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멍하니 서 있다 보면, 가끔 아주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저기 앉은 사람은 어디서 내릴까,
앞에 선 이 남자는 왜 굳이 오늘 운동화를 신었을까,
나는 왜 매일 똑같은 칸, 똑같은 자리 근처에 서게 될까 같은 생각들.
가끔은 이상하게 지하철이 참 사람 같다 싶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일정한 리듬으로 하루를 돌아다니고,
무표정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또 멈추고, 기다리고, 다시 달린다.
지금 내가 이 칸에 탄 이유도, 어쩌면 내가 자꾸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되는 이유도,
그 리듬 속에 어떤 '유지되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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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존감에 대한 말들이 참 많다.
자기를 사랑하라,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마라, 스스로를 믿어라.
다 좋은 말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자존감이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하루는 멀쩡하고 다음 날은 무너질까.
왜 어떤 날은 말 한마디에 덜컥 무너지다가도,
어떤 날은 다소 거친 말도 웃어넘길 수 있는 걸까.
지하철을 떠올리며 생각해 봤다.
자존감은 감정이나 기분 같은 게 아니라, 시스템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내면의 구조.
지하철이 관제센터, 선로, 바퀴, 신호, 전기 시스템 등이 모두 정상 작동해야만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듯이,
자존감도 여러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제각기 제 역할을 해줘야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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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시스템의 중심은 아마도 뇌, 그중에서도 해석을 담당하는 관제센터일 것이다.
상대가 던진 말이 농담인지, 무례함인지, 단순한 정보 전달인지 판단하는 기능.
그걸 오작동하는 순간 우리는 흔들린다.
관제센터가 신호를 잘못 읽으면 열차가 정차하거나 탈선하듯이,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공격’으로 받아들여 갑자기 마음을 닫아버리거나,
스스로를 과잉 방어하거나, 괜히 침잠해버리기도 한다.
신호를 정확히 읽는 능력, 그게 자존감의 첫 번째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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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아무리 빨라도 선로가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간다.
레일은 방향이고, 바퀴는 실행력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지.
자존감은 ‘나는 괜찮아’라는 확신보다,
‘나는 지금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라는
조용한 의식에서 더 탄탄해진다.
내가 내 몸을 움직이고 있는가,
그게 아주 작은 루틴이든, 오랜 고민 끝의 선택이든 상관없다.
움직이는 자아, 나를 견인하는 일상의 바퀴.
그것이 자존감을 잃지 않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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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사이의 간격이 적절하지 않으면 사고가 나듯,
사람 사이도 그렇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단절된다.
내가 경험한 건강한 자존감은
‘적당한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었다.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를 너무 조이거나,
너무 느슨하게 풀어놓지 않는 감각.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을 수 있는 거리.
그게 자존감을 실현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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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자주 고장 난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시스템이 망가져서라기보다는,
정기적인 점검과 수리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청소, 전기, 환기, 감시, 매뉴얼, 작은 센서 하나까지…
모두 멀쩡하게 돌아가야 열차가 무사히 도착한다.
자존감도 그렇다.
명확한 목표도, 타인의 존중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를 지탱하는 건 매일의 작은 돌봄 루틴이다.
혼자만의 시간, 몸을 챙기는 일,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불안할 때 꺼내보는 일기장, 따뜻한 밥 한 끼.
그런 것들이 자존감을 서서히 복구시킨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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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달리고, 어떤 날은 멈춘다.
어떤 날은 방해받고 어떤 날은 조용히 나아간다.
삐끗하지 않게, 멈추지 않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라는 선로 위를 달려간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 운행 중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