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던 여행의 시작
드디어 발리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그야말로 난리를 겪었다. 여유롭게 발리에 왔구나!-를 느낄 새가 없었다. 도착해서 돈을 뽑으려는데, 여행카드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온 가방을 다 뒤져도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제 홍콩을 경유하면서 ATM에서 돈을 뽑고 카드를 챙기지 않았던 것 같다. 정신이 없어서 돈만 챙기고 카드를 놓고 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여행 카드를 잃어버렸다니- 멘탈이 흔들리는 와중에, 하필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간 상태였다. 근처에서 충전을 시도했지만 잭이 문제인지 충전이 잘 되질 않았고, 충전이 되어도 아주 느리게 올랐으며 준비해 간 이심의 인터넷은 잡히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와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먹통인 핸드폰만 들고 서있어야 했다. 사전에 신청한 픽업기사는 기다림을 초과했는지 계속 연락을 걸고 있었고, 픽업 대기 마지노선 시간도 다 되어가고.. 일단 돈도 못 뽑은 채로 출발부터 하기로 했다. 여행하면서 한 번도 이런 걸 잃어버리거나 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되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나마 침착하게 계속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다. 여행의 위기상황에는 절대로 정신을 놓치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다행히 여분의 여행카드를 한 장 더 챙겨 왔는데 2년 전에 발급만 받아놓고 써본 적이 없는 카드라 이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 비밀번호도 확실치 않았다. 픽업 기사가 사전에 예약한 우리의 숙소로 데려다주는 동안 차에서 충전을 하며 다른 트래블 카드 연결 시도를 하는데 하필 바꿀 때가 되었는지 폰이 자꾸 꺼지고 충전은 느리고 또 인터넷은 먹통.. 결국 기사님께 기사님의 핫스팟 연결을 부탁드리며 기사님 데이터로 급한 대로 카드 사용법을 익히고, 계좌를 다시 연결하고, 기존 카드는 비활성화시키고, 가는 길에 ATM에 들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ATM에 세워주시며 안 그래도 길 막혀서 딜레이가 많이 되었다고 빨리 와줄 수 있냐고 부탁하시길래 알았다고 하고 달려가서 돈을 뽑는데 안 뽑히네.. 옆 기계에서 다시 시도하니 돈이 뽑힌다. 위이이이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쏟아지는 안도감.. 됐다.. 살.았.다. 정말 이제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이 여행을 계속 할 수 있게 됐다. 돈도 소액씩 뽑혀서 조금씩 뽑다가 기사님 생각이 나서 황급히 차에 탑승했다. 그 와중에 둘째는 토할 것 같다며 얼굴이 새하얘져서 다시 차를 멈추고 아이가 바람을 쐬고 난 뒤 다시 달려야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기사님도 처음이라며 외진 길을 달렸는데 가는 도중 힌두 세레모니를 한차례 만나고, 해는 다 지고.. 나는 뽑은 돈으로 기사님께 사례를 안 드릴 수가 없었다. 딜레이와, 데이터 사용을 한 것에 대한 사과와 감사 인사를 전하며.. 어찌 저찌 그렇게 우리는 시데멘의 첫 숙소에 도착을 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하나의 집으로 이루어진 독채 숙소였다.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도착한 숙소에서 둘째는 토하기 시작.. 누룽지 미음이라도 먹이려 했지만, 아이는 먹지 못하고 그마저 토하려 했다. 둘째는 그대로 휴식모드에 들어갔다. 우리 숙소인지 도마뱀 집인지 도마뱀이 하나 둘 셋 넷, 벽에 나타나더니- 이따금 크게 울어댔다. 예전에 여행할 땐 작은 도마뱀 하나에도 겁을 먹었는데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인지 내가 자라서인지 도마뱀도 아무렇지 않게 여겨졌다. 근처에는 초록 반딧불도 날아다녔다.
안도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쯤
쏴아아 하며 쏟아지는 빗소리.
첫째 아이와 나란히 앉아 빗소리를 들었다.
"엄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
"스마트폰 보던 뇌가 정화되는 것 같아"
남편까지 합류해서 같이
빗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발리의 첫 밤은 빗소리와 도마뱀, 반딧불이가 우리를 환영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