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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30. 2020

풋 폴트 : 행운을 기원하는 나만의 루틴

8. 풋 폴트 : 행운을 기원하는 나만의 루틴

풋 폴트 : 테니스에서, 서버(server)가 서브 동작에 들어간 이후 발의 움직임으로 인해 범하는 반칙을 말한다. 다음의 경우 풋폴트가 선언된다. 1. 서비스할 때 첫 발의 위치를 바꾸었을 경우. 2. 센터마크(center mark)와 사이드라인(sideline)의 가상 연장선 사이 이외의 구역에 발이 닿았을 경우. 3. 서비스 자세를 취하고 나서 발이 베이스라인(baseline)에 닿았을 때.

2008년 처음 라켓을 잡고 십여 년 넘게 테니스를 치며 배운 걸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운칠기삼'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100% 기대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서브 에이스를 확신할 정도로 절묘한 코스와 강력한 힘이 실린 플랫 서브를 때렸지만 내가 실점했다. 상대의 라켓 프레임에 맞은 공이 절묘하게 네트를 넘어 짧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가 백핸드 다운더라인을 정확하게 치고 네트까지 빠르게 점령했지만 내가 득점했다. 이미 몸의 균형은 무너져 다급하게 공을 멀리 쳐냈는데 바람의 은총을 받아 라인 끝에 걸리는 로브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이럴 땐 마치 계획한 대로 됐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는 걸 추천한다.) 네트를 맞고 상대방 코트로 넘어가는 샷인 네트 코드 샷은 '운의 결정체'라 더욱 극적이다. 네트를 맞고 높게 튀어 오른 공이 내쪽으로, 상대 쪽으로 넘어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어떻게든 공을 살리기 위해 네트를 향해 무모하게 달려들 뿐. 그래서 네트 코드 샷이 나오면 기뻐하기보다는 손을 들어 상대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는 게 예의다. 하지만 의외로 네트 코드 샷은 경기 중 여러 차례, 그것도 매우 중요한 승부처에 등장한다.


테니스에서 승리하는 데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이뤄낸 건 아무것도 없다. 꾸준한 연습, 상대방과의 상성, 그날의 컨디션, 그리고 행운. 여러 가지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6게임을 따내는 소소한 성공을 거두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승리의 변수를 '노력'에서 찾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적 성향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승리의 결과를 모두 운에 달려있다고 무책임하게 낙관하는 것도 아니다. 내 힘으로 온전히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노력하며 기회를 준비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를 행운을 기다리며 묵묵히 노력하고, 패배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다양한 상황을 상상하며 무더운 땡볕에도 하나하나 반복적으로 공을 친다. 지치지 않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테니스 말고도 줄넘기나 러닝도 꾸준히 해본다. 하지만 성실함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착실하게 돈을 모은다고 모두가 성공하지 않는다는 건 테니스가 아니더라도 이미 익히 배어왔다. 전통적 방식의 노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긴 하더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운은 내가 절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을 초연하게 준비해나가는 것이다. '풋폴트'도 어찌 보면 그런 나만의 믿음 중 하나다.


내가 프로선수 수준이라 자신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날카로운 스트로크나 감각적인 발리, 노련한 경기 운영이나 호쾌한 서브라면 좋겠지만 소소하게도 '풋 폴트'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강력한 서브 에이스나 재빨리 튀어나가 서브 앤 발리 전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 그렇기도 하지만, 처음 서브를 배울 때 호되게 배운 까닭이 크다. 코치님은 서브를 가르쳐주시며 무슨 일이 있어도 라인은 밟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서브의 리듬감이 중요하다, 그립을 조금 더 안으로 돌려봐라, 토스를 더 높이 앞쪽으로 던져라, 어깨에 힘을 빼고 무릎을 써봐라." 등의 다양한 조언이 기억나지만 언제나 시작과 끝은 "죽어도 풋폴트 하지 마라!"였다. 사소해 보여도 풋폴트도 엄연한 반칙이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물론이고 나와의 약속이라는 이유였다. 너무나 당연하게 규칙대로 배우고 경기를 즐겼지만 시간이 흐르고서야 매우 유별난 코칭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토스부터 대놓고 선을 밟고 있거나, 아예 한걸음 크게 내딛으며 서브를 넣는 동호인이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풋폴트에 유독 관대한 분위기 속에서 나만의 풋폴트 근절 고집은 유별난 시선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동호인들의 지속적인 인식 개선과 대회 측의 규제로 많이 나아졌다.)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나의 소신은 '루틴'이자 행운을 부르는 주문으로 자리 잡았다. 


루틴은 수많은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펼치기 위해 의식적으로 고유의 행동을 반복하는 행위다. 많은 이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절차대로 사소한 행동을 통제하며 집중력을 높이고 긴장감을 해소한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연관 지어 불길한 예감을 먼저 떠올리는 징크스와는 결이 다르다.) 특히 라파엘 나달은 수십 개의 루틴으로 유명하다. 그는 의자 앞에 물병 두 개를 항상 상표가 코트 쪽으로 가지런히 배치하고 라인을 밟지 않고 경기장에 들어간다. 서브 전에는 발로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신발에 묻은 흙을 라켓으로 털고, 엉덩이에 낀 바지를 뺀 뒤 어깨, 귀, 코를 만진다. 나달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나름의 루틴이 있다. 서브 전에 라인에 발을 맞추고 아주 약간 뒤로 물러서, 만약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풋폴트를 예방한다. 풋폴트를 피하려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나의 루틴이 행운의 신을 감동시켜 내쪽으로 슬쩍 손을 내밀지 않을까 기대한다. 테니스를 치며 내가 굉장히 잘못한 것도,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잘한 것도 아니기에 조금씩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본다. 공이 넘어가냐 마냐의 사소한 일들에서도 초연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 온갖 복잡한 일들에 초조해하고 마음 졸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테니스를 치되, 결과에 초연하기 위한 소소한 믿음이 내 인생 전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승리가 더 가치 있는 건 그전에 패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패배는 나의 적이 아니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적일 뿐이다.
-라파엘 나달


하드 코트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경쾌한 타구음이 더 또렷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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