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 발리 가족여행기
남편과 다른 점도 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모두 P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J였다면 서로 엄청 스트레스 받았을 것 같다고 그나마 이것이 다행이라고 서로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둘 다 촘촘한 계획보다는 그때그때 감성에 따라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큰 여행의 형태는 잘 맞았다.
지난번에 저가 항공으로 열심히(?) 치열하게 여행한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그래도 좌석 앞에 모니터가 있고 기내식은 주는 항공을 타기로 했다. 지난번 여행 때는 그냥 어떻게든 아이들을 태우고 버티며 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각자 무언가를 보거나 누르거나 했다. 덕분에 훨씬 힘이 덜 들었다. 기내식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 이것도 더없이 좋았다.
홍콩을 경유하는 항공이어서, 우리는 홍콩에서 하룻밤을 묶기로 했다. 긴 시간 이어지는 비행보다는 쉬었다 가는 게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나라마다 나라의 온도가 있다. 인도는 확 하고 불어오는 짙은 향신료 같다면 사이판은 기분 좋은 바다 바람이 불었고 홍콩은 더운 온도가 서서히 몸을 휘감는 느낌이었다. 기모 긴팔을 입고 출국한 둘째는 갑자기 바뀐 온도에 영문도 모른 채 무척 더웠을 것이다. 이미 땀으로 머리가 송글송글 젖어가는 게 보였지만 옷소매를 걷는 것도 싫어하고 끝까지 옷을 그대로 입겠다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더위에 힘이 빠져 땅에 드러 누우려 했고 우리는 겉옷을 재빨리 벗겨 버렸다. 그렇게 메리야스만 입은 채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택시 안에서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원래는 숙소에서만 머무르며 간단히 음식을 해 먹고 쉬려고 했는데 홍콩의 콘센트가 맞지 않아 쿠커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으러 거리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엔 잘 된 일이 되었다. 처음 보는 홍콩의 거리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이국적이었다. 지도상 근처에 있는 도삭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한자뿐인 메뉴판에 뭐가 뭔지 모르니 옆에 있는 아주머니께 드시고 계신 게 무엇인지 물어보고 짚어주시는 대로 대충 시켰는데 결론은 대 성공!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로 연신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무슨 말을 했는지 서로가 알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들이 물이나 탄산음료가 아닌, 콩물이나 밀크티를 옆에 두고 마시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에 우리도 콩물과 밀크티를 주문했다. 끝내주게 맛있는 도삭면, 밀크티와 콩물까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특히나 달지 않은 밀크티는 우리의 취향저격이었다.
식당을 나오니 때마침 쏟아지는 비. 비를 맞고 걸으며 딸에게 이야기한다."비가 오니 더 재밌다. 그치? 홍콩의 밤이 더 기억나겠다." 딸아이는 끄덕이고 웃으며 연신 카메라에 풍경들을 담았다.
지나가는 길에 한 사발씩 파는 보약? 이 있었다. 남편은 냄새가 확 당긴다며 흥미를 보이며 망설이는 눈치였고, 나는 끌리면 먹어보라고 시도해 보자고 했다. 역시 한자뿐이고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을 열심히 나누다가 결국 서로의 말을 알게 되는 신비 끝에 보약을 한 그릇 마셨다. 홍콩의 거리를 거닐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첫 일정을 마무리했다.
홍콩에 들어올 때는 220불을 주고 우버 택시를 불렀는데 나갈 때는 60불 버스를 타고 유유히 나간다. 처음 나라를 겪을 땐 긴장되는 두려움이 있지만 조금만 경험하면 스르르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긴다. 비 맞으며 조금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탔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시간 체크를 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동생을 챙기고 둘이 버스에 앉아 안전벨트를 척척 매고 기다린다. 둘째도 커갈수록 누나를 잘 따르니 여행이 한결 편하다.
홍콩은 한국과 닮았다.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른 개성이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홍콩의 매력을 느꼈다.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발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