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테니스, 테니스가 인생
풋워크 : 몸의 균형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공을 치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발을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테린이 #테니스타그램 #테니스웨어 #테니스펜션
2020년 테니스는 '힙하고 핫한' 스포츠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면 훈훈한 젊은 남녀들이 형형색색 개성 넘치는 옷을 입고 건강하게 땀을 흘린다. 유튜브에는 경기 하이라이트는 기본이고 슬로모션 선수 분석 영상, 초보부터 고수까지 적용 가능한 게임 꿀팁, 구독자의 질문에 답해주는 콘텐츠까지 무궁무진하다. 네이버에 스트링, 라켓 등을 검색해보면 유명 브랜드는 물론이고 해외 직구, 커스텀 라켓 등을 내 입맛대로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1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실내테니스장, 나아가 기계가 공을 던져주는 스크린 테니스까지 등장했다. 코트를 관리하는 어르신들에게 크게 인사하고 양해를 구한 뒤 눈치껏 빈 코트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통해 공정하게 선착순으로 코트를 구하고, 양도를 하거나 구력에 맞는 상대를 구하기도 한다. 젊은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트렌드 '테니스'는 예전처럼 얼굴이 새까매지고 땀내 나는 구식 운동이 아니다. 요즘 테니스는 귀족 스포츠라는 유래답게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며, 또 젊다.
2008년 내가 처음 접한 테니스는 '올드' 그 자체였다. 대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도 아닌 도서관 좌석 번호로 기억되는 재수생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오리엔테이션, 축제, 주점, MT. 입학 전 기대한 이벤트가 투성이었지만 나는 월수금 주 3파 아웃사이더였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왕복 4시간의 통학길을 버텨내지 못할 거란 걸 애초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가지 않는 화요일, 목요일에 뭔가를 해야만 할 것은 묘한 의무감이 피어올랐다. 때마침 그때 테니스가 나에게 찾아왔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습관처럼 TV를 켜니 이형택이 어느 스페인 선수와 경기를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끈질기게 공을 받아내고, 엄청난 기합을 외치며 서브 에이스를 내리꽂고, 경기 막판에는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뛰고 또 뛰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테니스란 새로운 스포츠를 보며 나도 '치고, 달리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2003년 인디언웰스 오픈 32강 다비드 페레르와의 경기였다. 1~3세트 전부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면서 거의 3시간가량 펼쳐진 혈투였다.)
1976년 주택건설 촉진법 시행규칙에 따라 500가구 이상의 아파트 단지에는 테니스장 설치가 필수였다. 주민의 여가 문화생활 함양이란 거창한 목적에 알맞게 많은 이들이 테니스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흔한 테니스장은 야간 라이트나 고성으로 민원만 많이 들어오는 골칫거리로 변했고, 빽빽한 세대수에 비해 항상 부족한 주차장으로 변신하는 추세였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있는 귀중한 테니스장도 진입 장벽이 제법 높았다. 대학생에겐 부담스러운 입회비, 레슨을 받고 어느 정도 실력이 없으면 가입할 수 없는 조건은 차오른 열정을 꺼트리기 직전이었다. 그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주 2회 오전반의 수강 신청 플래카드가 다시 마법처럼 다가왔다. 배드민턴, 테니스 라켓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동네 상가 스포츠 샵에 가서 저렴한 5만 원짜리 중고 라켓을 샀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부푼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화요일을 기다렸다. 수업 첫날 부끄러움 많은 나는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코트에 들어갔고, 예닐곱 명의 이모뻘 수강생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코치님도 여자였고 뜬금없는 20살 남학생의 등장에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이걸 5만 원 주고 샀다고? 너무하네!
원으로 삥 둘러앉아 수강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코치님이 나이나 운동 경력을 물어보다 내 라켓을 보고 한마디 하셨다. 부푼 기대를 안고 산 야심 찬 중고 라켓이 문제였다. 젊은 학생에겐 어울리지 않게 헤드 사이즈가 너무 컸고, 어르신들이 애용하는 가벼운 무게에다가, 여기저기 심한 스크래치가 나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는 '중고'는 전부 그런 줄만 알았다. 그저 색깔이 예뻐서 골랐는데.. 식당에서 머리카락 한 올, 아니 머리 한 움큼이 통째로 나온다 하더라도 불편한 소릴 못하는 나에게는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선생님의 한마디에 주변 회원들도 너나 할 거 없이 한 마디씩 거들었고, 결국 성난 민심이 불타올라 환불 원정대가 꾸려졌다. (그들의 통화는 아주 적절한 톤의 불만, 타협안이 가득 찬 내가 본 최고의 협상이었다.) 결국 나는 더 좋은 상태의 바볼랏 중고 라켓과 서비스 양말까지 얻어냈고, 우여곡절 끝에 단체 레슨을 시작했다. 팀워크가 척척 맞는 기존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코치님의 공을 하하호호 웃으면서 넘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구석에서 기본 중에 기본 '풋워크'를 배웠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스플릿 스텝-유닛 턴-테이크백-스윙. (지금이야 이렇게 표현하지, "당시에는 뛰어! 돌려! 손! 스~윙!"이었다.) 재미가 없었다. 운동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당장 넘겨주는 공을 시원하게 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그때 수십, 수백 번 연습한 풋워크가 모든 테니스 샷의 전부라는 걸.
그리고 그날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까지는 아니고 제법 뒤흔든 테니스와의 잊지 못할 첫 만남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