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정치가 나쁜 것이 아니다. 사내 정치를 잘못하는 것은 나쁘다.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정치가 생긴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방법을 결정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정치는 학술적 정의를 따르자면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다. 어떤 권위를 부여해서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자는 뜻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서가 더 많은 예산을 가져왔으면 좋겠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에게 그 예산이 가장 많이 떨어졌으면 좋겠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정치는 본질은 이익 싸움이고 그래서 정치는 늘 스트레스가 되고 지저분한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또한 정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혐오와 극단적인 편 가르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과 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말만 전하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정치활동을 일절 금지하는 정치체제가 있다. 바로 공산주의이다. 근본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것이 정치인데 구성원들 간에 균등하게 배분을 한다면 정치가 의미가 없어진다. 공산주의에서의 정치는 균등한 배분에 불만을 갖는 사람을 처벌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반동, 숙청 등의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사용된다. 공산주의는 맨 위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감시를 하므로 전제정치적인 성격을 갖는다.
정치의 발전은 참정권의 확대 과정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회사가 민주화되고 발전할수록 정치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전제주의적으로 맨 윗사람이 자원을 분배할 때에는 그의 룰만 제대로 파악하면 된다. 그렇지만 결정권자가 늘어나면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맨 위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위계 조직에서와 달리 역할 조직에서는 모든 사람이 결정권 자이다. 모든 사람이 결정권 자라면 끊임없이 정치 활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정에 따라 자원 배분의 양상이 아주 미세하게 조정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스타트업 회사들은 자원이 많고 사람은 적어서 하고 싶은 것 들을 다 해도 된다. 그러한 경우에는 정치 문제가 크게 비화되지 않고 사내 정치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회사가 커질수록 점점 나눠먹을 사람은 많아지고 자원은 무한정 늘어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는 정치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그래서 리더십이 있고 정치력이 있는 사람이 매니저가 되고 팀을 대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개인과 내 팀의 가치를 제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예산을 가져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규칙이 제대로 없으면 가치를 부풀려서 더 많은 자원을 독식하는 사람도 생기게 된다. 정치를 잘 못하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 있다면 그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사내 정치가 없는 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회사는 존재할 수도 없다. 사내 정치를 안 한다는 것은 자원 배분을 위한 토론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시스템이 잘 짜여 있거나 아니면 위에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한다는 뜻이 된다. 사내 정치가 없다고 하기보다는 사내 정치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내 정치를 잘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1.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연공서열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리더가 되는 시스템에서는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정치를 하려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리더가 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 기업에서는 리더가 돈을 더 많이 받고 권력도 더 많이 가지며 나이와 경험을 중요시하는 연공서열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가 많이 생긴다. 정치를 하기 싫은 사람은 끝까지 팀원으로 남아 있어도 그들이 기여하는 가치에 따라 충분히 공정한 보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2. 정치 규칙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회사에서 자원 배분의 의사 결정이 윗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더 흡족한가로 결정되면 치열한 눈치싸움이 생긴다. 목표가 같음을 명확히 하고 토론으로 목표를 이루는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하든, 아니면 빅데이터 분석으로 의견을 뒷받침하든, 아니면 누군가에게 전권을 일임하든 어떤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내 정치가 눈치싸움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버릴 수 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에 사내 정치가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자원 배분이 항상 공정한 것도 물론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내 정치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의 팀이 한 더 중요한 일을 다른 팀에서 무시하면서 더 큰 자원 배분을 받아가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래서 리더는 정치를 잘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내 정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내 자원을 배분하는데 꼭 필요한 의사 결정 시스템이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공정하게 만드는지는 각 회사가 풀어내야 할 숙제이자 믿음의 문제이다. 국가들도 전제정치, 귀족정치, 공산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으로 신념에 따라 다양한 정치 체제, 즉 자원 분배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듯이 회사도 그러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안 좋은 선택은 사내 정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내 정치를 부정하고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온갖 눈치싸움과 술수로 자원을 분배하는 방법밖에 없어진다. 정치를 부정하면 무정부 상태가 되어 힘과 협박과 거짓말이 자원을 얻는 수단이 되어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