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일상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순 없을까

by 수바나



발리 여행을 마치고 홍콩에서 하룻밤을 경유한 뒤 한국에 도착했다. 자정쯤 도착한 공항 주변은 몹시 추웠고 비바람이 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덜덜 떨며 멀리 떨어진 주차장까지 가기 위한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차를 찾아 짐을 싣고 오랜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발리에 얼마나 몰입을 했었냐면 운전을 하는 나의 모습이 2주 동안 완전하게 삭제되어 있던 탓에 마주한 운전석이 낯설었고 운전하는 법도 버벅 거렸다. 비행기의 피로와 어두운 비 내리는 도로에서 운전은 쉽지 않았고 오늘 집으로 가는 것은 도무지 어렵다는 판단으로 수원에 있는 본가에 들러 하루 쉬었다 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필 여행 하는동안 환율의 영향으로 더 적은 돈으로 잘 여행할 수 있었다. 여행을 오래 하는 우리가 돈이 아주 많을 거라 오해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4인가족 숙박비를 하루 15만 원 안쪽의 숙소로 잡았고, 하루의 총 여행 경비는 20만원으로 잡았다. 발리를 여행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고급 리조트에 묶겠지만 우리에겐 이 정도도 충분했다. 인프라가 적은 곳일수록 숙소 가성비가 좋았던 것 같고 현지식을 좋아했기에 식비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다.


여행을 하고나면 지나치게 묶여있던 일상을 리셋시키고 좋은 에너지를 받고 돌아와 현실과 나 자신을 재구성할 수 있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 우리가 가끔씩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드디어 다음날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온 집.. 마당에는 잡초가 가득 자라 있었고 집은 그대로였다. 가장 먼저 변화가 느껴진 건 몸에 닿는 기온이었다. 발리의 익숙한 따뜻함이 서늘함으로 바뀌었다. 선선한 기온에 어디 창문이 열렸나 확인하지만 그냥 전체적인 주변의 기온이 바뀐 것이었다. 집이 조금 낯설다. 할 일을 잔뜩 적어놓은 빽빽한 화이트보드부터 쓱쓱 지워냈다.


발리에서의 여유 있는 순간이 아직 몸에 깃들어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 의도와는 달리 할 일들이 쏟아졌다.


다시 운전을 시작했고, 다시 가족의 밥을 짓기 시작했다. 당연히 모든 설거지도 직접 한다. 내일은 청소부터 해야겠고 장을 좀 보고나서 마당의 잡풀 정리를 해야지. 청소와 밥 마당관리뿐 아니라 아이들 체험학습 보고서, 케리어 파손 보험신청 등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둘째는 예전처럼 장난감 놀이를 같이 하자고 매달린다. 그저 순간에 어우러지던 여행과는 달리 일상에서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무언가를 많이 해야 하는 기분이다. 쌓인 여독이 한 번에 몰아쳐 계속 졸리다. 아침부터 아이는 일어나 놀자고 보채고 엄마는 30분만 더 자겠다고 자야 한다고 아이를 달래다가 갑자기 힘이 쭉 빠진다. 다시 시작되는 하루는 이전과 같은 일상 같지만 켤코 같지만은

않은것이 있다. 이제는 떠오르는 아메드의 일출과 여행의 잔상이 우리의 일상에 함께한다. 우리에겐 발리 여행의 흔적이 내부 기억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일상이 여행처럼 될 순 없을까-

분주하지 않게, 바쁘지 않게

너무 많은 할일들을 쌓아두지 않고

여행에서 얻었던 이 여유를 다시 잃고 싶지 않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여행 같은 일상을 만들어가자. 일상을 미니 발리처럼-


잔뜩 적어놓은 To do 리스트는 지워내고

의식적으로 속도를 떨군다.

덜 서두르고 덜 하려 한다.


일상에서도 여행이 주었던

<여유의 감각>을 나는 기어코 잊지 않으려 한다.


천천히 잘란잘란





엄마가 발리에 가고 싶어서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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