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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Dec 10. 2019

도서관에서 에코백을 받았다

도서관 노마드로 사는 법

나는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사서나 직원은 아니다. 도서관은 어느새 작업실 겸 놀이터, 여행지가 되었다. 하루 종일 매달려 글을 쓰기도 하고,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책 읽기에 푹 빠질 때도 있다. 올해 새로 생긴 생활 습관이다. 직장에서 독립하면서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작업실 문제였다. 집이나, 가족 가게, 부담 없는 코워킹 스페이스도 생각해봤지만, 결국 도서관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 일터로서 도서관을 만나던 순간은 감동이었다. 올려다볼 정도로 높은 곳에 있던 웅장한 도서관 입구를 볼 때부터 매료됐다. 당시 느낌을 적어뒀던 글이다. "드디어 일하고 싶은 장소를 하나 찾았다. 진짜 좋다. "좋다, 대박, 끝장" 등 감탄의 단어를 수없이 읊조렸다. 이 장소는 내가 사는 지역의 구립 도서관이다.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도 들러봤으나 그곳은 아니었다. 동사무소 민원실이 바로 옆에 있어 도서관이라 하기도 뭣했다. 그 외 집에 가까운 다른 도서관은 규모가 작아 답답했고, 시립 도서관은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새로 찾은 구립 도서관은 앞 쪽으로 탁 터인 산자락이 펼쳐지고, 주변 곳곳에 나무와 숲, 야외 휴게실이 조성되어 있었다. 거리도 집에서 30분 내외로 그리 멀지 않았다. 게다가 인터넷 컴퓨터실과 노트북 코너, 도서실, 남녀 열람실, 강의실, 카페, 매점  등 어떤 업무공간에도 빠지지 않는 시설과 환경을 갖췄다. 여유로운 공간과 인근 공원 산책로는 휴양지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공공시설이라 비용도 무료다. 퇴사자의 업무공간으로 이런 도서관만한 인프라를 찾을 수 있을까. 도서관 투어라도 만들어 지역의 좋은 도서관들을 샅샅이 돌아보고 싶다."


이후에도 여러 도서관을 다녔다. 도서관마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다. 어떤 도서관은 호젓한 외곽에 자연을 품은 여유로움이 좋았다. 인문학 책이 가득하고 컴퓨터실과 시설이 웬만한 코워킹 스페이스보다 잘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산꼭대기 산책로 입구에 있던 도서관은 온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압권이었다. 어떤 곳은 역사 공원 한 복판에, 유원지와 바다 인근에 있어 여가 생활과 학습이 동시에 가능했다. 도서관마다 프로그램이 멋진 곳, 컴퓨터실 사용 시간이 넉넉한 곳, 소장 도서가 많은 곳, 매점이나 식사 메뉴가 좋은 곳 등 이용자 편의도 가지각색이었다. 자유직업인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러 돌아다닐 때면 주변의 도서관도 함께 알아둔다. 일이 끝나거나 짬이 생기면 도서관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글을 쓰거나 자료를 찾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상 속 여행 같은 시간을 즐긴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이 주는 상상력을 만끽한다.


그중 빼먹을 수 없는 곳은 여전히 집 근처 도서관이다. 주말 가벼운 동네 산책 코스 같은 곳이다. 에코백도 여기서 받았다. 올해 최다 도서 대출자(1~100위)한테 소정의 기념품을 준다는 문자가 왔다. 보통 때는 그냥 흘려 넘길 만한 내용이었지만 호기심에 도서관을 찾았다. 선물은 에코백이었다. 까만 바탕에 덩그러니 'LIBRARY' 단어 하나가 인쇄되어 있었다. 도서관 기념품 다웠다. 빌린 책 나르느라 더 이상 커다란 가방 짊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매년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계속 줬다면, 주변에 생활 독서인의 저변이 굉장히 넓다는 뜻이다. 여태껏 10년 넘게 도서관을 다니면서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일 때도 주말이면 꼬박꼬박 도서관을 찾았다. 빠듯한 일상 중 빠지지 않는 취미가 독서였고, 도서관 가기였다. 거의 매번 1~2곳에서 대출 한도(도서관당 5권)를 꽉꽉 채워 책을 빌렸다. 올해는 도서관을 전문적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총 동시 대출 한도 20권을 다 채울 때도 종종 있었다. 최다 대출자의 영광도 이 때문인 듯하다.


책은 주로 빌려본다. 혹자는 자기계발이나 책쓰기를 위해서 책을 꼭 사서 읽어라고 한다. 도서 구입비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자랑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굳이 빌릴 수 있는 것을 살 필요가 있을까" 같은 문장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은연중에 책의 내용이 자기 안에 스며들었다가 삶에 묻어 나오기 바다. 한 자 한 자 읽기보다 흘려보내는 책이 많다. 최근 직업적 글쓰기를 준비하면서 독서 생활이 한층 더 정교해지기는 했다. 책의 인상적인 부분을 추려내 개인 DB에 차곡차곡 쌓는다.


도서관이 가까워진다. 등산로 입구, 공원 안, 마을 커뮤니티 등 예상치 못한 곳, 생활 깊숙이 도서관이 들어선다. 자연 속에서 커피 한 잔과 책을 즐길 만한 여유를 준다. 독서 공간에서 인문학 강좌, 영화 관람, 전시, 커뮤니티 모임까지 이어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한다. 해외나 동네 도서관 탐방기부터 활용법,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관련 출판물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도서관이 우리를 부른다. 배움과 나눔의 정신을 고양한다. 과거 역사부터 현재, 앞으로 나갈 미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학업과 취업, 직업생활, 취미나 노후를 준비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죽은 듯 고요하고, 피곤해 조는 모습조차 인간의 변화와 성장 불 지핀다.


오늘도 도서관의 정신에 흠뻑 빠져든다. 스스로 책과 콘텐츠가 되어 읽히고 소진되는 그날까지, 도서관과 눈 맞추며 미소 짓는다. 지식노마드로 세상을 유유히 흐르며 인류의 지혜와 함께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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