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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30. 2020

서비스 : 결자해지의 스포츠

기상천외한 전국 대학테니스'동아리'대회

4. 서비스 : 결자해지의 스포츠

서비스 :  플레이를 개시할 때의 첫 번째 스트로크(stroke)로 서브라고도 한다. 네트를 건드리지 않고 대각선 반대편의 서비스 박스에 들어가야 성공한 것으로 인정된다. 탑스핀/슬라이스/플랫 서브 등으로 나뉜다.

테니스에서 서브는 상대의 방해 없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샷이다. 본인의 노력에 따라 서브는 최고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초보자 입장에서 2번 연속 서브를 넣지 못하는 더블 폴트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첫 서브가 네트에 걸리고 나면, 두 번째(이자 마지막) 서브는 더욱 소극적이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그대로 '서비스'로 점수를 주고 시작하는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포핸드와 백핸드로 어리숙하더라도 곧잘 공을 넘기는 나에게 다음 숙제는 '서브'였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기고, 여름이면 매년 강원도 양구에서 펼쳐지는 테니스 동아리의 축제인 '연맹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한없이 철없는 대학생 시절 학점, 토익 점수, 대외활동보다 중요한 건 지극히 개인적이고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전국 제패'였다. 하지만 오로지 순수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 시절엔 피곤한지도, 무모한 줄도, 비효율적 인지도 몰랐다. 비가 오면 고인 물을 밀고 공을 쳤고, 너무 더우면 그냥 참고 공을 쳤다. 공강 시간이면 햄버거를 들고 코트로 뛰어가기 바빴고, 라이트를 켜고 밤새 공을 치다가 불어 터진 짜장면을 욱여넣었다. 굴러가는 게 용한 카트에 가득한 헌공들을 반복적으로 넘기고, 수북이 쌓인 공을 쪼그려 앉아 다시 줍는 시간마저 즐겁고 소중했다.


테니스, 그중에서도 서브를 연습하며 가장 좋았던 건 내가 노력해서 상대방을 이길 수 있다는 특성이었다. 억지로 상대방을 밀어뜨리거나, 막아서지 않더라도 나의 실력을 키우고, 균형을 잡는 것만으로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반복된 연습대로 나의 몸을 컨트롤한다면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이 온전히 나의 포인트를 따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브의 시작, 공을 머리 위로 던지는 토스는 다시 할 수도 있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의사 표현만으로 다시 한번 서브의 기회가 주어졌고, 실제로 첫 서브는 실수를 하더라도 기회가 또 있었다. 어깨와 허리, 나아가 목이 뻐근할 때까지 서브를 연습하는 일은 신나는 게임과 달리 사실 귀찮고 지루했다. 특히 코트와 공, 더불어 내 손끝까지 얼어버린 추운 겨울 새벽에 반복적으로 서브 연습을 하는 건 꽤 고된 일이었다. 그래도 '연맹전'이라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고, 함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마냥 괴롭지만은 않았다. 프로도 아닌, 그저 취미로 그깟 공놀이를 열정적으로 즐기는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은지 8월 중순이면 알 수 있었다. '국토정중앙 전국 대학테니스 동아리대회'. 흔히 말하는 '연맹전'은 4박 5일간 강원도 양구에서 단체전(단식 2팀, 복식 3팀)과 개인전으로 펼쳐졌다. 나에게 팥빙수나 바닷가는 여름의 징표가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테니스 가방과 소주, 맥주 박스를 이고 진 풋풋한 대학생들이 고속터미널역에 옹기종기 모여 양구행 버스에 몸을 싣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여름의 시작이었다.  


연맹전에서는 '동아리' 대회답게 프로 선수들이 보기에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참 많이 펼쳐졌다. 대회 결과보다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경기 전 소맥을 한잔씩 마시는 이들도 있었다. 인원수가 부족해 라켓을 말 그대로 잡고만 있는 새내기도 있었고, 국가의 명운이 담긴(?) 엄청난 연구를 미뤄둔 채 자가용을 끌고 합류한 대학원생도 있었다. 셀프 콜 규칙에서 4명 모두 스코어를 기억 못 하자, 웃으며 사이좋게 처음부터 게임을 시작하기도 했다. 배달 온 탕수육을 먹다 말고 허겁지겁 호명하는 코트로 뛰어가는 건 다반사였다. 그중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비'였다. 프로 무대에서는 몸이 곧 자산인 선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경기는 연기된다. (최근 윔블던 조직위원회는 잦은 우천 연기를 막기 위해 무려 1,800억 원을 넘게 투입해 센터 코트에 지붕을 설치했다.) 하지만 빠른 경기 진행으로 스케줄 끝내기가 최우선인 동아리 대회는 달랐다. 1세트 매치, 5대 5 타이브레이크, 노애드가 기본인 상황에서 폭우는 그저 축제의 요소였다. 귀신같이 비가 쏟아지는 8월 양구에서는 부지런히 포인트 사이사이 학생들이 빗물을 밀기 바빴다. 미끄러운 바닥 탓에 아예 맨발로 경기를 치르기도 하고, 물 웅덩이에 공이 떨어지는 순간 페더러가 와도 못 받을 낮게 깔린 마구가 쏟아졌다. 부지런히 갈고닦은 서브의 추억도 바로 이런 날씨가 배경이었다.


우승을 위해 모인 쟁쟁한 A팀 선배들과 달리 이제 갓 걸음마 단계로 게임을 하는 나는 D팀 3복식 주자였다. 첫 경기에 노련한 상대를 만나 육빵(0:6)을 배불리 먹고 양구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리고 예선 통과를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에 실력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 마지막 게임을 맞이했다. 긴장감은 가득했지만 집중력을 높여줄 딱 알맞은 수준이었고, 힘찬 응원을 받으며 패기 넘치게 경기를 했다. 하지만 “매치포인트” 소리를 듣는 순간 공은 하필 내 손안에 있었다. 긴장한 나머지 토스를 너무 뒤로 던졌고, 억지로 스윙을 했지만 폴트였다. 한번 더 실수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고 허망한 더블폴트로 경기를 내 손으로 끝냈다. 하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다음엔 이런 중요한 순간에도 평온하고 서브를 넣도록 더 연습하겠단 굳센 다짐과 친구들과의 테니스를 매개로 한 잊지 못할 여름날 추억들이 남았다. 성공하면 약간 배우지만 실패하면 모든 걸 배운다는 책 속 한마디를 가슴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연습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지극히 소소한 반복으  삶을 채워 나가다 보면  과정 자체가 특별한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블폴트가 없냐고? 물론 절대 아니다. 하지만 강함보단 정확도에 초점을 안전한 세컨드 서브를 익혔고,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면 언더 서브라도 넣는 뻔뻔함이 생겼으니 됐다. 매번 시원한 서브 에이스를 쾅쾅 꽂는 건 내 삶이 아니란 걸 이미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래도 어찌 됐든 서브는 내 손에서 시작하니 괜찮다. 죽어라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게 투성이인 세상에 새삼 서브가 제법 공평하니 말이다.



노력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로저 페더러


테니스 대회 우승보다 기쁜 건 바로 경품 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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