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수연 Jan 23. 2024

여자가 이별을 생각하는 이유는?

* 특정 성별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나 오늘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못 만날 것 같아."

"... 그래... 푹 쉬어..."


남자여자와의 약속을 마치 먼지 털듯이 없던 걸로 해버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 날 저 날을 헤매다 어느덧 예전 그의 얼굴에 다다른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서 나타난 그의 얼굴. 그는 계절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 몸을 끌고 나온 그가 미련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괜스레 웃음이 났던 기억.


"아픈데 왜 여기까지 왔어? 집에서 쉬지!"

"아... 네 얼굴 보면 금방 나을 것 같아서..."


내 얼굴을 보면 금방 낫을 것 같다던 그는 오늘의 그와 다른 사람인가? 전화기 너머로 뿜어 나온 그의 에너지가 그날의 그것과 퍽 다르다고 느끼는 순간 혜영 씨의 생각은 의심으로 진화했다.


마음이 변해버린 걸까?


이윽고 의심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된 걸까..?

이제 헤어지게 되는 걸까?


마음이 시큰거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이별을 그린다.  

어스름한 새벽 아침, 그에게 문자를 보낸다.


우리 시간을 가질까?




위의 스토리가 너무 비약적인가?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A에서 B로 이어지지 않고 D나 F로 건너뛴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연인 사이에서 자주 일어난다. 그렇지 않은가?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몸이 아파 쉬겠다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왜 이별을 떠올릴까?


현재까지의 대화로 밝혀진 사실은,


1. 그는 몸이 아프다고 했다.

2. 나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이 정보에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 그는 아파서 휴식을 원한다.


여자의 결론이 다른 이유는,

'남자 친구는 오늘 휴식을 원한다.'에서 몇 가지 더 추론했기 때문이다.


1. 그는 (어떠한 이유건간에) 나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2. 그는 변했다. 

3. 우리의 관계는 문제가 있다.


= 이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니 시간을 갖자고 말해보는 게 좋겠다.


추론의 배경은 무엇일까?


연인의 작은 행동에도 민감하게 생각하고
급기야 이별을 상상하는 사람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날드 위니콧(Winnicott)은 아동과 양육자의 상호작용 과정을 탐구했다. 양육자와의 경험을 통해 아이가 자기 개념을 구축해 나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이는 양육자가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평가하는지를 파악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켜 나가더라는 것.


성숙한 양육자는 아동의 감정상태를 이해하고 그 감정을 수용한다. 아동은 자신의 감정을 수용해 주는 양육자의 행위를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져 스스로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부모가 아동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고서 수용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혼자 남겨질까 불안해지는 것이다.


아동은 부모의 반응을 통해 감정을 배운다. 반응하지 않는 무심한 부모와 자란 아동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기 쉽다.


필요한 시기에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아동은 스스로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라고 인식하기 어렵고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된다.   

     

감정에 반응해 주는 엄마(아빠)와 자란 아이는 엄마가 잠시 떠나 있어도 울며 보채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엄마가 곧 돌아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였던 적절히 반응해주지 못하는 엄마(아빠)와 자란 아이는 양육자가 잠시 떠나 있는 것도 견디기 어려워한다. 불안해한다. 도무지 안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부모의 학대에서 생겨난 비극이 아니다.

어쩌면 평범한, 아이를 몹시 사랑하는 부모와 자란 아이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이한 여자가 아니다.


그녀가 아주 어릴 적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 아기였던 그녀의 마음에 그저 작은 생채기가 생겼었다. 안심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그녀의 의도가 아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슬픔이 자신도 모르게 가끔 튀어나올 뿐이다.


그러니 이제 추론하고 비약하지 말자.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괜찮다고 속삭여주자.


상대가 준 정보, 곧 <아파서 쉬고 싶어요>에 대해서만 답해보는 것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이제 성인이 된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펴 줄 수 있다.  


"아파서 쉬고 싶어요."

"많이 아프고 힘들죠? 내 걱정 말고 편안하게 쉬어요."



만일 그녀 추론했던 내용이 사실이고 헤어지게 된다 해도,


당신은 새로운 연인을 만날 수 있는,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현명한,

당신은 괜찮은 어른이니까.


토닥토닥 아름다운 그대.


이제 안심해도 괜찮다.

사랑과 연민으로 아름다운 삶을 채워나가자.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내 인생을 괴롭히지 말자.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

이전 02화 유난히 연인 관계에 집착하는 이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