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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바리 Oct 30. 2020

레트, 챌린지 : 유교 테니스 사회에서 살아남기

태도는 부드럽게, 행동은 단호하게

10. 레트, 챌린지 : 유교 테니스 사회에서 살아남기

레트 : 심판이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 원만한 플레이 진행이 방해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서브 상황에서의 레트는 그 서브만을 다시 하고, 그 밖의 상황에서 레트가 선언되었을 때는 그 포인트를 다시 한다.
챌린지 : 전자 판독 시스템(호크아이)을 도입해 선수가 심판의 공에 대한 인-아웃 판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 선수들은 인아웃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챌린지'를 세트당 3번 사용할 수 있다. 200km/h가 넘는 강서브를 인간의 눈이 100% 정확하게 잡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최첨단 시스템의 도입으로 공정한 시합을 돕는 제도다. 오심으로 억울한 실점을 피하기 위해 결정적 순간에 챌린지를 사용하거나, 상대의 흐름을 한번 끊고 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전략이자 실력이다. 하지만 테린이에게 심판 없이 인, 아웃 콜을 해야 하는 셀프 콜은 부담 그 자체다. 게다가 '소심한' 테린이는 포인트를 무효화하는 '레트'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챌린지'가 스트레스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국 테니스 코트 특성상 옆에서 공이 굴러오는 경우가 많지만 공치기에 바쁜 나는 애써 무시하기 일쑤였다. 흐름을 방해하는 공이 신경 쓰여도 대수롭지 않은 '척' 일단 경기를 속행시키는 나와 달리 고수들은 무미건조하게 '레트'를 외쳤다. 챌린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규칙이었다. "안녕하세요"를 크게 외치고 꾸벅 인사와 함께 시작하는 대한민국 '유교' 테니스 사회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상대의 콜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불문율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친목 도모가 목적인 테니스에서 챌린지를 쓸 일은 전혀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아예 처음 보는 사람과 승패를 겨루는 동호인 대회에서다. 실력 차이가 아예 많이 나거나, 양 팀 모두 실력이 뛰어나고 매너가 있는 경우는 크게 얼굴 붉힐 일이 없다. 하지만 비등비등한 상대, 교묘하게 라인 시비를 걸며 상대를 흔드는 부류를 만나면 테니스는 신사의 스포츠란 말은 온데간데없다. 엄밀히 말하면 심판 없이 가까이서 본 리시버가 양심에 맞게 인아웃 판정을 하는 '셀프 콜'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챌린지'는 쓸 일이 없다. 부지런히 레슨을 받고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후배와 함께 용기 있게 테니스 전국대회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젊은 친구들이 테니스를 치는 게 보기 좋다던 상대 팀은 확실히 우리보다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악착같이 어떻게든 받아넘기고 운이 따르다 보니 어느덧 경기는 5대 5 타이브레이크까지 갔다. 화목했던 초반 분위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포인트 하나하나가 살얼음판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상대방의 강력한 퍼스트 서브가 다행히 라인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폴트'를 외쳤다. 그러자 베이스라인에 서있던 다른 한 사람이 짜증 섞인 말투로 크게 소리쳤다.


에이, 뭐야! 들어갔잖아!


방금 포인트가 폴트가 아니라 서브 에이스란 것이다. 가까이서 공을 본 내가 정확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너무나 크고 자신 있게 인이라고 우겼다. 당황한 나는 우물쭈물거리며 아웃으로 봤다고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건 거센 말투의 정말 확실하냐는 질문이었다. 거짓말을 할 생각도 없었고, 이쯤 되니 내가 잘못본거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함께 대회를 나온 파트너도 덩달아 흥분해서 왜 반말을 하냐고 따졌지만, 나는 파트너를 말리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그냥 피했다. 결국 그 포인트는 무효인 '레트'도 아닌, 상대의 포인트로 합의하고 경기를 재개했다. 하지만 나는 이후 셀프 콜에서 입 한번 뻥끗하지 못했고, 멘털이 무너진 채 패배했다. 함께 대회를 나온 파트너에게 미안하고, 스스로에게도 분했다. 왜 더 확실하게 판정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까, 끝까지 셀프 콜을 고수하고 예의 있게 경기를 하자고 못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너그럽다, 협동심이 뛰어나다, 배려심이 깊다, 양보심이 많다.'란 듣기 좋은 평가가 학생부에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불편한 게 싫어서 그 상황을 피하는 겁쟁이에 가까웠다. '태도는 부드럽게, 행동은 단호하게'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본인을 희생하고 고통을 참아내는 게 미덕이라고 자기 합리화했다. 스스로 힘들면서, 아프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만사가 불만이고, 태생적으로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내 몫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많은 부분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는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많아질수록 반드시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함도 느낀다. 나만 인정 넘치는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면서 슬쩍 물러설 때,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나 대신 누군가가 싸움닭이 되어 쓴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가 당당하게 말하면 쉽게 풀릴 일인데도, 옆사람이 힘겹게 겨우겨우 싸워서 얻어내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오지랖을 부리고 욕을 하며 바득바득 싸우라는 건 아니지만, 아니다. 소심한 나는 어떻게든 내 밥그릇을 지키겠단 마인드를 가져야지 그나마 남들 하는 것만큼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조금 더 악을 써보자고 다짐한다.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살겠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은 눈치 보지 않고, '싫어하는 일'은 조금 미움받더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손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틀린 것'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한편 우리를 이기고 올라간 상대 팀어김없이 라인 시비가 붙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네트 위를 넘어가 상대 코트에서 이게 방금 공자국이 맞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들과 다시 맞붙는다면 적어도 치사한 심리전에 말려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젠 마법의 주문이 제법 익숙하니깐 말이다. "시부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승리하는 게 좋다, 패배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일은 테니스 경기를 하는 그 자체이다
- 보리스 베커


화창한 테니스 코트만큼 설레는 공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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