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 발리 가족 여행
2년 전 발리 여행에서는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주요 도시들을 다녔다. 우붓과 사누르, 램봉안, 꾸타
그중에서 가장 우리의 취향이었던 건 작고 조용한 섬 램봉안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발리에서 소문이 비교적 덜 나고,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그 첫 도시는 시데멘이다. 우붓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데 굉장히 푸릇푸릇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묶은 숙소는 시데멘의 중심부와도 더 떨어진 독립된 공간이었고. 그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데멘의 평화로운 일상이 흘러가는 동안
둘째는 여전히 무언가를 먹으면 토기를 느끼긴 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었다. 이틀을 꼬박 아픈 둘째 곁을 지키며, 이제는 몸을 가누고 앉아있는 아이를 본다.
밤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하나둘 도마뱀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 배낭여행을 할 땐 도마뱀을 무서워했다. 스물 넷, 라오스를 여행하던 중 화장실에 도마뱀이 나타났다. 숙소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화장실 뚫린 구멍을 다 막아달라고 울듯이 이야기해서 주인이 스티로폼을 들고 와 테이프를 붙이며 막아주던 기억이 있다. 이제 도마뱀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걸 보니 정말 사람일은 모르는 것 같다. 절대 못 먹던 고수가 국물에 섞여 있어도 이제는 그냥 먹게 되는 것처럼- 이것은 세월의 힘이 위대한 것인가. 아니면 엄마의 힘인 것인가.
낮에는 회색 늑대를 닮은 개도 잠깐 왔었다. 마루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늑대 한 마리가 눈앞에 나타나서 화들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개였는데 너무 커서 겁을 먹었다. 유일하게 첫째 아이만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주인은 개 주인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개는 이웃집 개였다. 이후 개는 돌아갔지만 이날도 다음날도 다시 찾아왔고 나중에는 그냥 개와 같이 있었다. 결국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근처 구멍가게에 갈때도 개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첫째는 그것을 굉장히 재밌어 했다. 개도 우리가 편했는지 숙소의 주인인양 마루 정 중앙에 누워 쿨쿨 자는데 그 모습이 니중엔 그저 너무 웃겼다.
남편과 나는 금주를 해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딱 무알콜 맥주만 마시는데, 발리 여행을 할 때만 예외로 빈땅 맥주는 마셨다.
밤마다 남반구의 이색적인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며 서로 빈땅을 마셨다.
남편이 마트에서 처음 빈땅을 사 온 날, 병따개가 없어서 이것저것 도구를 사용하다 숟가락으로 따게 되었는데 남편이 손가락을 다쳐서 피가 났다. 남들은 티비에서 잘만 따던데, 남편은 그런 재주는 없는 사람이다. 남편은 어떻게든 따는 걸 보여주고 싶었단다. 술도 잘 안 해서 병 따는 것도 서툰 남자.. 그래 너무 익숙해서 뻥뻥 따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낫다. 약을 발라주고,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다.
시데멘의 마지막 밤엔 초록 불빛을 내는 반딧불이가 숙소로 들어와 빙빙 돌며 지붕 안을 날아서 다 같이 한참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듯 했다. 아침에는 새가 주변을 날더니 저녁에는 반딧불이가 찾아왔다.
다 쿨했지만 차마 내가 쿨하지 못했던 손님도 있었다. 막 자려던 참에 욕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욕실도 마음만 먹으면 동물들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 긴장을 했다. 그래도 계속 소리가 들리는데 모른 척 잘 순 없었다. 적어도 무엇인지 확인은 해야겠다 싶어 조심스레 가보니 모퉁이에 주먹보다 조금 작은 회색 개구리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주먹보다 아주 '조금' 작은 정도였다. 이 정도면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모르겠는데 따지자면 두꺼비에 가까웠다. 차라리 벌레라면 휴지에 싸서 밖에 내보낼 수 있을 텐데. 묵직한 개구리는 내보내려 할수록 오히려 침대 밑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우산과 각종 도구를 써보려 했지만 다시 침대 밑으로 폴짝- 폴짝- 이 방법 저 방법 쓰다가 결국 개구리도 휴지로 싸서 밖에 놔주어야 했다. 결국 그 방법뿐이었다. 그 묵직한 손 안의 개구리의 촉감을 잊지 못한다. 원하지 않았지만 느꼈어야 했다. 외마디 짧은 외침과 함께 개구리를 밖에 풀어 주었다. 개구리야 네가 싫은 게 아니고 내가 아직 회색 큰 개구리랑은 친하지 못해서 그래 미안해.. 그날 밤 화장실에서 또 무언가를 만날까 봐 화장실 가고 싶은걸 꾹 참고 잤다. 내가 긴장을 풀고 더 열리면서 자연과 동식물과 친해질수록 내가 편안해지는 거구나 하고 느꼈다. 진짜 편안하다는 건 그런 것이구나.
셋째 날에도 숙소 거실에 앉아 아침을 본다. 여기에선 아침이 보이고 아침이 들리고 아침이 느껴진다.
내가 편안하게 이완되니 내가 비워지고 그 자리를 발리의 아침이 채운다.
나는 일순간 발리의 아침이 된다. 발리의 아침이 주는 싱그러움과 태어나는 에너지가 내 안을 채우며 그렇게 내가 발리의 아침이 되었다.
하지만 평화롭고 깨끗한 시데멘에서도 안타까운 모습이 있었다. 아침에 잠깐 쓰레기를 태우는 모습을 보았다. 한순간 아름답던 풍경에 하얀 연기와 쓰레기 타는 냄새로 가득 찬다. 그래, 관광객들과 우리가 쓰는 물건들 비닐과 플라스틱 썩지 않는 것들을 이곳에서 어떻게 처리하겠나. 어떻게 감당하겠나. 결국 태울 수밖에- 피어나는 하얀 연기와 냄새를 맡으며, 나는 발리에서 더 이상 자발적으로 물티슈를 사용하지 않고 일회용품을 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외부와 뚫려있는 숙소에서 우리가 이틀간 본 것들>
도마뱀 여러 마리, 큰 도마뱀 한 마리, 회색 큰 개, 검은색 큰 개, 점박이 개구리, 회색 개구리, 지렁이, 풍뎅이, 사마귀, 반딧불이, 작은 날벌레들, 파리, 왕 달팽이, 벌, 새들, 달, 별, 구름, 바람, 태양, 아침 등등
아무곳에 가지 않았어도 모든것을 만났다.
시데멘에서는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푹- 쉬었다.
쌓여있던 경직된 마음과 긴장이 풀리고
느슨해져간다.
고마웠어 시데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