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 나타난 사람.

긴급사태 선언 이후 일본 일상에 대해서

by 행방불명

나는 시스템 개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스템 유지, 보수,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 시스템을 사용하는 고객은 보험회사다. 보험회사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중요할 수 있는 건강정보와 자산 정보를 취급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 정책이 원래 엄격하다. 그래도 금융계열중에서 가장 감사가 엄격하다는 증권회사보다는 힘들지 않지만, 감사철에는 각종 서류 수집과 정리가 어마어마하여 매년 유월 즈음이 되면 마음이 울적해질 정도이다.


엄격한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따라, 이 회사는 사원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확연히 다르다. 나는 파견업체의 일원이어서 고객처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그렇게 크지 않다. 시스템 유지, 보수, 관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시스템에 접근할 권한 자체는 관리자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그 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차단되어있고,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조달하기보다는 고객처 사원을 통해서 받는 편이다.


이 때문에, 자택 근무가 된다고 하더라도 일에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나올 수도 없으며, 그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에, 자택 근무는 단순한 자택 대기와 같은 말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재택근무를 시행해 봤자, 단순히 인원을 놀리는 것 밖에 안되므로, 긴급사태 선언이 나오더라도 그렇게 쉽게 재택근무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예상도 얼추 맞았다.


긴급사태 선언이 나온 후 고객처의 사원은 점차 재택근무로 전환해 갔다. 하지만 역시 파견업체 직원은 그러지 못했다. 이 회사는 과반수 이상이 파견업체 직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과반수 이상이 전부 회사에 출근했다.


나의 예상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일본 정부에서 "출근인구를 70퍼센트를 줄인다"라는 발표가 나고, 부랴부랴 대대적으로 재택근무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팀은 4명으로 구성돼있는데, 갑자기 1명 체체가 되었다. 팀원 2명이 오전 오후 갈라서 출근한다. 고객처 사원도 갑자기 사라졌다. 메일함에서야 그들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은 없는데, 메일만 오고 간다. 갑자기 테스트 환경에서 아주 사소한 장애가 발생했다는 연락이 온다. 이 날은 나만 혼자 오전에 출근한 상황이었는데, 경위를 들어보니 내가 응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바로 담당부서 계장님에게 연락을 올렸다. 그런데, 그 계장님도 사내 환경에 접속 가능한 기기를 가지고 있지 않단다! 아니 이럴 수가. 자기 회사 계장에게도 기기 지급이 없었단 말이야? 도대체 어디까지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는 생각인지! 일은 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파견업체 사원만 자택 대기만 못한 자택 근무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고객처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에 살짝 경악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내가 장애처리를 했다(물론 계장님의 원격 지원사격이 있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일본도 학교의 개학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출근하러 역까지 자전거를 밟으면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곤 했었는데 그 모습을 못 본 지 꽤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등교하는 모습을 딱 한번 봤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개학이 아니라 시업식(혹은 입학식)이었구나 싶었다.

좀 인상에 남았던 것이,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양복을 빼입고 딸을 데려온 아버지가 신선했다.

입학식 정도 되면 아버지가 휴가 내고 올 법하기도 하지만, 이 시국이라 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매일 출근하며 그 초등학교 앞을 통과하지만, 등교 시 보호자는 거의 어머니였으니까.


또 어느 날은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근처 역에서 내려 역에서 자전거로 집까지 가는 도중이었다. 내가 사는 주변은 그야말로 거주구역이라 빼곡하게 들어선 주택만큼 서로를 구획하기 위한 자그마한 십자 골목이 꽤 많은 동네다. 오늘도 여느 때같이 그 십자 골목 중 하나를 통과하는데, 밖에서 아이와 놀고 있는 아이 아빠를 보았다. 그가 십자 골목을 등지고 서있고, 아이가 그를 향해 돌진한다. 돌진을 성공시킨 아이는 곰돌이 같은 아빠에게 폭 안기며 까르르 웃는다. 십자 골목을 등지고 서있는 아빠는 자신의 뒤로 차량이 통과하는지 아닌지 유심히 살피는 모습에 부심이 묻어난다. 그 차량이 내가 탄 자전거라 몇 번이나 그 아버지랑 눈이 맞았다. 아이의 행복한 웃음소리에도 눈이 갔지만, 평일 대낮에 밖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아버지가 신기해 눈을 뗄 수 없었다.




위에서 적은 모습들을 좋다 나쁘다 판단할 생각은 없다. 또한 일면만 보고 내가 좋을 데로 생각해 버리는 것 일수도 있다. 사실 계장님은 기기가 없어서 불편하기는커녕, 일 안 하시고 집안에서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늘어 행복하실 수도 있고, 십자 골목의 아버지는 백수라 항상 그 자리에서 매일 아이랑 놀아 주고 있던 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변화를 그들을 통해 인식한다.


어떤 곳에선 사람이 사라졌지만, 어떤 곳에선 사람이 나타났다. 사람이 없어져 불편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나타나 행복해 보이는 곳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직장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가정에 나타났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과 가정이 저울질당할 때, 우선과 차선을 결정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아는 친구는 가정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침울해했다. 직장을 선택한 사람들은 가끔 죄인 같을 때가 있다. 분명 자신이 가장 우선하는 가치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히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우선과 차선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최선이라는 말 아닌가?


최선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놓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를 함께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느냐를 지금 시험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이 삼십몇년에도 수많은 변화가 발 빠르게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을 그냥 넘기기보다는, 그에 대한 나가 느낀 바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내 자신을 변화시켜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소소히 깨닫고 싶다.


그런 시각에서 긴급사태 선언을 주시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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