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다.
땅속 깊숙이 묻힌 유물을 찾아내고, 과거의 비밀을 캐내는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동네를 벗어나본 적 없는 아이였다.
누구에게 다가가는 것도 서툴러서, 주로 혼자였다.
그래서 이집트의 사막 대신, 나는 내 안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내 불안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자꾸만 위축되는 성격의 근원은 어디일까.
소외감이 파놓은 구덩이는 얼마나 깊을까.
돋보기를 들고 집요하게, 섬세하게 내 안의 단서들을 파헤쳤다.
그 탐험 끝에서 어떤 날은 악취 가득한 웅덩이를 발견했고,
어떤 날은 나도 몰랐던 반짝이는 금맥을 찾아냈다.
그러다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자존감이 부족하구나.”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받아들여지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는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 안에는 소외될까 두려워하면서도,
소외돼도 괜찮은 척 으스대는 어린아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와 작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소외감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을 염탐하듯
자존감을 높이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정답지를 보며 오답노트를 만들 듯이,
하나씩 내 사고와 행동을 고쳐 나갔다.
책 속의 사람들은 모두 단단했다.
자신감으로 빛나는 갑옷을 두른 전사 같았다.
어릴 적 친구들이 “공주가 되고 싶다”라고 말할 때,
나는 늘 “여전사가 되고 싶다.”라고 답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전사는 못 되더라도
자존감 높은 사람은 되어보자 다짐했다.
마치 고고학자가 되어 내 안을 탐험하던 그때처럼,
나는 ‘당당함’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꾸며낸 자존감은 어딘가 어색했다.
스스로 연기 중이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공허와 허무가 번졌다.
내 유리 갑옷은 너무 얇고 연약해서,
부서질 때마다 나를 찔렀다.
무심한 말 한마디에 금이 갔고,
그 틈새로 스며든 악취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내 자존감은 탄탄한 흙 위에 뿌리내린 것이 아니라,
물살에 떠밀리다 병든 줄기처럼 쉽게 썩어갔다.
비린내 같은 자책은 감춰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무력감 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나를 애틋하게 바라봤다.
그래서 자꾸 속삭였다.
괜찮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돌이켜보면, 나를 더 잘 알고 싶어 탐험을 시작했던 그때부터
나는 나를 조금씩 사랑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존감이 약하다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스스로를 애잔하게 여긴다면,
이미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너무 기죽지 않기를.
당신의 연약함 속에도 단단함의 씨앗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