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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May 24. 2020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법

불필요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내 배낭을 무겁게 했던 감정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죄책감이었다.


뭔가 잘못했던 것 같은 느낌.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잘 못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죄스러운 감정들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벨로라도로 향해 걷던 길,

불편하고 미안한 일들이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책감.

미안하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일까?


그렇다면,

... 미안하면 죄책감 느껴야 하나?



https://unsplash.com/@superlativeco



우리 집 강아지 코로는 나를 좋아했지만 종종 갑자기 화를 내며 내 발가락을 물었다.


코로는 두려웠다.


코로는 왜 화를 냈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릴 적 다른 집에서 겪었던 학대의 경험으로 인해 반가워 꼬리 치며 달려와서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공격했다. 그의 혼란스러운 행동들로 강아지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참 힘들었었다.


코로는 그렇게 18년을 살다 죽었다. 우리 강아지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끝까지 사람을 무서워했으니까.


코로가 죽기 얼마 전, 소화를 시키지 못해 주사기에 약을 넣어 입을 벌려 먹였던 날, 순순히 입을 벌리는 것을 보고 눈물이 엄청 나 끅끅거리며 울었다. 손만 가져다 대면 으르렁대며 자신을 방어했던 코로는 고분고분 입을 벌려 약을 받아먹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난 그것이 슬펐다.  


죽고 난 후엔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다. 평범했던 어느 날 엄마가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품에 안겨서 죽었다.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의 품에서 불안했던 삶을 벗어나 고통 없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우리 강아지도 분명 가족들의 사랑을 원했다. 눈치를 보면서도 슬그머니 가까이 오곤 했으니까.

가족을 물고 난 후에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코로는 자신이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것이 미안했을까?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을까?


강아지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그러나 부디 미안하더라도 죄책감 같은 것 없이 살아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여행 질문서

당신은 무엇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요?

엄마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길 원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하는 것

급기야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마는 것.




욕구와 죄책감


강아지가 날 좋아하던 말던, 자신을 지키고 싶어 화를 냈듯, 나도 가족에게 비슷한 감정을 겪고 있었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미워했다. 나의 욕구 때문이다.



욕구(欲求):
본능적(本能的)ㆍ충동적(衝動的)으로 뭔가를 구(求)하거나 얻고 싶어 하는 생리적(生理的)ㆍ심리적(心理的) 상태(狀態)




내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마음, 엄마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 그 무엇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욕구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생존의 욕구 = 인정의 욕구


아이들에게 엄마의 사랑과 인정은 생존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TV 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휘재의 쌍둥이 아들 중 동생 서준이는 형인 서언이보다 무덤덤하고 얌전하다. 그런데 부모와의 애착 검사를 하고 나니 오히려 서준이가 결과가 좋지 않았다. 칭얼대지 않을 뿐 실제로는 더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아빠는 형 서언이를 먼저 재우고 난 후 동생 서준이를 몇 번씩이나 안아준다.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많이 안아주겠다고 약속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얌전한 아이였다. 지금 아무도 믿지 않지만 명실공히 동네에서 가장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엄마의 욕구를 채워주고 칭찬과 인정을 얻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러니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을 수밖에...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린아이도 곧 자라 스스로 생존할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 어딘가 모르게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채워질 수 없는 욕구들


언젠가부터 엄마는 자연스레 나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내게 일어난 일들에 깊이 관여하며 기뻐하거나 슬퍼했다. 그 사실이 부담스러웠고 화가 났다. 엄마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부담스러워 집 밖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렇다고 산뜻하게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죽을 맛이었다.


나는 두 사람 분의 바람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했다. 엄마의 요구가 내 바람과 다를 때면 몹시 화를 내면서도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도 했다. 내 삶을 내가 스스로 디자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꾹꾹 참다 폭발하고 나면 곧 죄책감이 따라 밀려왔다.


우리 사이에 얽혀있는 욕구들은 다양한 모습의 죄책감을 만들어냈다.


1.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욕구

2.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욕구

3.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욕구

4.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욕구

5.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욕구가 좌절될 때 내 안에 일어나는 분노에 대한 죄책감

6.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엄마를 괴롭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  

7.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나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8.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길 바라는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9.....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건강하게 해결할 방법을 몰랐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항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 엄마에게 반격(?)하기 시작했다. 힘이 생긴 것이다. 사춘기도 심하게 왔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피하기도 했었다. 마치 나를 좋아하지만 내 발가락을 물던 우리 코로처럼.


미안함이 아니었다.
나에게로 향하는 깊은 죄책감이었다.                                                                                                                                                                                            

  

함께 걸어가는 아빠와 딸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여행 질문서 추가 질문

무엇을 위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요?

무엇을 위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 떠올리니 괴롭네요.

저는 더 이상 미안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방어하기 위해 죄책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결과를 위 죄책감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미안함은 나의 마음이 타인을 향해요.
타인의 손해를 헤아리는 나의 마음이죠.

죄책감은 나의 마음이 나를 향해요.
나의 손해를 헤아리는 나의 마음이에요."

                                      - 소설 컬러 미 배드                                            




미안함과 죄책감은 다르다.


미안함은 나의 마음이 상대에게 향해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고, 약속해서 상대의 마음이 편해진 것을 확인하면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죄책감은 다르다. 마음이 온통 자신에게 향하므로 상대의 마음과는 점점 멀어진다.




제발 그만 좀 해

  


 

만일 어떤 잘못을 '자기 행동의 문제'가 아닌 '자기 존재의 문제'로 여기면 상황은 점차 악화된다. 그러므로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면 죄책감은 자기 안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만일 죄책감이 들 때마다 아래의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상대방도 점점 괴로워질 것이다.


'너한테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너무 모자란 탓이야.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급기야는 화를 내기도 한다.

'나도 너무 괴로운데 날더러 뭘 더 어쩌라고!'



죄책감이 미안함보다 나쁜 이유?


1. 나쁜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자신을 비난한다. (비난은 백해무익하다.)

2. 상대방의 감정에 과도한 책임감을 갖는다. (상대의 감정은 상대의 것이다.)

3. 상대의 감정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는다면 그건 오만이자 착각이다.)

4. 자기 괴로움에 빠져 상대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빠져들어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 시간이 없다.)

5.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도리어 화를 더 심하게 내는 경우도 있다. '네가 이렇게 구니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어.')



자꾸 미안하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이유?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아닌 자기 죄책감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상대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에너지가 자기 비난에 빠져 엉뚱한 곳에 쓰이는 꼴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부담감이 가중되어 점차 덜어내는 것이 쉽지 않아 진다. 끝내 갈등에서 회피하고 마는 것이다.



잘못했다면 자기 비난 대신

상대에게 제대로 미안해하고 제대로 사과하자.


사람에게 발로 차일까, 오해하고 내게 으르렁거렸던 우리 강아지처럼 나도 엄마의 바람을 혼자 상상하고 혼자 부담을 느끼고 폭발했다. 실제로 엄마가 무엇을 원했는지 명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원하는 딸’의 허상을 마음대로 그려놓고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엄마도 굉장히 억울했을 만하다.


그래서 짜증을 냈다. 그래서 떨어져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는 아니다. 다만 행동이 적절하지 못했을 뿐이다.


화가 난 내게 화날만했다고 나를 토닥여줄 줄 알아야 한다. 화냈다고 또 화를 내봤자 화만 더 날 뿐이다.  


엄마는 내게 무언가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요구가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절하면 된다.


'엄마는 그렇게 하길 바라는구나? 그럴 수 있어. 이해해.'

'그런데 나는 이걸 원해. 그래서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럴 필요 없다.


누군가를 100% 만족시켜줄 수 없고 만족시켜줄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에게도 만족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무슨 수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


사람들의 욕구를 다 채워주려고 들다간 단 한순간도 평온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1) 내가 엄마의 마음을 100%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2) 때로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는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3) 엄마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더라도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나는 나의 욕구를 인정하되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의 부담이 없으니 여유를 가지고 엄마를 대하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한결 좋은 관계가 되었다.  


나를 존중하고 상대를 존중한다면 그 누구도 내게 죄책감을 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마땅한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여행 질문서

무엇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요?


여행 질문서

무엇을 위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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