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CA M3 - 012
1953년, 쾰른 포토키나. 그 작은 전시장에서 라이카 M3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카메라 세계는 순식간에 충격과 경외 속으로 빠져들었다. 0.92배라는 압도적인 파인더 배율, 기계의 한계를 넘은 정숙한 셔터, 그리고 고전적이면서도 완벽한 조작성. 이 작은 금속 상자는 단지 사진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당대 기술의 정점이자 예술의 대상이었다.
일본의 기술자들이 M3를 분해하려다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그건, 장인의 숨결이 닿아있는 정밀함 그 자체였다. 당시 RF 카메라를 생산하던 니콘은 결국 RF 시장에서의 철수를 선언하고 SLR의 길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리고 역사는 일본의 시대를 연 니콘 F 시리즈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 이전, M3는 모든 것을 이미 완성한 바디였다.
나는 그런 M3의, 만 번대 싱글스트로크 모델을 품에 넣었다. 단단한 개체였다.
샵을 통해 운명처럼 얻게 된 그것은, 내 손에 들어온 수많은 카메라들 중에서 가장 ‘사진의 신성’ 같은 무게감을 가졌다. 이 에세이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카메라로써,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M3는 블랙페인트의 환상도, 커스텀 파츠의 유혹도 넘어서서 그 자체로 완결된 존재다.
사실 나는 한때 M6 만 만져봤고, 작업을 위해 디지털 M(262)을 쓰면서 M3를 처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나는 기억한다. M3를 늘 품에 넣고 다녔다.
묵직한 육중함에도 불구하고. 두 번 떨어뜨렸던 적이 있다. 상판 쪽만 피하면 아무 일도 없다는 걸, M3는 온몸으로 증명해 주었다. 라이카 바디의 내구성은, 말 그대로 철처럼 단단했다. 무거웠다.
보익틀랜더의 50mm f/1.1 같은 렌즈를 물리면 목에 진짜 쇳덩이가 걸린 듯했고, 침동 엘마를 마운트해도 어깨로 전해지는 묵직함은 여전했다.
누군가는 SLR에 비하면 가볍다고 했지만, 지금 시대에 미러리스의 작고 얇은 바디들 사이에서 M3는 더 이상 휴대성이라는 단어와는 멀어진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메라를 소유해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아니, 입 아프다. 말해 뭐 하나. 라이카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과 증오의 대상이다.
명품 논란, 그돈씨 논쟁, 순혈과 비순혈의 파벌. 모든 논쟁이 집중되는 ‘상징’.
그 모든 것을 품은 셔터음—
귀뚜라미 소리, 혹은 매미 소리라 불리는 셔터. 그리고 릴리즈가 돌아올 때, 톱니바퀴가 부드럽게 물리는 소리. 그것은 ‘기계의 심장박동’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곤 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거리를 걷던 시간들.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는 막연한 설렘. 그 마음을 가장 먼저 담았던 것이 바로 M3였다.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가방에 넣었던 것, 늘 M3였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할 장면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을 기록하는 카메라가 라이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실용성, 빠름, 가벼움을 택하게 되었지만, 그 모든 선택을 하기 전, M3는 내게 사진이라는 감각의 깊이를 가르쳐 주었다.
사진은 빛을 담는 일이라고 하지만, M3와 함께한 시간은 감정을 담는 일이었다.
피사체에 대한 경외, 장면에 대한 경건함.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내 안에 울리던 작은 떨림. 라이카는 그런 진지함을 가르쳐줬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끔, 손끝에 M3의 감촉이 남아 있는 듯하다.
나는 언젠가 M6를 다시 써보고 싶다. 필름의 감촉을 잊지 못한 채, 조금 더 늙었을 때, 다시 단단한 금속의 바디를 쥐고 싶다. 찌르르르, 그 익숙한 셔터음과 함께.
헨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말했다. “라이카는 내 눈의 연장이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이 바디로 고통의 풍경을 기록했고, 로버트 카파는 세상을 바꾼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이 기계를 품에 안았다.
그들에게 라이카는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에 다가가는 조용한 무기’였고, ‘손의 기억이 남은 도구’였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형태’였다.
지금은 내 손을 떠났지만, 라이카 M3는 내 안의 가장 깊은 서랍에, 아주 천천히 셔터를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