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와 아빠가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회사 근처 병원이다. 나는 모시고 갈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초진도 아니고, 그냥 검사니까. 일이 많고, 휴가가 모자란다.
아침 출근길,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정신없는 아침에 챙김을 받는 것도 귀찮은 딸이다.
엄마는 검사실로 들어가고, 아빠는 전화를 걸었다.
건성으로 받았다. 그렇게 바쁘지도 않으면서 세상일을 혼자 다 감당하는 사람처럼.
"네 엄마가 너한테 삶은 계란 꼭 전해주라고 하고 들어갔다."
삶은 계란. 그게 지금 중요한가. 귀찮음이 올라왔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 아빠의 모습이 그려졌다. 낯선 병원 카페에 혼자 앉아, 약속 있는 사람인 척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얼굴.
곤란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응, 지금 바로 갈게요. 나 할인쿠폰 있으니까 뭐 시키지 말고 계세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다.
내 생각대로 아빠는 카페 한켠에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할인쿠폰을 핑계 삼아 커피와 케이크를 사 들고, 맞은편에 엉덩이 반만 걸쳤다.
아빠가 가방에서 삶은 계란 한 개를 꺼내셨다.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싶던 생각을 뒤집어봤다. 이 계란 안 받는다고 세상이 끝나나. 아빠랑 잠깐 앉아 있는다고 뭔가 뒤집어지나.
계란을 받아들고 시시껄렁한 얘기를 몇 마디 나눴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보내야 할 아빠 앞에 보조배터리를 내밀었다.
"아빠 유튜브 끊기면 안 되잖아요."
무심하게 말했다. 아빠가 귀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모지란 딸도. 딸은 딸인가 보다.
나는 오늘도, 엉덩이 반쯤은 걸치는 쪽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