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샘바리 Oct 30. 2020

백핸드 스트로크 :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나 혼자 테니스, 우리 함께 테니스

3. 백핸드 스트로크 :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백핸드 스토르크 : 라켓을 들지 않은 쪽으로 공을 치는 타법. 한 손이냐 양손이냐에 따라 원핸드, 투핸드 백핸드로 나뉜다.

벚꽃 놀이, 대학 축제, 새내기 배움터. (연애를 제외하면)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열정적으로 참여한 나는 정신없이 첫 학기를 보냈다. 물론 주 2회 테니스 강습도 꼬박꼬박 빠지지 않았다. 어설픈 포핸드로 어느 정도 공을 넘길 때쯤 어느덧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부유하는 존재였던 재수생 시절부터 꿈꾸던 순간이었다. 소속감이 없다는 것, 그건 바로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걸 느끼며 하루하루 버티던 때의 유일한 희망은 여름방학이었다. 아르바이트, 유럽 배낭여행, MT, 한강 나들이. 온갖 버킷 리스트가 많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무려 계절학기였다. "1학년 때 여유 있게 필수과목을 들어놔야 유리하다, 교환학생이든 학회든 높은 학점을 요구하니 미리 챙겨놔야 한다."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나는 불안함에 일단 덜컥 계절학기 수업 2개를 신청했다. 주 5일 9시~12시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영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문과였고, 그중에서도 밥 굶기 십상이란 철학과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겨볼까 했지만, 현실은 또 다른 '해야만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정말 운명처럼 다시 테니스가 슬그머니 내 인생에 치고 들어왔다. 


"테니스부 여름 강습회! 초보 환영!" 테니스 동아리에서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테니스를 가르쳐주고, 신입부원 모집까지 함께 한다는 포스터가 게시판에 가득했다. 2시간 넘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는 것도 고역인데, 온 김에 뽕을 뽑아야만 하는 내게 딱 알맞은 강습회였다. 어리숙한 신입생이 어색하게 전화 문의를 했더니, 당당한 목소리의 선배는 강습은 물론 고기 뒤풀이도 있을 거란 친절하게 설명했다. 결국 계절학기-테니스 강습으로 이어지는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새내기의 첫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캠퍼스 끝자락을 넘어 산 중턱에 위치한 테니스 코트로 가는 내내 펼쳐지는 나무 그늘. 하얀 양말이 흙먼지에 누렇게 되는지도 몰랐던 클레이 코트. 삐걱거리는 문이 곧 부서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샤워실에서 씻고 나와 먹었던 얼음물. 2008년 여름은 이렇게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됐다. 언젠가부터 수업 시간 복장은 간편한 운동복이었고, 라켓 한 자루를 들고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테니스 코트로 걸어갔다. 무엇보다 포핸드의 다음 단계인 백핸드 스트로크를 배우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몸을 튼 채 양손으로 강하고 정확하게 공을 쳤을 때 그 느낌은 포핸드의 짜릿함 이상이었다. 백핸드를 익히고 난 후 나는 복식을 조금씩 즐기기 시작했고, 파트너의 뒤(Back)를 커버하는 안정적인 백핸드에 색다른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나는 취업엔 눈곱만큼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테니스부의 일원이 되었고, 다음 해에는 신입생 모집을 위해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왜 하필 새로운 스포츠 테니스에 푹 빠졌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모든 승패의 책임이 오로지 본인한테만 있는 게 좋았다. 나는 단체 스포츠를 즐기다 보면 생기는 '균열'이 태생적으로 싫었다. 상대를 막기 위해 거친 수비를 하다 보면 몸싸움과 반칙, 나아가 부상은 필연적이었다. 균열의 시작이 밖이 아니라 안일 경우 더욱 곤란했다. "패스를 했어야지. 거기서 왜 슛을 쐈냐. 수비가 문제다, 공격이 문제다. 아니 네가 문제다"로 번지는 불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테니스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네트에 걸리지 않고 공을 넘기면 된다. 가로세로 8.23x11.88m 네모 박스 안에만 공을 넣으면 된다. 상대방이 실수하기 전까지 계속. 이기든 지든 모두 나의 실력에 달려있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스포츠라 생각했다. 테니스는 혼자가 익숙하고, 스스로가 정답이라 생각해온 내게 딱 알맞은 스포츠였다. 백핸드를 배우고, 복식경기를 치기 시작하기 전까진. 복식경기에선 개개인의 실력보다 중요한 게 '동료를 믿는 것'이었다. 모든 공을 본인이 치려고 무리하거나, 파트너를 믿지 못해 혼자 신나서 공을 때리면 필패였다. 단식보다 조금 더 넓은 범위를 둘이서 나눠서 커버하는 사이에 팀워크가 피어올랐다. 단식으로는 절대 못 이길 상대도 호흡이 맞는 파트너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도 생겼다.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운 좋게 혼자가 아니었다. 신호에 맞춰 함께 네트로 뛰어갈 파트너가 있었고, 여름 내내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연습한 선후배가 많았다. 비록 대학생 필수코스로 여겨지는 어학연수, 교환학생, 인턴은 하나도 못했지만, 8월이면 강원도 양구로 전세버스를 타고 가서 내내 테니스를 즐겼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즐긴 시간이었다. 덕분에 테니스부의 경험을 살려..는 아니고 엄청나게 운 좋게 취업에 성공했고, 어느덧 뻔하디 뻔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남들처럼 해야만 하는 일에 허덕이다가 간절히 주말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을 찾아 덜 힘들게, 더 즐겁게 살고 있다. 테니스를 치며 배웠듯 인생에는 믿고 의지할 소중한 사람이 많고, 나도 그들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30대가 되어 말로는 '인생 혼자다', '관은 1인용이다'를 외치지만 여전히 눈치도 많이 보고, 걱정도 많이 한다. 샘도 많고, 정도 많다. 하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에게 느끼는 솔직한 감정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항상 감사하고 더 표현하려 노력한다. 애매한 상대의 공격을 "마이(My)", "유얼스(Yours)"라고 외치지 않으면 넘기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험난한 세상에서 관은 1인용이 맞다. 하지만 누군가는 관 뚜껑을 닫아줘야지 않겠는가? 


내 테니스의 중요한 점은 경기하는 것을 항상 사랑했다는 것이다.
- 버지니아 웨이드


마음속 고향, 대학 시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테니스 코트


이전 02화 포핸드 스트로크 : 힘주는 데 3년? 힘 빼는 데 3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