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입] 닫히기 전의 문 앞에서

by 서희

어린 직원의 딸을 봤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밖은 한겨울이었는데, 사무실 안은 잠깐 봄 같았다.
사람들이 말을 낮추고, 웃는 속도가 느려졌다.


요즘은 조카들이 자라나는 모습이 신기하다.
친구들의 아이들, 직원들의 아이들도 그렇다.
그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내가 책임질 일은 없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한없이 귀엽기만 하다. 요즘은.


그리고 거기서 생각이 시작됐다.
어쩐지 내 삶을 늘 관통하듯 흐르는 공허함이,
아이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아이가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내 아이에게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삶이 그렇게 행복하고 보람차다고 믿지도 못했다.
낳으면 그 아이가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건 비관이라기보다 판단에 가까웠다.


남편은 4기 갑상선암으로 큰 수술을 받았고,
치료는 5년이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열릴 때까지 시간이 늘어졌다.
다행히 폐까지는 전이가 되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로, 그날은 숨이 쉬어졌다.


간염은 10년이었다.
항체가 생기지 않아 바이러스는 오래 남았다.


나는 그 옆에 있었지만,
그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나대로 살았다.

그리고 몇 개의 큰 일들을 겪었다.
당시에는 남들은 잘 겪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
그 사이 폐암도 있었고, 신경수술도 있었다.
그 일들은 내 위를 한 번씩 밟고 지나갔다.


겉으로는 계속 움직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버티는 방식이 나를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갔다.
약은 생각보다 오래 곁에 남았다.


아이 이야기는 그 사이에서 밀려났다.
누가 포기하자고 말하지도 않았고,
누가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냥 우선순위에서 사라졌다.


가끔은 알 수 없는 간절함이 올라와 입양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치료 이력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문은 조용히 닫혔다.


지금 나는 남편과 고양이 세 마리와 산다.
집은 안정적이다.
저녁이면 사료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가끔 허전하다.
허탈하다.
공허하다고 말해도 틀리지는 않다.

아이를 낳고 키웠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아이를 낳고 기르거나, 입양해서 내 인생을 통째로 쏟아 다른 인격체를 서포트하는 삶은
아마 가장 마지막 선택지일 것이다.



나는 닫히는 문을 붙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