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만약에 말에' 병에서 벗어나기
발리 : 공이 땅에 닿기 전에 치는 것을 말하며, 어깨보다 높은 위치에서 치는 하이 발리와 네트보다 낮은 공을 치는 로발리가 있고, 땅에 공이 닿자마자 쳐 넘기는 하프발리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은 둘이 하는 단식보다 넷이 하는 복식이 훨씬 익숙하다. 메이저 테니스 대회는 단식 경기가 대세지만, 우리 동네 코트는 옹기종기 짝을 지은 복식 경기가 대세다. (단식만 따로 즐기는 동호회, 대회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복식이 주류다.)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코트가 넘쳐나는 해외와는 달리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부족한 코트 환경이다. 수강신청만큼이나 치열한 예약을 뚫어야 하는 공공테니스장, 일부 동호회와 코치에게만 개방된 폐쇄적인 사설 테니스장. 한정된 시간에 많은 사람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코트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복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둘째는 단식이 주는 체력적 부담도 한 몫한다. 골프 이전에 60~80년대 사교 스포츠의 대명사로 '테니스 붐'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라켓을 처음 잡은 동호인들의 연령대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오로지 모든 코트를 혼자서 커버하고, 복식에 비해 압도적으로 스트로크 횟수가 많아지는 단식은 부상 위험도 높다. 건강을 위해 취미로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들에게 부상은 테니스로 '밥 벌어먹는' 프로 선수들만큼이나 치명적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이유를 제외하고 복식이 재밌는 이유는 오로지 '발리'때문이다.
네트 플레이는 복식의 꽃이자, 단식과는 다른 매력을 뽐내는 기술이다. 공이 땅에 닿기 전에 재빠르게 낚아채는 공격형 발리, 몸 쪽으로 강하게 넘어오는 공을 일단 다시 받아넘기는 수비형 발리. 성격은 다르지만 좁은 코트에서 4명이서 맞붙는 복식경기에 발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파트너와 함께 순식간에 네트 앞을 점령하면 포인트를 따낼 확률이 높아지고, 찰떡같은 호흡이 필요한 전술이다. 그렇기에 복식 테니스를 단식 테니스와는 아예 다른 스포츠로 구분하는 사람도 있다. 테니스 단식 1위가 무조건 복식 1위인 것도 아니다. 남자 테니스 복식 순위에서 무려 438주간 1위를 지킨 마이크 브라이언, 밥 브라이언을 봐도 알 수 있다. 역대 최강의 복식조로 불리는 두 선수는 일란성 쌍둥이다. 오른손잡이 마이크와 왼손잡이 밥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탄탄한 발리로 상대 듀오를 무력화시켰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함께 119개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발걸음과 시선까지 일치하는 콤비 플레이는 일사분란했다. 이렇듯 발리만큼 파트너와의 호흡, 테니스 경험이 필요한 기술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구력이 곧 실력'으로 통하는 동호인 시합에서도 발리는 노련한 고수들의 강력한 무기였다.
부럽다 부러워. 나도 네 나이 때 테니스를 시작했으면...
아직 30대 초반인 나는 동네 테니스 클럽에서 항상 막내뻘이었다. 수십 년간 공을 친 아저씨들보다 나은 거라곤 이 공 저 공 다 뛰어다니는 체력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요즘에는 장점이 아닌 단점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어르신들은 젊어서 부럽다며 퉁퉁 공을 힘없이 넘기기 일쑤였지만, 제일 곤란했던 건 상대방 둘이 나란히 네트 앞에 바짝 붙어있을 때였다. 몸 쪽으로 세게 치다가 어르신을 맞추면 어쩌나 하는 고민은 솔직히 들지도 않았다. 강하게 몸통을 향해 직선으로 때려도 넘어오고, 회전을 잔뜩 걸어 발밑으로 쳐도 넘어오고, 어중간한 발리는 개운하게 얻어맞고. 수십 년간 쌓인 테니스 구력에 내 공들은 전부 읽히기 일쑤였다. 그날도 의기양양하게 코트에 들어섰지만, 어김없이 탄탄한 벽처럼 느껴지는 발리에 무너지며 졌다. 40대 형님은 계속 치다 보면 금방 실력이 늘 거라고 말하며 부러움의 말을 덧붙이셨다. "회사 생활하기 전에 너처럼 대학생 때부터 테니스 치기 시작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러자 50대 파트너 형님이 말했다. "내가 너처럼 30대에 시작했으면 지금 전국 대회를 다 휩쓸었을 텐데." 지나가던 60대 회장님이 보란 듯이 씩 웃고 지나가셨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니?" 하지만 정작 20대에 테니스를 시작한 나는 아빠를 따라 클럽에 나온 꼬마가 부러웠다. "나도 내 키만한 라켓을 들고 놀았더라면?"
테니스를 치는 사람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아쉬움과 부러움을 느낀다. 결국 공을 보는 눈은 공을 친 세월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라켓을 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만 더 일찍 운동을 시작할 걸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라도 일찍 테니스를 치기 시작해 잘 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건 당연한 감정이다. 하지만 본인의 상황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 적어도 부러움의 감정을 더 큰 성장의 원동력을 삼는 사람은 있다. 세계 정상에 오른 세르비아 출신 노박 조코비치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경험하며 자랐다. 어린 나이에 테니스를 시작했지만 생필품도 구하기 힘든 열악한 환경 탓에 물 빠진 수영장에서 공을 치며 훈련했다. 그는 주변 환경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역경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공하기 위해 더 강해져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위기에 강한 정신력으로 승화시켰다. 나도 항상 “부러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자”라고 재차 다짐한다. 테니스든 인생이든 남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매번 느끼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주변과 비교만 하며 남의 길을 졸졸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이다. 늦은 테니스 시작을 후회하지 말고 묵묵히 공이나 하나 더 쳐야겠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모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인생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그저 살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테니스든 인생이든.
우리는 21년 동안 함께 여행을 해왔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것이다.
우리의 피에는 테니스가 흐른다.
- 밥 브라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