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 가족 발리 여행기
어김없이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발리에 와서는 아침 일찍 해가 뜨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주변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할 무렵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도 새벽부터 눈을 비비고 따라나선다. 아름다운 은빛바다와 일출을 함께 바라보았다.
여행을 할 때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침이다. 알고 보니 나는 아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공기와 싱그러움이 있다. 한국에서 일상을 보낼 땐 가장 분주하고 정신없는 시간이 아침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오롯이 아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고요한 시간이 참 좋았다.
평화로운 아메드,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눈앞의 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영장, 가성비의 숙소, 여러 맛집들까지. 우리는 이곳이 마음에 쏙 들었고 오래오래 머물고 싶고,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지난밤 마트에서 사 온 간식들을 까먹고, 한국에서 가져온 놀잇감 중에 화석 발굴 놀이를 하고 있었다. 둘이 사이좋게 놀고 있는 걸 바라보는 나- 아이들이 잘 노는 걸 지켜보는 것만큼 평화로운 것이 없다. 화석발굴 놀이가 끝나고 어지러워진 바닥을 정돈하려다 물티슈로 쓱쓱 닦아 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휴지에 일일이 물을 묻혀 바닥을 닦았다. 이 평화로운 곳에서 아침마다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나는 걸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닐과 플라스틱 등 여러 가지 쓰레기들을 더 만들어 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메드에서 원하는 건 단 하나 요가 클래스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아팠던 둘째도 몸을 회복했기에 오늘은 홀로 아메드에 있는 요가원에 다녀오려고 했다. 아메드는 바이크가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바이크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나는 안전상의 이유로 도보를 선택했다. 아이가 있는데 혹여나 다치게 되면 안 되니까, 굳이 모험을 하지 않았다. 열심히 걸어 높은 언덕에 위치한 요가원까지 걸어갔는데 안내와는 다르게 시간이 변경되어 있었다. 9시에서 10시 30분으로- 그 자리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어 다시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라 괜찮았다. 태양이 조금 뜨거웠을 뿐- 요가는 다른 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대신 숙소로 돌아와 빨래를 했다. 새로운 숙소로 이동하면 제일 먼저 빨래를 한다. 가족들이 벗어놓은 빨래들을 그때그때 해두지 않으면 금방 빨래의 양이 거대해져 버린다. 런더리 서비스를 맡겨도 되지만 손 빨래하며 여행하던 습관으로, 그리고 경비가 절감되기도 하여 비누로 적당히 빨래를 해서 널어 두었다. 햇볕에 하루면 빨래가 다 말랐다.
첫째는 아침을 먹자마자 수영장에 들어갔다. 확실히 첫째와 남편은 물을 좋아한다. 둘은 완전 물개다. 물에 한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를 않는다. 반면에 나와 둘째는 물에 들어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과 아이는 물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나는 물 밖으로 나온 아이들을 챙겨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도 이로써 역할 분담이 확실해지고 서로의 구역도 확실해졌다.
남편은 물 속 담당
물 밖은 내 담당_
정 반대의 성향이 장점이 되는 순간이다.
계속 이렇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면 좋겠는데 남편은 내가 이해가 안 되나 보다.
남편이 나도 물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확 받았다.
"나는 여기서 그냥 바다를 보는 게 좋아.. 나는 글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이 필요해. 나는 이게 훨씬 더 좋아."
나는 오히려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남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을 정말 싫어할 수도 있는 거라고..
하지만 물을 좋아하는 첫째에게는 바닷속 세상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메드는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곳이다. 수심이 얕아 아이들도 스노클링을 하기 좋다고 했다.
"미안해 나는 물에 안 들어가고 싶은데.. 근데 첫째에게 바닷속은 꼭 보여주고 싶어. 당신이 꼭 보여줘!
부탁이야 첫째의 스노클링 좀 도와줘 "
아이에게는 바닷속을 보여주고 싶은 간곡한 나의 부탁에 남편은 수영장에서 아이에게 스노클링 강좌(?)를 해주었다. 딸아이는 확실히 아빠를 닮았나 보다. 수영도 혼자 터득하더니 스노클링도 너무 잘한다..
몇 번 연습을 시켜주더니 아이를 데리고 바다로 갔다.
남편은 안전하게 튜브와 이것저것 준비해서 아이를 데리고 바다로 들어갔다. 물고기가 있는 곳을 찾아 혼자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며, 아이를 챙기고 알려주는 모습이 보였다.
여태껏 제 몸만 잘 챙기는 줄 알았던 남편이 든든하게 야생 바다에서 아이를 지켜내는 것을 보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이 멋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