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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현 Nov 10. 2020

Passive Learning

학습을 하는 새로운 방법

집 앞에 있는 큰 도서관 건물을 보면 한편으로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큰 비효율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의 보지도 않는 책을 가득 넣어 놓은 엄청나게 큰 건물. 


종이 책은 수천 년간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비효율적인 매체가 되었다. 더러워지기 쉽고 파손되기 쉬우며 무겁고 부피가 크다. 그리고 읽는데 시간도 많이 걸린다. 종이책은 이제 CD나 음악 테이프처럼 낭만의 대상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성공과 독서 능력의 연관이 약화되는 시대


책을 소장하고 읽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크게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계급을 나누어 왔다. 지금도 우리는 책을 읽고 머릿속에 넣을 수 있는 능력, 즉 공부 잘하는 능력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음악의 소비가 CD 앨범 단위에서 디지털 싱글 단위로 넘어온 것처럼 지식의 소비 단위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책이 나오면 다독다독을 비롯한 책을 요약해주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북리뷰로 대부분의 책을 소비한다. 그리고 지식을 전달하는 최고의 방법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블로그를 쓰는 것이 더 큰 파급력을 갖는다. 


요즘은 책이라는 매체의 너무 많은 디테일이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대표곡 몇 곡만 소비되는 CD를 앨범으로 발매하기 위해 인기 없는 10곡을 더 채워 넣는 것 같은 느낌이다. 


Passive Learning


지식의 전달 단위가 작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지식을 꼭 능동적으로 찾아서 볼 필요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 포털 뉴스와 TV 뉴스는 물론 유튜브, 뉴닉, 더밀크, 내가 만들고 있는 옥소폴리틱스, 등등 수많은 서비스들이 정보를 선별하고 정리해서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통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친절히 넣어준다. 그리고 때로는 가짜 뉴스들을 큐레이션 해서 넣어주기도 하고 전혀 무관심하던 일에 분노에 이르는 격한 감정을 넣어주기도 한다. 


내가 알고 싶은 지식을 공부할 때에도 그냥 온라인 강의를 틀어 놓기만 하면 된다. 이전에는 이론으로 가득한 어려운 교수의 말을 해석해 내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쉽게 풀어주는 교수의 유튜브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능력이다. 


테슬라와 스페이스 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오가는 세상에서 정보의 병목은 인간의 학습능력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그는 새 사업으로 뉴럴 링크를 만들고 있다. 뉴럴 링크는 인간의 뇌를 컴퓨터와 직접 연결해서 뇌에 정보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달하는 장치이다. 이 장치는 영화 매트릭스를 현실화시킬 수 있고 사람들을 몇몇 사람들의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지만 이것을 갖지 않은 사람은 정보 능력 경쟁에서 현저히 뒤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처럼 모두가 가지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이 책을 읽는 속도로 한계 지어졌던 인간의 학습 능력은 이미 유튜브와 큐레이션 서비스들로 인해 엄청나게 증폭되었다. 이제 더 이상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있을 필요도 없다. 큰 흐름만 알고 있으면 언제든지 인터넷에서 자세한 지식과 데이터를 찾아볼 수도 있다.


앞으로 많은 스타트업과 서비스들이 지금까지의 정보 전달에서 한 단계 나아가 정보 조직과 큐레이션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해지는 자아의 시대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디어가 이야기하는 삶, 국가가 유도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스스로 정보를 조직하여 생각하는 능력은 점점 축소되어왔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주입받는 시대에 주체적인 정보 소비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뭐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를 늘 질문해 봐야 한다. 나에 대한 질문을 멈추면 이전 시대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누군가가 의도한 생각을 하고 살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정보를 깊고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 입수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미 빠르고 노력 없이 들어오는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점점 그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제는 어떤 주제로 어떻게 그 정보들을 모아서 스토리를 만들까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방향을 위해 내 궁극적 지향점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할 것 같다. 데이터는 해석하는 사람의 방향에 따라 너무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러한 생각의 공간으로 도서관이 바뀌면 어떨까도 생각해본다. 부피 큰 책들을 없애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좁은 커피숍 불편한 책상에서 일하지 않고 넓은 공간에 커피한잔 하면서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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