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
나의 마음은 내가 가장 궁금하다.
몇 년째 치료 중인 내 마음이 지금 어떤 모양인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쑥대밭 같고, 어떤 날은 고요한 호수 같기도 하다. 문장 한 줄이 도무지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고, 어떤 날에는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한다. 커피 몇 모금 말고는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다가도, 어느 날에는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치운다.
거울 앞에서는 더 복잡해진다.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며 펑펑 울기도 하고, “괜찮다”를 되뇌며 의욕을 불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울을 외면한다. 받아들이지 못해서라기보다, 받아들이는 순간의 감각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그 감각이 구역질처럼 올라온다.
기분이 좋은 날도 있다.
확실히 햇살이 좋은 날에는 조금 낫다. 그런 날에는 삼시세끼를 챙겨 먹을 마음이 들기도 한다. 햇살이 기분을 살리고, 기분이 식사를 살리고, 식사가 하루를 버티게 한다.
얼마 전에는 활발하게 운영하던 팬 계정 하나를 지웠다.
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집착하고, 평생 한 번도 못 만나면 어쩌나 불안해하고, 워크숍 공지를 보면 몸이 먼저 움츠러든다. 뚱뚱한 내가, 춤을 못 추는 내가 민폐가 될까. 웃음거리가 될까. 결국 가지 못한다. 가지 못한 내가 싫어진다. 그 싫음이 다시 불안을 키운다. 그 반복이 익숙해져서, 계정을 지웠다.
폴댄스도 그렇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운동이고, 가장 하고 싶은 운동인데, 지금의 몸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을 걸 알면서도, 나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돈을 내 놓고도 도망친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아침마다 옷을 입을 때도 그렇다.
이 옷도 작아졌으면 어쩌지. 그런 불안이 먼저 와서 발끝을 옷에 넣는 순간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넉넉하게 맞는 걸 아는 옷도, 입기 전에는 불안해진다. 속옷도 마찬가지다. 내 몸이 아니라, 내 시선이 먼저 나를 검사한다.
수퍼당당하고 치명적으로 귀엽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현실의 나는 몇 년째 치명타를 맞은 채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도 하늘은 이렇게나 아름답다.
젠장.
정신과를 다녀오는 길, 하늘이 너무 맑았다.
나는 멀쩡한 척을 했다.
어떤 날은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버겁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