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쉽고, 믿을 수 없게 어려운 힘 빼기의 기술
포핸드 스트로크 : 라켓을 든 손 쪽으로 치며, 지면에 바운드된 공을 라켓의 앞면으로 치는 기법
원래도 그랬지만 비가 오는 날이 더욱 싫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무더운 땡볕이 차라리 나았다. 적어도 테니스를 칠 수 있으니깐. '청소년 하나 없는' 청소년 문화센터 테니스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받았다. 20대 청일점인 나는 테니스에는 젬병이었지만, 자녀 진학 상담이나 생일 선물 추천 등에는 유용한 대학생이었다. 모든 게 궁금한 호기심 많은 테린이에게 수강생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결국 복식은 발리 싸움이니 뒤에만 있지 마라.", "파트너에게 잔소리하지 마라.", "모든 공을 위너로 성공시킬 생각하지 마라." 희한하게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었지만, 모두가 공통된 목소리로 한 이야기가 있었다. "처음 배우는 포핸드 스트로크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멋'. 테니스를 오래 쳐서 구력이 쌓이면 경기를 쉽게 이길 수 있지만, 이겨도 폼이 구리면 멋이 안 난다고. ('이상하다'라는 단어는 맛이 살지 않아, 표현을 그대로 빌렸다.) 하나같이 스위스 황제 페더러의 포핸드를 슬로모션으로 보라는 추천을 해줬다.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사뿐한 포핸드는 확실히 내 예상과 달랐다. '강함, 맹렬함, 폭발적임'과 대비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스포츠의 목적은 경기를 이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경기력이니 스타일이니 다 집어치우고 승자가 모든 걸 가지고 간다는 내 통념을 깨트리는 관념이었다.
포핸드 스트로크는 초보자가 가장 먼저 배우는 기술이다. 포핸드만 얼추 익히면 공을 주고받는 랠리도 가능하고, 게임도 어째 어째 흘러갈 수 있기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실제 경기 중에 가장 많이 쓰는 기술도 포핸드다. 프로 선수들은 유리한 경기 운영을 위해 억지로라도 돌아서서 포핸드를 치곤 한다. 아무리 수세에 몰려도 아름다운 포물선을 유지하는 페더러의 우아한 포핸드는 언제 봐도 품격 있고 아름답다. 근육으로 꽉 찬 나달의 왼팔에서 시작하는 괴물 같은 포핸드는 보는 이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기계처럼 긴 팔로 코트 바깥까지 커버하며 냉철하게 공을 넘겨내는 조코비치의 포핸드는 경이롭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가장 어려운 걸 물어본다면 단연코 '포핸드'다. 풋워크 단계를 지나 상상 속에선 이미 대포알 같은 포핸드를 치고 있었는데, 실제로 처음 포핸드를 쳐보니 결과물은 시원한 홈런이었다. 코치님은 일단 천천히 맞춰보고 스윙도 가볍게 해 보라고 했지만, 어째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실컷 연습한 스플릿 스텝은 온데간데없었고, 다짜고짜 공으로 달려들었으며, 공이 맞는 순간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코치님은 너무 강하게 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했고, 누구나 처음엔 그렇다고 위로의 말은 건넸다. 그리고 네트에 걸리는 것보다 차라리 라인을 넘어가는 게 낫다고 했다. 하지만 성미 급한 나는 하염없이 날아가는 야속한 공을 바라보며 씩씩 거렸다.
그러자 고참 회원이 스스로 어떻게 치고 있는지 한번 보라고 휴대폰으로 나를 찍어주셨다. 영상 속 나는 누가 봐도 엉망인 폼의 스트로크를 치고, 아니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포핸드를 친다는 표현도 민망했다.) 입을 모아 말했던 '멋이 안 나고 구린' 자세 그 자체였다. 힘이 잔뜩 들어가 누가 봐도 잘못된 샷.. 이라기보단 허우적거림의 향연이었다. 호쾌한 포핸드, 시원한 스윙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내 몸은 마치 목각인형처럼 딱딱했고, 잔뜩 팔에 힘이 들어가 위태로워 보였다. 반복 학습했던 풋워크는 이미 까먹었고 코트 위에 두발이 박힌 것처럼 붙어있었다. 코치님이 한 번씩 해주는 피드백을 한 번에 죄다 고치려고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뒤죽박죽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코치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려주셨다. 라켓이 아니라 날아오는 공을 스윙하듯이 손으로 잡아보라고. 어렵지 않았다. 이번엔 라켓의 목부분을 잡고 그냥 정중앙에 맞춰보라고. 어색했지만 곧잘 넘어갔다. 다시 제대로 라켓을 잡되 30%의 힘만 주고 툭 넘겨보라고. 뻥뻥 힘을 주고 칠 때는 몰랐던 스트링의 울림과 공의 말캉한 탄력이 조금은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쳐보라고 던져준 공을 향해 가볍게 포핸드 스트로크를 날렸다. 회전하는 공은 네트를 적당한 높이로 넘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라인 앞쪽에 떨어졌다. 처음 느낀 그때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테니스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힘을 빼는 것'이었다. (누군가 힘을 주는 데 3년, 힘을 빼는 데 3년이 걸린다고도 하던데, 내가 보기엔 힘을 빼는 데 '최소' 3년이다.) 결정적인 한방의 포핸드를 날리기 위해 손목, 팔, 어깨까지 잔뜩 힘을 주고 강하게 휘두르면 결과는 두 가지다. 네트에 걸리거나, 라인을 벗어나거나. 요즘도 나의 포핸드는 들쑥날쑥하고,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도 많다. 돌이켜보면 단순하게 힘을 빼고 넘기는 데 집중하는 백핸드, 발리보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상대 발밑으로 보내볼까, 크로스로 길게 줘볼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힘이 들어가 버리더라. 초보자의 열정이 빚어낸 흔한 실수는 비단 테니스뿐 아니라 골프, 수영, 아마 모든 스포츠에 적용되는 일이었다. 아니 스포츠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든 일에 지나치게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왜 빨리 바뀌지 않느냐고 재촉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항상 아쉬움이나 후회 없는 100점짜리 결과물은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잠시 한 걸음 물러나서 될 대로 되겠지식으로 편하게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더 괜찮은 성과가 많았다. 또한 다른 걸 떠나서 무엇보다 내가 덜 힘들었다. 페더러 포핸드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성공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나 한결같이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데 있다. 굳센 다짐, 결연한 의지, 긍정적 동기 부여는 잠시 접어두고 그냥 힘을 쭉 빼고 공만 보고 휘두르자. 적어도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실패하면 어떤가, 그래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나에게는 두 가지의 삶이 있고 코트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놓아 버린다.
마음속에서 안정과 평온함, 평화와 자신감을 찾는 순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 로저 페더러
+ 내가 처음으로 소중한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산 라켓, 헤드 래디컬. 그럴듯한 쌍둥이 라켓이 생겼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더 비싼 라켓, 새로운 모델을 사도 이때만큼의 떨림은 절대 되살아나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