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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현 Jul 17. 2017

6. 위계 조직과 역할 조직

수평적, 수직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리콘밸리 기업 문화의 차이



위계 조직(Rank-driven organization)은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아랫사람은 그 명령을 빠르게 수행한다. 역할 조직(Role-driven organization)은 각 역할에 따라 결정권을 갖는다. 목표를 정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으로 그 목표에 기여한다.


실리콘밸리 회사에도 “위아래”가 있다. 엔지니어인 나는 엔지니어링 매니저에게 “report”한다. Report는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리고, 내가 언제 휴가를 쓸 것인지, 내가 언제 아기를 낳고 육아 휴직을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일이다. 그리고 매니저는 그 일과 휴가가 다른 사람들과의 일과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판단하여 피드백을 제공한다. 내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디렉터에게 똑같이 report 한다. 그리고 디렉터는 Vice President of Engineering에게 report 한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위계질서이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수직적 상하관계가 없다고들 한다.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하다고들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고 있는 나도 그렇게 느낀다.


회사 내의 누구도 나에게 “갑질"을 하지 않는다. 내 출퇴근 시간에 대해서 눈치를 주지 않고, 심지어 내 성과에 대해서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1월과 7월에 나는 지난 반년 간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쓰고, 나와 함께 일한 모든 동료들과 매니저는 내 일이 내 레벨에 비추어 어떠한 성과였는지를 절대평가로 평가한다.  내가 레벨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었으면 승진할 것이고, 레벨에 맞는 성과를 내었으면 그 레벨에 머물 것이고, 레벨보다 못한 성과를 내었으면 레벨을 낮추거나 (이런 일은 거의 없다), 잘릴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내가 앞으로 10년간 지금의 레벨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내가 한심한 사람으로 취급받거나 퇴직하라는 눈치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 연봉은 최소한으로 오르겠고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나보다 더 빨리 승진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기본인 이 곳에서는 내가 같이 시작하거나 나중에 시작한 사람들보다 뒤처져도 별 상관이 없다.


처음에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서로 인격을 존중하는 착한 사람들이어서 그러한 시스템이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니 조직의 지향점과 구조가 완전히 다른, 시스템 차원의 차이라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위계 조직 (Rank-driven Organization) vs. 역할 조직 (Role-driven Organization)


의사 결정 권한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이며, 가장 적합한 사람이 가져야 하는 권한이다.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면서도 실무의 문제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탁상공론이 되어버려 비현실적인 결정을 하거나, 실무에만 치우쳐서 전체 사업에 도움이 안 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기존의 상하관계가 중요시되는 회사에서의 의사 결정은 ‘우리’의 리더 과장님, 부장님, 팀장님, 사장님이 하게 된다. 엔지니어는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윗사람’의 절대적 권한이다. 그래서 덜 권위적인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스티브 잡스 같은 뛰어난 식견이 있는 사람은 혼자 그린 비전을 향해 전 조직을 달려가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델은 애플과 전통적인 미국의 기업들, 그리고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선택한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를 위계 조직(Rank-driven organization)이라고 하자. 장점은 윗사람의 결정에 따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순간의 명령체계가 무너지면 모두 공멸하는 군대와 같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중요할 때 활용되는 구조이다. 이 구조의 단점은 변화에 약하다는 것이다. 한 방향으로 달려가던 차의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많은 마찰이 발생한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에어비엔비 등 최근에 생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선택한 방법은 역할 조직(Role-driven organiz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아래가 아닌 각자의 역할에 따라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CEO는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체를 매니지하는 역할을 한다. 엔지니어는 실제 코드를 작성하며 시스템을 설계한다.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엔지니어가 최대한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다른 팀과 문제는 없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조율한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자신이 맡은 프로덕트가 사용자에서 어떻게 비치는지, 프로덕트를 개선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린다.


역할 조직에서의 장점은 모든 사람에게 의사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할 수 있으며 혁신하고 변화하는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반면 권한과 책임이 분산된 만큼 두 가지의 큰 단점이 있다. 첫째로, 각 사람의 비전이 맞지 않으면 팀 간, 개인 간의 분쟁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그래서 이러한 회사에서는 core value나 mission statement가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로, 모든 구성원이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개개인의 직원들에게 결정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에 회사가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위계 조직에서의 이상적인 구성원은 시키는 일을 질문은 가장 최소로 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잘 해내는 사람이다. 반대로 역할 조직에서의 이상적인 구성원은 항상 질문하고 의견을 내고 의사 결정을 잘 하여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계 조직에서는 성적으로 사람을 뽑으면 잘못된 사람을 뽑을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역할 조직에서는 특정 분야의 능력이 뛰어나고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한 사람을 뽑기 위해 10명 정도의 기존 직원을 투입하여 한 사람의 특정 역할 업무 능력과 회사 문화에 대한 이해도 등을 검증하는 이유이다.


위계 조직과 역할 조직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계 조직 (Rank-driven organization)

특징: 중앙 집권적 의사 결정
호칭: 과장, 부장, 사장 등 직급에 따른 호칭
장점: 빠른 의사 결정과 수행.
단점: 변화와 혁신에 취약함. 소수 의사 결정권자의 능력에 따라 조직의 퍼포먼스가 좌우됨.
이상적 구성원: 내려온 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사람.
역할 조직 (Role-driven organization)

특징: 각 구성원에 분산된 의사 결정.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사 결정.
호칭: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엔지니어링 매니저, CEO, COO, CFO 등 역할을 반영하는 호칭
장점: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음.
단점: 각 조직원의 목표와 가치관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많은 혼란이 야기됨. Mission Statement, Core Value 등이 중요함. 각 개개인의 의사 결정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전문성이 중요하며 채용에 많은 비용 발생.
이상적 구성원: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고 신중하고 탁월한 의사 결정을 하며,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맡은 업무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 내는 사람.


일을 분배/수행하는 방법의 차이


위계 조직에서는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여 일을 시킨다. 그래서 한국의 소프트웨어 조직에는 미국에는 없는 기획자라는 직군이 있다. 모든 것을 다 설계해서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종합적으로 설계할 시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엔지니어, 특히 외주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그 정확한 설계도에 맞추어 코드를 짜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방법은 이미 알고 있는 제품을 빨리 만드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처럼 전체 설계는 위에서 하고 차량 문을 설치하는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은 차에 문을 다는 것만 잘 하면 된다. 전체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는 별로 의미가 없다.


역할 조직에서는 프로젝트를 맡긴다. 자동차에 문을 다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도 “이 설계도에 맞춰 여기에 이렇게 나사 5개를 이용하여 문을 달아주세요”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닌 “문을 차에 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본다. 문을 다는 엔지니어가 그 role의 결정권 자이고 전문가이기 때문에 위에서 나온 설계도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문을 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 차의 디자인과 다른 제품들과의 호환성을 생각하면서, 나사의 수를 바꿀 수도 있고, 문을 닫을 때의 무게감과 소리 등도 세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창의력과 전문성에 기대어 문을 설치하도록 하면 엔지니어는 신기술을 활용하여 세계 최고의 문을 다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그것이 그의 커리어가 될 것이다. 그는 소위 자동차 문 설치의 전문가가 될 것이고, 그러면 여러 회사들은 자동차에 문을 설치하는 일을 혁신적으로 하는 그 사람을 경쟁 회사로부터 빼앗아 오기 위해 인재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결국 문을 다는 엔지니어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프로페셔널들의 몸값이 높은 이유이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는 비단 코드를 빨리 짜는 사람이 아니다.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되면 엔지니어,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 등은 (이들에 대한 설명은 [실리콘밸리를 그리다의 등장인물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자리에 앉아 두장 정도의 기획서(design doc)를 만든다. 그들은 함께 주어진 프로젝트에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전문분야에 기반한 제안을 하고 설계를 함께 한다. 각자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발자는 최신 기술 등을 자연스럽게 적용해 볼 수도 있고 새로운 접근 방식 등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기획자가 이미 설계한 것을 구현할 때에는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가 들어갈 공간이 거의 없다.


한 사람의 기획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설계를 하기 때문에 전체 프로젝트와 회사의 미션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역할 조직에서는 위계 조직에서 “좋은 말씀” 정도로 여기는 미션과 핵심가치, 비전 등이 모든 직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자동차의 문을 설치할 때에도 내가 전문가라면 내가 만들고 있는 차가 고급차인지, 보급용 차인 지, 스포츠카인지에 따라 문 닫을 때의 소리, 열리는 각도 등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시키는 일을 하는 단순 노동자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사를 조일 것이고 이러한 단순 노동자에게 비싼 값을 지불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플 - 위계 조직의 좋은 예


100% 위계 조직, 100% 역할 조직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실적으로는 위계 조직적 요소가 많은 기업, 역할 조직적 요소가 많은 기업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은 위계 조직적인 요소가 강하다. 각 엔지니어 간에 협업이 제한적이고 내가 만드는 제품이 전체적으로 어디에 들어가는지 모르고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만드는 물건이 명확한 제조업을 하는 경우 일사불란한 위계 조직이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 애플은 혁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위계 조직에서는 맨 위의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애플은 운이 좋게도 스티브 잡스라는 인류 역사에 손꼽히는 혁신가(visionary)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모든 결정권을 가진 지도자가 혁신적인 사람이라면 그 혁신으로 가는 길도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실제로 아이패드를 출시하기 전 조직 내외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많은 의견이 있었다. 역할 조직이었으면 어쩌면 아이패드는 시장조사 끝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선언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아이패드를 시장에 내놓았고, 혁신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미지 출처


반면 위계 조직은 리더가 혁신적이지 못하면 혁신을 이루기 힘들다. 지금의 팀 쿡 체제에서의 애플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Mission]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상을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게 되었다.


구글 - 역할 조직의 좋은 예


구글은 거의 처음으로 역할 조직을 시작한 회사이다. CEO Eric Schmidt는 그의 책 “How Google Works,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통해 구글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명하였다. 그는 구글의 직원들을 Smart Creatives(똑똑하고 창의적인 인재)라고 정의하고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면 그들은 스스로 강한 동기를 가지고 최고의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진 구글의 Smart Creatives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의 정보를 조직해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쓰도록 하자는 구글의 미션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혁신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Gmail, Google Docs, Google Calendar, Google Maps, 자율 주행 자동차 Waymo 등등 끝도 없이 많은 창의적인 프로덕트들을 만들었다. 동시에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장되었다. 중앙의 강력한 조직적 리더십이 없이 각 개인에게 “기업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은 어떻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전문성을 살려서 기여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기업을 이끌어 가는 조직. 그러다 보니 내 전문성을 살려서 미션에 기여하는 혁신은 모든 직원들이 늘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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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각 사람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는 역할 조직의 특징은 페이스북, 트위터, 에어비앤비 등이 채용하여 실리콘밸리 혁신의 표준이 되었다.


우리의 프로젝트 vs. 내 프로젝트


‘위’에서 결정한 일에 대한 빠른 수행을 하는 위계 조직에서는 빠르게 우리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일을 빨리 하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전체가 일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개인이 빠르게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기 때문에, 회사 전체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 등이 중요한 동기가 된다. 또한 Rank의 경계를 넘는 것은 회사 전체의 업무 수행에 위험요소가 되기 때문에 능력 있는 개인에게 전문성에 따라 금전적, 지위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역할 조직에서는 각 개인이 회사의 미션에 맞는 프로젝트를 선택하여 자신이 책임을 맡는다. 성공하면 인센티브가 주어지지만, 실패하면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된다. 팀을 구성하여도 개개인의 책임은 명확하게 정의하여 분배한다. 그러므로 일을 빨리 하게 되면 그만큼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의 책임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 되므로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리고 일 못하는 구성원은 자연히 도태된다.


개인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역할 조직에서는 어떠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직원들을 뽑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많은 연봉과 주식을 준다. 그렇지만 위계 조직에서는 개인의 퍼포먼스가 최고가 아니어도 팀 전체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많은 대가를 지불할 이유가 약하다. 그래서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아"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기도 하다.


역할 조직에서는 매니저도 하나의 역할이다. 매니저는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우리 과장님이 아니라, 나를 매니지하는 것이 역할인 경력 많은 동료 직원이다. 그러므로 매니저가 나에게 부당한 눈치를 주고 갑질을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기보다 상상하기 힘든 너무 이상한 일이다. 윗사람이라는 의식이 없는데 윗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물론 실리콘밸리에서도 과거 위계질서가 뚜렷한 top-down 식 문화에 익숙한 매니저들은 팀을 그렇게 이끌려고 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누구도 나에게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조직을 위해 ‘우리'의 프로젝트를 위해 일을 하면 조직을 위해 충성심을 가지고 남의 일까지 최선을 다해 맡는 사람이 성공하게 된다. 반면 각자가 ‘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일을 하면, 내 일만 끝내면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와 관련 없이 퇴근할 수 있고, 상하 관계도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내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내 프로젝트를 뛰어난 프로젝트로 만들기 위해 밥도 안 먹고 밤새 일에 매달릴 수도 있으며, 반면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만약 내 일을 정의하고 시키고 감시하는 윗사람이 존재하고 나는 시키는 일을 재빨리 해내는 사람이라면 나는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 내가 창의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냐?”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니저의 역할이 팀이 잘 돌아가도록 매니지하는 것이고 나의 역할이 내 엔지니어링 기술을 최대한 발휘해서 프로젝트를 멋지게 만들어 회사의 미션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은 직무 유기가 된다. 그 경우에는 정말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내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최고의 기술을 써서 최고의 프로덕트를 만들어 낼 것이다. 역할 조직이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각자 주어진 일에 갇히지 않고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내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혁신은 일상이 된다.


글: Will.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기업 문화와 조직에 관심이 많음.



그림: Chili. UX 디자이너. 생각을 그림으로 요약하는데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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