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인간의 스매시를 위한 아이템
스매시 : 높은 공을 머리 위에서부터 강하게 내리치는 강력한 타법으로 오버헤드 스매시와 그라운드 스매시가 있다.
테니스를 쳐보지 않은 사람들, 이제 막 관심을 갖고 레슨을 알아보는 주변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게 물어봤다. "20분만 치면 운동이 되는 거야? 너무 금방 끝나는 거 아냐?" 통상 '주 4회 20분' 수업이 일반적인 레슨 스케줄이다 보니 고작 20분에 2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다소 아까울 수 있다. 대다수 한국 성인들은 50분 수업-10분 휴식에 익숙하다. 노래 대여섯 곡을 듣거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SNS를 둘러보다 보면 20분은 체감상 찰나의 순간이다. 하지만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니는 테니스장에서의 20분은 이상하리만큼 다르다. 포핸드, 백핸드, 발리로 이어지는 레슨을 받다 보면 쏟아지는 땀에 운동복은 흠뻑 젖었고, 짧은 두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오랜 좌식 생활과 정크푸드로 단련된 나의 타고난 체력 때문이기도 하다.) 코치님은 신기하게도 연습 프로그램이 몸에 익을 때쯤이면 더욱 힘들고, 어렵고, 따라가기 벅찬 숙제를 툭 던져주셨다. 할만하다며. 짧은 공을 달려들면서 치기, 백핸드로 날아오는 공을 포핸드로 돌아서 치기, 상대 발리를 피할 수 있는 앵글샷,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지면서 빠지는 공치기.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완 다르게 라켓을 쥔 20분은 억겁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기진맥진 숨이 차기에 매우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쨌건 지옥의 20분 레슨을 버티고 나면 어김없이 마지막 연습은 스매시였다.
사실 처음 스매시를 배울 때는 일종의 서비스(테니스 서브 말고, 보너스) 같았다. 적당히 높이 띄워준 공을 강하게 내리꽂으면 스트레스가 제대로 풀리는 기분이었다. 겨우겨우 힘들게 레슨을 끝낸 학생에게 스매시 7~8개 치고 개운하게 돌아가라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이 가까스로 살린 공을 무자비하게 관중석까지 날려버리는 프로선수들의 스매시는 보는 것만으로도 호쾌하고 속이 뻥 뚫렸다. 하지만 구력이 쌓이고, 경기를 조금씩 많이 하다 보니 스매시가 단순히 보너스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높게, 천천히 넘어오는 공을 강하게 내려칠 상황은 기회이자 위기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테니스 동호인들도 긴장되는 경기에 스매시 기회가 오면 어처구니없이 네트를 향해 공을 자주 내리꽂았다. 한 번에 끝내야겠다는 마음에 어깨와 팔목, 아니 온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서 정확히 공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한 경우에는 스매시를 하다가 팔꿈치나 어깨를 다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나는 다친 적은 없지만, 스매시 실수로 줄을 많이도 끊어먹었다. 호쾌한 스트로크 도중에 스트링 정중앙이 끊어지면 묘한 쾌감이 있다. 하지만 어이없이 라켓 끝자락이 끊어져있으면 허탈함만 가득하다. 스트링 끊어지는 '삑'소리는 곧 돈 나가는 소리다.) 돌이켜보니 스매시를 레슨 마지막에 하는 이유는 힘을 다 빼고, 공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눈치'가 기본적으로 탑재된 내 소심한 성격은 스매시가 특히 쥐약이었다. 스매시 기회가 오는 순간 지켜보는 관중이 없더라도 최소 3명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포인트를 따내리란 동료의 기대,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상대편의 긴장, 집중이 뒤엉켜 내게 '부담감'으로 전해졌다. 나는 그걸 이기지 못하고 네트, 혹은 라인 밖을 향해 공을 때리곤 했다. 눈치가 기본인 내게 이러한 악순환은 초반 '장비병'에도 적용됐다. 바볼랏을 쓰다 보면 윌슨이 예뻐 보이고, 헤드를 쓰다 보면 요넥스가 궁금해졌다. 샵에서 제일 싼 5천 원짜리 막줄이 아니라 폴리, 천연, 하이브리드 스트링 종류에도 눈을 떴다. 조금씩 시간이 흐를수록 더 예쁜 라켓, 옷, 스트링 등 실력 이외의 액세서리에 눈이 갔지만, 정작 남의 눈치를 보느라 애써 포기하곤 했다. 프로가 아닌 동호인 단계에서 이런 요소들은 큰 차이가 없고, 그럴 시간에 공이라도 하나 더 치라는 충고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린이에게 다양한 액세서리는 자기만족이자 운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훌륭한 당근이다. 그리고 잘 치고, 못 치고는 남에게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인데, 나는 너무나 남의 눈치를 보며 취미생활을 허비했다. 이런 내가 요즘 한 뼘 성장했다고 느끼는 건 테니스 실력이 아니다. (지독하리만큼 실력은 제자리걸음이다.) 소심한 마인드가 조금은 뻔뻔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단적인 예로 상황에 따라 무려 '선글라스'를 낀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성장이냐 싶겠지만, 내게는 제법 의미 있는 변화다. 테니스 고글, 선글라스류의 아이템은 소위 말하는 고수들의 영역이었다. 선글라스는 전국대회 우승자나 실력 있는 코치님만 쓸 수 있는 전유물 같았고, 초보인 내가 쓰면 괜히 나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무더운 8월, 태양이 중천에 떠있을 때쯤 나간 초보자 대회였다. 경기를 지켜보던 코치님이 지금 시간엔 높은 공이 하나도 안 보일 거라며 본인의 선글라스를 건네주셨다. 괜히 이목이 집중될 것 같아 꺼려졌지만, 코치님의 호의를 거절할 용기도 없어 그냥 어색하게 선글라스를 꼈다. 그리고 때마침 경기 막바지에 아슬아슬한 높은 공이 넘어왔다. 선글라스를 낀 채 고개를 들자 태양빛 하나 없는 회색빛 하늘에 공만 또렷하게 보였다. 이 세상에 오로지 떠오른 공과 이를 천천히 기다리는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원한 스매시! 난생처음으로 호쾌하게 라인 안에 떨어진 공은 높게 튀어 올라 코트 밖까지 넘어갔다. 상대는 그저 넘어간 공을 찾으러 가기 바빴고, 아무도 나를 바라보진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생각보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걱정보다 나는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나의 만족을 위해 땡볕에 땀 흘리며 운동하는 건데, 남의 눈치, 평가에 괜히 움츠러들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스매시는 물론이고 나를 표현할 개성 있는 아이템 구매하는 재미까지 알게 됐다. 역시 테니스는 알 수록 재밌는 스포츠다. (돈도 많이 들고.)
아무도 믿지 못할 때, 자신을 믿어야만 한다.
- 세레나 윌리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