓기 위해 전공을 바꿨다. 야간 대학에 다니며 외국어를 전공한 것이다. 졸업 후 유학까지 떠났다. 안정된 직장을 나와, 고단한 해외 생활까지, 캄캄한 미지의 세계로 스스로 풍덩 뛰어들었다. 통역병까지 마치며 외국어 마스터라는 원하는 바를 이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바랬던 사업가의 길은 막막했고,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통번역 밖에 없었다. 이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던 중 두 번째 경력 전환기를 맞았다. 바로 한 통역 현장에서 만난 의뢰자가 새로 생기는 공공기관 부속 센터장이었던 것이다. 그 센터장의 제안으로 채용에 응모했고, 지자체 산하 기관에서 외국어 특기자로 일할 수 있었다. 이때 국제관련 업무는 물론, 시장이나 VIP 통역, 사업기획이나 총무 일까지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한때 지역 최고의 해당 언어권 전문가라는 명성도 얻었다. 이렇게 20여년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지금은 세 번째 경력 전환기를 맞고 있다. 홀로서기로 인생 2막, 경력의 '월동'을 준비하고 있다. 힘이 떨어지고, 더 이상 직장에서 일하기 어려워질 때 1인 기업가로 독립하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글도 쓰고, 통역 프리랜서, 부동산 경매투자에 그야말로 이것저것 한다. 첫 번째, 두 번째 경력의 화려한 성공은 이미 옛날 일이다. 코로나나 경제 침체 등 온갖 어려움을 겪다 보면, 앞이 까마득해지고 알지 못했던 두려움이 여전히 닥친다. 다시 터널 구간에 진입한 것 같다. 또다시 이런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제껏 어떻게 해왔는지도 잊어버릴 지경에서 청년이 일깨워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력을 쌓는 데 있어 어떠한 기술이나 지식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식이나 기술은 빠르게 익힐 수 있지만, 또 금방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젊었을 때 모든 것을 바쳐서 익혔던 외국어도 더 이상 답이 되지 못했다. 전쟁으로 그 나라 경제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직장 경력이나 인맥도 그 바닥을 떠나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단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늘 도전해왔던 정신만 여전히 살아남았다. 바로 직장인 때 재테크 삼아 익혔던 부동산 경매가 그중 하나다. 그것 때문에 퇴사후 어느 정도 수입을 얻었고, 또다시 제3의 경력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또 이처럼 글 쓰고 준비하는 다른 여러 일들도 앞으로 어떻게 다시 빛을 발할지 모른다.


청년의 탄식처럼 앞에 한 점 불빛도 채 보이지 않는 듯한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터널의 끝이 지나고 나타날 '빛의 세계'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터널을 빠져나와본 사람은 안다. 터널 뒤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하나의 점 같은 불빛 뒤로는 캄캄한 터널의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은 공간이 다. 좁은 터널만 빠져나오면 원하는 길로 가며, 맘껏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단지,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이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지금 보이는 그 코스를 계속 달리는 것"이다. 너무 속도를 내거나 줄이지 않아도 된다. 조급한 마음에 이쪽저쪽 경로를 바꾸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 그냥 쭉 가면 된다. 지금 보이는 것,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면 된다. 또 한 가지는 의심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캄캄한 터널 안이라고 두려움에 떨거나 기죽을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오래지 않아, 곧 터널은 끝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또다시 밝고 넓은 새로운 길이 펼쳐진다.


그 청년의 미래를 조심스레 그려본다. 고기 써는 기술이든 사업 운영이든 열심히 익힌 것은 오롯이 남을 것이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헌신한 사소한 것 하나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 분야 수준급 기술자로 대우 받든, 사장의 신임을 얻어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든, 독립해 자신의 사업체를 차리든,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에 새로 도전한 경험은 또 다른 성공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단순히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실업계 진학이 대기업 취업으로, 적성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야간 대학 외국어 전공이 유학으로, 또 공공기관 재취업으로 이어질 줄은 시작할 당시 결코 알지 못했다. 단지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최선을 다해 했을 뿐이다. 그것이 두 번 경력 전환의 성공과 기쁨을 맛보게 했다. 지금 준비하는 세 번째 경력도 그렇지 않을까.


터널 끝 흰점 같았던 작은 불빛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스위치다. 이것을 켜는 방법은 비록 작게 보이더라도 그것을 향해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원하는 결과가 날 때까지 묵묵히 인내하며 달린 시간만큼 인생의 길은 열리고 밝아진다.'희망 한스푼'만 잊지 않는다면 삶은 더욱 맛깔스러워 진다.  잠시 잠깐의 도전은 한평생 누리고 남을 큰 열매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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